-
현대 청주지역의 육영 사업가. 학교법인 서원학원(西原學園)을 설립하여 운영한 육영 사업가이다. 본관은 신천(信川)이며, 호는 운호(雲湖)이다. 아버지는 강병열(康秉烈), 어머니는 청주한씨(淸州韓氏)이다. 부인은 임관익(任寬益) 여사이며 슬하에 2남 2녀를 두었다. 1917년 평안남도 용강군 서화면 용상리에서 강병열의 4형제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고향에서 소학교를 마치고...
-
청주에서 활동한 산악인. 주성초등학교와 청주중학교, 청주상업고등학교(현 청주대성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전매청 청주연초제조창에 근무하면서 청주대학교 경영학과(야간) 2년을 수료하였다. 1970년 3월 대한산악연맹 회원이 되어 활동하다가 한국일보사와 대한산악연맹이 공동으로 후원한 한국 에베레스트 원정대(대장 김영도, 대원 19명)의 제주도 대표로 참가하였으며, 1...
-
기업인·정치인. 1912년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에서 태어났다. 청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한 후, 경성법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 1945년, 33세로 괴산군수로 부임하여 뛰어난 행정력을 발휘해 군민들의 사랑을 받았다. 그 이듬해 청원군수로 부임하여 많은 사업을 추진하였다. 특히, 농민들의 편에서 업무를 추진하여 뛰어난 군수로서 이름을 얻었다. 제2대 국회의원에 1950년 당선...
-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팔봉리 출신으로 초창기 한국근대문학 발전에 크게 기여한 평론가 겸 소설가. 한국 낭만주의 문학의 거점이라고 할 수 있는 『백조』 동인으로 활동하였으며, 최초의 근대 연극단체라 할 수 있는 ‘토월회’를 조직하여 활동하였다. 1923년 『개벽』에 처음으로 프로 문학 이론을 소개하였다. 이후 ‘카프(KAPF)’ 발기인으로 프로 문학 운동에 참...
-
한국화가. 부인은 여류화가 박래현이다. 1913년 2월 28일 서울에서 출생하여, 7세에 장티프스로 청각을 잃고, 부모의 도움으로 그림을 그리기 시작하였다. 2001년 1월 23일 충청북도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 ‘운보의집’에서 향년 86세에 숙환으로 죽었다. 승동보통학교를 졸업했다. 이당화숙(以堂畵塾)에서 김은호(金殷鎬)에게 그림을 배워 6개월만에 「판상도무(...
-
청원군 출신의 근대조각가. 호는 정관(井觀)이며, 아버지는 김홍규, 어머니는 김현수이다. 소설가 김기진의 형이며, 아내는 허하백이다. 배재고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토월회(土月會)에서 활동하고, 토월미술연구회, 기독청년회, 경성여자상업학교 등의 강사로도 있었다. 1925년 카프(KAPF)의 발기인으로 조선공산당 중앙위원에 가담했다가 6년간의 옥고를 치르는 불우한...
-
충청북도 청주지역에서 활동했던 연극인. 1957년 문총내 연극분과 발기인 5명(이정실, 김성렬, 김근수, 이상훈, 송주헌) 중 한명으로 대한적십자사충북지사 사무국장으로 재임하며 김근수 등 뜻있는 연극인들과 결속하여 충북연극협회 창립에 중추적 역할을 했다. 1959년 한국연극협회로부터 승인을 받아 초대지부장을 역임했다. 매년 충북예술제 행사에 때맞춰 연 1회 연극공연을 무...
-
근·현대 청주지역의 육영사업가. 자수성가하여 학교법인 청석학원을 설립한 교육사업가이다.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호는 청암(淸巖)이다. 아버지는 김한중(金漢重)이고, 어머니는 여양진씨(驪陽陳氏)이다. 동생으로는 함께 교육사업에 전념한 석정(錫定) 김영근(金永根)이 있다. 아들로는 청주대학교 총장을 지낸 김준철(金俊喆) 박사가 있는데 생부(生父)는 석정 김영근이다. 경상북...
-
근현대 충청북도 청주시 출신의 학자이자 독지가. 김원중(金元中)[1890~1967]은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 저산리에서 김용국(金容國)의 아들로 태어났다.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백춘(伯春), 호는 추담(秋潭)이다. 어릴 때부터 가학(家學)으로 학문을 익힌 한학자였으나 일제 강점기에 신학문의 필요성을 느끼고 자비로 보통학교를 설립하여 수백 명의 인재를 양성하였...
-
충청북도 청주시 출신의 교육자이자 독지가. 김유복례(김유례)는 1910년에 태어나 16세에 결혼해 청상이 된 후 3남매 마저 모두 잃고 평생을 혼자 살았다. 청주에서는 욕쟁이 할머니로 유명하며, 평생 모은 재산을 충북대학교에 기탁했다. 김유복례는 1997년 작고하였다. 김유복례의 재산 기탁 이후 김유례 장학재단이 설립되었으며 충청북도 청주시 지역의 건전한 기부...
-
개항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학자. 김윤수(金允洙)[1867~1944]의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학일(學一), 호는 붕재(臟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김재성(金在聖)이고, 할아버지는 김상현(金商鉉)이다. 아버지는 김영록(金永錄)이고, 어머니는 문화 유씨(文化 柳氏)이다. 아들은 김용구(金容龜)이다....
-
성악가로서 시인으로서 교육자로서 청주지역사회에 기여했던 예술가. 테너 김일회는 청주세광고를 거쳐, 청주사범대학에 입학, 현악기인 콘트라베이스를 전공하다 대학3학년 말에 성악으로 전공을 바꾸어 졸업하였다. 이후 충청남도 홍성에서 중학교 교사로 재직하다 34살의 나이로 이탈리아로 유학하여 5년간 공부와 연주활동을 하고 1995년 귀국하였다. 귀국 후 독창회, 오페라, 듀오콘서트 등 전...
-
근현대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정치인. 김재광(金在光)[1922~1993]의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호는 서강(西剛)이다. 아버지는 김동묵(金東默)이고 어머니는 유옥(柳玉)이다....
-
근현대 충청북도 청주시 출신의 기업인이자 정치인. 김제원(金濟源)[1913~1987]은 1913년 12월 22일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봉산리에서 태어났다. 일본으로 유학하여 1934년 와카야마현립고등상업학교를 졸업하였다. 광복 이후인 1948년 불하 매각으로 대전 삼성동에 있던 조선이연항공기재공장을 인계받아 1951년 동생 김창원(金昌源)과 함께 자동차 부품 제조...
-
군인. 충청북도 청원군 부용면 외천리에서 김성균(金成均)의 장남으로 출생하였다. 일본 주오(中央)대학 재학 중 1944년 학도병으로 입대, 소위로 임관되었으나 일본의 패망으로 귀국하였다. 국방경비대에 1946년 입대, 1947년 제1연대장이 되었고, 한국동란 때는 제6사단장으로 참전하였다. 그 후 육군사관학교 교장, 국방부 합동참모본부총장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
-
청주의 향토기업인 한국도자기의 창업주. 호는 청운(靑雲), 본관은 김해(金海)로 청원군 오창면 가곡리에서 출생했다. 어려서 한학을 공부하고 오창보통학교를 마쳤다. 신앙심이 깊어 1959년 중앙신학교에 입학, 사회사업학과를 졸업하였다. 해방 전 대동목재를 설립, 일찍부터 사업의 길에 투신하고 삼광사, 충북제도 등 기업을 경영했다. 1959년, 충북제도인수 대표이사로 취임하...
-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활동한 교육자. 충청북도 보은군 보은읍에서 4남 2녀 중 막내로 태어난 김천호는 제11대, 12대 충청북도 교육감을 역임한 교육자로 교육을 위해 헌신하다 2005년 6월 20일 새벽 충청북도 청주시 봉명동 교육감 관사에서 심장마비를 일으켜 63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김천호는 1962년 4월부터 1978년 7월까지 주성초등학교, 석...
-
군인·정치가. 1921년 5월 청원군 북일면 입동리에서 태어났다. 청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만주건국대학에서 수학하였다. 조국에서의 독립투사들의 독립운동을 보았고, 조국과 겨레의 비통을 느꼈다. 일제가 강제 징집을 하였던 1945년 1월 1일 학도병으로 출정하여, 3월에 육군소위로 임관되었다. 8·15 해방과 더불어 건군(建軍)을 미리부터 염려하고 동지를 모아 선각자가...
-
청주 출신의 문학인. 1928년 9월 20일 아버지 민중식(閔重植)과 어머니 신상희(申尙喜)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그의 집안은 민구관(閔舊官)댁으로 불려졌는데, 당시 충청북도 제일의 부호였다. 민병산의 큰 할아버지는 구한말에 괴산군수와 청주군수를 지낸 민영은(閔泳殷)이었으며, 아버지도 일본 와세다대학 정경학부를 나온 엘리트였다. 그가 살았던 상당구 문화동 집은 1천여평이...
-
향토기업 신흥제분의 창업자. 호는 한암. 본관은 여흥(驪興)으로 경기도 안산군 서운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본래는 양반 가문의 천석지기 부호의 장손으로 태어났으나, 할아버지의 유산을 선대가 탕진함에 따라, 어려서부터 고생을 하며 성장하였다. 어려서 어머니를 네 살에 잃고 외가와 숙모댁에서 자랐다. 17살 되던 해에는 민씨(閔氏) 문중이 있는 청주로 와서 친척이 되는 민참령(閔參領...
-
일제강점기에 청주지역에서 활동한 교육자. 본관은 순천(順天)이고, 자는 경홍(景洪)이며, 호는 우당(愚堂)이다. 사인(士人) 박형규(朴亨圭)의 장남이다.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 동양촌에서 출생하였다. 창암(滄庵) 박노중(朴魯重) 선생의 문하에서 다년간 수학하여 사서(四書)와 삼경((三經)을 통달하였다. 1980년 향년 80세로 죽으니 문하생 일동이 묘비를 세웠다. 향리에...
-
근현대 청주지역의 유지. 일제강점기 때 일본으로 건너가 부를 축적하고 귀국하여 청주지역 발전에 기여한 지방 유지이다.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치상(致祥)으로 교리공파(校理公派) 하복대 문중의 인물로 청주시 흥덕구 비하동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박흥규(朴興圭), 어머니는 전주이씨(全州李氏)이며, 부인은 청주이씨 이명해(李明海)이다. 자녀는 3남 2녀를 두었는데 세 아들은 모...
-
청주 출신의 교육자, 사회사업가. 1883년 6월 11일 청주에서 출생하였다. 일찍이 신학문에 눈을 떠 경성제일고등보통학교를 졸업하고, 보은삼산공립보통학교 훈도로 교육계에 투신하여 인재 양성에 힘썼다. 1932년 음성군수까지 역임하고, 해방 후 다시 교육계로 되돌아와 1945년 10월부터 1947년 11월까지 청주여중 교장을 지내고, 학무국장을 역임하였다. 6·25 동란...
-
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국악인. 박팔괘(朴八卦)[1882~1940]의 본관은 밀양(密陽)이다. 아버지는 동지중추부사 박영춘(朴英春)이고, 어머니는 순흥 안씨(順興 安氏)이다. 가야금 연주의 대가로 충청제(忠淸制) 가야금 산조와 가야금 병창 창시자이다....
-
충청북도 청주지역에서 활동하였던 연극인. 청주고등학교를 거쳐 1977년 2월 충북대학교 국어교육과를 졸업하였다. 충청북도 증평군 형석중학교 등에서 국어교사로 재직하였다. 1973년 시민극장과 충북대학교 극예술연구회를 통하여 연극에 입문하여 청주를 근거로 왕성하게 활동한 연극배우였다. 1973년 시민극장에 입단하여 제5회 전국소인극경연대회에 「옹고집전...
-
시인, 출판문화인. 1927년 7월 20일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면 산덕리에서 출생하였다. 아버지는 신재한(辛在漢)이며, 어머니는 김대련(金大湅)으로 2남 3년 중 차남으로 태어났다. 1929년 아버지가 죽자 1932년 청주로 이주하여, 초등학교와 중등과정을 마치고 신흥대학교(현 경희대학교)에 수영특기생으로 입학 1948년 런던올림픽 대표선수로 선발되었으나 늑막염의 발병으로 포기하고...
-
근현대 충청북도 청주시 출신의 언론인이자 정치인. 신범식(申範植)[1923~1992]의 본관은 고령이다. 아버지는 독립운동가 신백우(申伯雨)이고, 어머니는 진주 류씨(晉州 柳氏)이다....
-
개항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서 활동한 학자. 오백수(吳白秀)[1876~1957]의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는 주보(周輪), 호는 창명(槍鳴)이다. 보성 오씨 족보에는 오한수(吳翰秀)로 등재되어 있다. 증조할아버지는 오형만(吳亨晩)이고, 할아버지는 오문흠(吳文欽)이다. 아버지는 오연영(吳淵英)이고, 어머니는 곽봉규(郭鳳圭)의 딸 현풍 곽씨(玄風 郭氏)이다. 부인은 박해정(朴海錠)...
-
근현대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정치인이자 교육자. 오범수(吳範秀)[1915~1997]의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호는 월강(月岡)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오형하(吳亨夏)이고, 할아버지는 오현석(吳玹錫)이다. 아버지는 오연성(吳淵成)이고, 어머니는 교하 노씨(交河 盧氏)이다....
-
청주에서 활동한 교육자.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호는 자하(紫霞)이다. 충청북도 괴산군 청천면 화양동에서 태어났다. 청주고등보통학교와 경성제대 법과를 졸업하였다. 1938년부터 괴산군청 등에 재직하였다. 해방 후에는 교육계에 뜻을 두어 청주고등학교, 공주교육대학교 등 여러 학교에서 교장을 지냈다. 그 후 청주교육대학에서 1963년 7월부터 1964년 3월까지...
-
현대 충청북도 청주 출신의 사업가이자 교육자. 1947년 충청북도 청주군 북이면 학평리[현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학평리]에서 태어난 윤석용(尹碩鏞)은 1975년 한양대학교 정치외교학과를 졸업한 후에 사업을 시작하여 1984년 10월에 주식회사 한국레미콘과 주성산업의 회장을 역임하는 등 사업가로 크게 성공했다. 기업을 운영하면서 청소년 교육에도 크게 관심을 기울여 한국해양소...
-
근현대 충청북도 청주시 출신의 기업인. 윤용구(尹溶求)[1908~1993]의 호는 송파(松波)이며, 1908년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수곡리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손재주가 좋아 은반지나 은비녀 등을 만들어 파는 금은방을 운영하였고 어머니는 1910년에 사망하였다. 윤용구는 1930년 청주공립고등보통학교[현 청주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경성약학전문학교[현 서울대학교 약...
-
초대 청주시장을 지낸 행정가. 1949년 8월 15일부터 1951년 10월 15일까지 약 2년 2개월간 초대 청주시장을 역임하였으며 본적은 충청북도 음성군 원남면 하당리이다. 가족은 5남 1녀를 두었고 단양군수 등을 역임한 이종혁이 둘째 아들이고, 청주대학교 2대 총장과 전주대학교 총장을 지낸 이종익(李鍾翊) 박사가 셋째 아들이다. 지방의회에서 선출된 초대시장 이규석은 1949년...
-
청원군 출신의 실업인이며 언론인, 교육사업가. 호는 문헌이며,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면 노현리에서 이예승(李禮承)의 차남으로 태어났다. 어려서부터 한학을 공부하고, 제2고보(지금의 서울 경복고등학교)를 거쳐 경성제대 법문학부를 졸업했다. 1946년 30대의 청년으로 일신산업주식회사를 설립하고, 1950년에 남한제사주식회사 사장에 취임하였다. 국회의원 선거에 나서 청원군에서...
-
의사이며, 충북지사를 역임한 행정가. 호는 가동(可東). 본관은 한산(韓山)으로 고려 말의 학자 인재공 이종학(李種學)의 19대손이다. 인재공은 목은(牧隱) 선생의 둘째 아들이니, 그는 명문의 후예로 청원군 오창면 백현리에서 태어나, 성장하였다. 15세까지 소학, 사서 등 한문을 수학하고, 그 후 신학문에 접하여 사립 보성중학을 거쳐 경성의학전문학교를 나왔다. 전문학교를 마친 선생...
-
청주에서 성장한 정치인. 1940년 일본 메이지대학(明治大學) 법학과를 입학하여 이듬해인 1941년에 중퇴하였다. 30여 년 야당 외길을 걸으며 6선에 국회부의장을 지낸 정계의 거목(巨木)이었다. 김영삼(金泳三), 김대중(金大中), 두 김씨(金氏)와 같은 세(勢)를 누리지는 못하였지만 1980년대 중반 정치 암흑기에 제1야당 당수로서 정계의 핵으로 활약했다. 해방직후인...
-
청주에서 활동한 문화예술인, 음악인. 충청남도 논산시 강경읍에서 출생하였다. 1940년대부터 충청북도에서 음악활동을 시작하여 1949년 문교부에서 주최한 전국 남녀고등학교 음악발표대회가 개최되었는데, 이때 청주사범 관악대가 참가하여 좋은 반응을 받았다. 그 이후 충청북도 음악협회 지부장, 충북예총 지부장 등을 역임하였다. 청주교육대학교 교수로 재직하...
-
충청북도 청주의 서예가. 충청북도 청원군 문의에서 태어나 청주상업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시암 배길기 선생의 사사와 함께 서예교사 양성소를 거쳐 중등교사로서 교직에 종사하며, 서예를 통한 후학 양성에 전념하다가 평교사로서 정년퇴임한 후 74세로 생을 마치셨다. 국립현대미술관 초대작가를 지냈으며 대한민국미술대전 심사위원을 역임하고, 대한민국서예전람회 심사...
-
청주 출신의 의료인. 청주중학교을 거쳐 경성치과의학전문학교를 졸업했다. 경성제국대학 의학부 병리학교실에서 2년 남짓 연구하고, 1941년 청주 상당치과의원을 개업했다. 1947년에 사재를 털어 고향에 한국 최초의 보건소를 설립, 운영했고, 토지개혁 이전인 1948년에 1백섬 지기의 땅을 소작인들에게 시가의 반값에 주었다. 한국동란 때는 북한군에 납치...
-
사진작가. 1932년 10월 8일에 청주에서 태어났다. 주성초등학교, 청주공업고등학교(현 청주기계공업고등학교), 청주대학교 법학과를 졸업하였다. 1965년 결혼을 하였으며, 충청북도청에 취직하여 회계, 감사직에 주로 근무하면서 청렴결백하여 맡은바 업무를 훌륭하게 처리한 공로로 대통령으로부터 표창, 훈장을 받았고, 1996년에 사무관으로 퇴직하였다. 일찍이 사진에 관심을...
-
근대 개항기의 문신. 대한제국 시기 청주군수(淸州郡守)를 지냈다. 청주군수로 재직하면서 그는 백성들의 구습을 타파하고 새로운 규범을 정착시켰으며, 공평무사하게 일처리를 하며 농업 장려에 적극적이었다. 이러한 그의 선정(善政)에 감복한 청주의 사음(舍音)인 전주사(前主事) 김형식(金衡植)과 도감관(都監官) 나성희(羅聖凞), 김영주(金英柱) 등이 1901년에 선정비를 세웠...
-
근대 청주지역의 유지. 본관은 부안(扶安)이며, 자는 기범(箕範), 호는 한은(翰隱)으로 전서공파(典書公派)의 인물이다. 아버지는 임재천(林在天), 생부는 장예원경(掌隷院卿)에 증직된 임순상(林舜相)이다. 어머니는 성주배씨(星州裵氏), 생모는 경주김씨이다. 세 명의 부인을 얻어 슬하에 4남 2녀를 두었다. 1902년 관직에 나아가 내부주사(內部主事)를 지냈으며, 1910년에는 중추...
-
학자, 음악인. 경상북도 영천 출생으로 서울대학교 음악대학 교수를 거쳐 청주대학교 명예교수를 지냈다. 1961년 일본에서 개최된 동아음악회의에 한국 대표로 참가했으며 국립국악원 도일(渡日)공연 및 일본 초청 강연을 가졌다. 세종(世宗)대왕 아악실위원, 한국국악교육연구회장, 서울대학교 부설 동양음악연구소장, 청주대학교 민족음악자료관장을 지냈다. 1968년에는 서울대학교에서...
-
청주 출신의 상공인, 정치인 청주중학교을 거쳐 연희대학 경제과를 졸업하였다. 어릴 때부터 총명한 재질로 사람들의 기대를 모으고, 한때 향토 일간지인 국민일보사에 입사하였다. 제2세 교육을 위해 청주공업고등학교, 청주고등학교에서 교편을 잡은 뒤 충북대학교 교수를 지냈다. 5·16군사혁명 이후 충청북도 민주공화당을 창건하는데 협조하고, 1963년에는 청주에서 제6...
-
청주에서 활동한 산악인. 1961년 1월 20일 충청남도 논산에서 2남 5녀의 셋째로 태어났으며, 1999년 4월 29일 네팔의 안나푸르나(Annapurna Mt.)[8,091m] 등정 후 하산길에서 실종되었다. 1979년 청주사범대학교(현 서원대학교) 미술교육과에 입학하면서부터 산과 인연을 맺기 시작하였다. 대학교 3학년이 되던해인 1981년에는 청주사범대학교 산악부...
-
청주시의 행정가.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에서 채성용(蔡成用)과 김순임(金順任)의 장남으로 태어났다. 청주시 총무과장을 거쳐 보은, 옥천, 음성, 청원군수를 지냈다. 보은군수를 지낼 때는 말티재 도로를 넓히고 정비하였다. 1971년부터 1976년까지 청주시장을 재임하는 동안 1971년 무심천(無心川)에 벚꽃나무를 심고, 우암산 우회도로를 만들었다. 충...
-
일제강점기 청주지역의 유지.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자는 영록(永錄), 호는 학초(學樵)이다. 고려말 두문동 72현의 한 분인 전서공(典書公) 채귀하(蔡貴夏)의 후손이며, 사헌부감찰(司憲府監察)을 지낸 채종길(蔡宗吉)의 10세손이다. 아버지는 채상학(蔡相學), 어머니는 경주김씨(慶州金氏), 부인은 안동김씨(安東金氏)이다. 아들로는 채기영(蔡基榮)과 채기달(蔡基達)이 있다....
-
청주 출신의 정치인, 법조인. 청주고등보통학교(청주고등보통학교)를 거쳐 경성법전을 졸업했다. 1943년에 청주상업고등학교 교사로 이 지역 후학의 교육 발전을 위해 힘썼다. 1947년에는 변호사 시험을 거쳐 1951년에 변호사를 개업하였다. 청년변호사로 엄정하고 공정한 변론으로 명망이 높았다. 전쟁이 끝나고 1960년 청주대학교 강사로 강단에 서기도 했는데, 이...
-
청주의 언론인 겸 문인. 1932년 충청북도 진천군 초평면에서 태어났으며, 2001년 10월 10일 숙환으로 사망했다. 1943년 청주사범학교에 입학하였고 1955년 서울대학교 문리대 정치학과를 졸업하였다. 1958년 청주문화원장에 취임하였고 1959년에는 청주여자고등학교 교사 1960년에는 전국 문총 충북지부장, 1962년에 한국예총 충북지부 결성과 함께 초대지부장에...
-
연극인. 충청북도 진천군 진천읍 신정리에서 출생하였다. 서라벌예술대학을 졸업했다. 충청일보 기자와 문화부장, 광고부장을 거쳤으며, 극단 시민극장 창단 멤버로 연극활동을 본격 시작했다. 단원활동을 시작으로 시민극장 대표까지 역임했다. 1960년대 말기 최석하는 민병인, 박태련, 조중현, 김순지 등과 함께 청주 연극의 기둥이 되어 활동을 벌여왔다. 이후...
-
청주 출신의 아동문학가·교육자 1897년 11월에 상당구 남문로1가에서 아버지 최순오(崔順五)와 어머니 성주(星州) 이씨(李氏) 사이에서 외아들로 태어났다. 청주보통학교(현 주성초등학교)와 청주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1916년에 청주군 북일면의 면서기로 공직 생활을 시작으로 2년 후에는 청주면사무소로 전근했다가, 1923년에 사립 청남학교 교사가 되어 교육계에...
-
청원군 출신의 공무원. 본관은 청주(淸州)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에서 태어났다. 청주농업학교를 졸업하였다. 관계에 투신하여 충청북도 농무과장을 거쳐 충청북도 농촌진흥원장을 역임하면서 충청북도의 농촌경제 안정을 위해 심혈을 기울였다. 1962년 충청북도 농촌진흥원장을 정년퇴임하고 대한적십자사 충북지사장으로 70세가 넘어서까지 지역사회를 위해 봉사했다....
-
청주시에서 활동한 언론인이며, 행정가.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호는 청곡(淸谷)으로 충청북도 괴산군 청안면에서 태어났다. 경성협성실업을 졸업한 뒤, 언론계로 투신하였다. 동아일보 인천주재 기자를 시작으로 광복 이후에는 동아일보 청주지국장, 주간동아 충북판 발행인, 지금의 충청일보 전신인 충북신보 주간 등을 역임하며 언론활동을 하였다. 초대 충북도의회 의원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