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32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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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復鎭 |
영어음역 | Kim Bokjin |
분야 | 역사/근현대,성씨·인물/근현대 인물 |
유형 | 인물/예술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근대/근대 |
집필자 | 김기현 |
[정의]
청원군 출신의 근대조각가.
[가계]
호는 정관(井觀)이며, 아버지는 김홍규, 어머니는 김현수이다. 소설가 김기진의 형이며, 아내는 허하백이다.
[생애]
배재고등학교 교사로 있으면서 토월회(土月會)에서 활동하고, 토월미술연구회, 기독청년회, 경성여자상업학교 등의 강사로도 있었다. 1925년 카프(KAPF)의 발기인으로 조선공산당 중앙위원에 가담했다가 6년간의 옥고를 치르는 불우한 생활 속에서도 한국의 근대 조각을 개척하는데 공헌했다.
[학력]
1924년 도쿄미술대학 조각과를 졸업했다.
[활동사항]
김은호(金殷鎬) 등과 조선미술원(朝鮮美術院)을 창립하였다. 작품으로 미완성인 법주사(法住寺)의 「미륵대불(彌勒大佛)」, 금산사의 「불상」, 「백화(白花)」, 「소년」 등이 있다. 토월회에서는 「카튜샤」, 「채귀(債鬼)」, 「오로라」 등의 무대장치를 했다. 이때의 장치는 배경화(背景畵)였으나 일본의 무대장치보다 훨씬 앞섰다는 평을 들었다.
[작품]
법주사(法住寺)의 「미륵대불(彌勒大佛)」, 금산사의 「불상」, 「백화(白花)」, 「소년」 등이 있다.
[묘소]
충청북도 청원군 팔봉산 자락에 있다.
[의의와 평가]
우리나라 근대 조각사의 올바른 정립과 자리 매김을 위해서 정관 김복진은 우리나라 조각사와 민족사에 기록되어야할 인물이다. 한국 근대 미술사 중에서 조소의 위치는 조선 후기의 조각과 20세기 초를 연결하는 중요한 가교 역할을 하며, 그 잣대로 김복진(金復鎭)[1901~1940]의 작품세계연구를 빼놓을 수 없다.
더군다나 그는 20세기 미술 비평에 있어서도 탁월한 능력을 지니고 있어 그가 보여준 미학이나 미술 교육학적 업적은 상당한 위치에 있기에 김복진의 재평가는 여사와 함께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