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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임진왜란 당시의 의병. 본관은 의성(義城)이다. 임진왜란 때 중봉(重峰) 조헌(趙憲)[1544~1592]과 더불어 창의하여 1592년(선조 25) 8월 17일 충청도 금산 전투에서 칠백의사와 함께 장렬하게 순절하였다. 금산의 칠백의총에 묻히고, 비가 세워졌다.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에는 의병장 조헌에 대한 기록과 함께 김선복에 대한 사실에 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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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1728년(영조 4)에 청주 일대를 배경으로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무신란) 당시 어머니 상을 당하여 여막(廬幕)에서 생활할 때였다. 무신란의 소식을 접하고는 상당성(上黨城)에 나가 역적들을 토벌하고, 그 공으로 녹훈(錄勳)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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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1728년(영조 4)에 청주 일대를 배경으로 일어난 이인좌(李麟佐)의 난(무신란) 당시 의병을 일으킨 충신이다. 의병 17인을 이끌고 역도의 무리 중에서 군교(軍校) 한진흥(韓震興)을 베고 역적 토벌에 공을 세웠다. 당초에는 녹훈에 이름이 빠졌으나, 1788년(정조 12) 무신년에 종정(從征)한 장사(將士)로서 생존한 사람과, 의를 지켜 순국(殉國)하였으면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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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자는 겸숙(兼叔)이다. 공조참판 김자항(金字恒)의 아들이다. 상신(相臣) 김우항(金宇杭)의 서질(庶姪)이다. 할아버지는 김홍경(金洪慶)이고, 증조할아버지는 김덕승(金德承)이다. 서울에서 살다가 청주 상당산성 아래로 이사하였다. 어머니에게 효도를 다하였고, 체력이 남달리 뛰어나 남대문루를 뛰어넘었다 한다. 1728년(영조 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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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일명 무신란)이 일어나 목사(牧使) 박당(朴鏜)은 도피하고 우후(虞侯) 박종원(朴宗元)은 성을 내주고 투항하니 역도의 무리들은 이인좌를 대원수라 칭하고, 신천영(申天永)은 병사(兵使), 권서봉(權瑞鳳)은 목사로 가칭하여 청주를 쉽게 점령해 버렸다. 청주성이 함락되었다는 급보를 들은 김천장은 진천 방면에서 의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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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의병.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이며, 호(號)는 삼함당(三緘堂)이다. 지금의 청원군 오창면 출신이다. 1576년(선조 9) 진사(進士)에 급제(及第)하였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에는 여러 고을에 격문(檄文)을 돌리어 의병(義兵)을 일으켰다. 의병 5백 명을 이끌고 충주(忠州), 죽산(竹山) 경계에 포진하여 관군과 함께 왜적과 싸워 크게 전공(戰功)을 거두었다. 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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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천성이 강직하고 효우(孝友)가 지극했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일명 무신란)이 일어나자 그 해 3월 18일 발군(發軍)하여 적당을 소탕하기로 마음먹고 경기도 안성 죽산으로 향하여 3일간 머물렀으나, 그 뜻을 다하지 못하고 적당의 손에 살해되었다. 그 충절이 알려져 정려(旌閭)되어 충신문(忠臣門)을 세워졌고 아울러 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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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 본관(本貫)은 교하(交河)이며, 자는 여화(汝和)로 청주 출신이다. 병자호란 때 아우 노극시(盧克時)와 더불어 창의(倡義)하여 감사(監司) 정세규(鄭世䂓)의 진에 이르러 싸웠으나 관군이 크게 무너지므로 단삼(單衫)에 혈서하여 말에 붙이고 형제가 용감히 싸워 전사하였다. 말이 집으로 돌아갔는데, 그 혈서에 ‘군신의 죄가 중하여 처자와 인연을 끊는다’라고 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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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여흥(驪興)이며, 예종조에 이조정랑을 지낸 민수(閔粹)의 8세손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청주 일대에서 난(일명 무신란)을 일으키자, 청주목사(淸州牧使)이던 박당(朴鏜)은 도피하고, 우후(虞侯) 박종원(朴宗元)은 성을 내주고 투항해 버렸다. 이 때 민진수는 일문종당(一門宗黨)과 인근 친지 100여 명을 규합하여 의병을 일으켰다. 사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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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 청주지역의 의병장·충신. 본관은 순천(順天)이고, 자는 시응(時應)이며, 호는 매은당(梅隱堂)이다. 교리공(校理公) 박인년(朴引年)의 후손으로 흥덕구 강서동 출신이다. 아버지는 임진왜란 때 청주에서 의병을 일으켜 조헌(趙憲)[1544~1592], 영규대사(靈圭大師)[?~1592]와 함께 청주성 탈환에 공을 세운 민양공(愍襄公) 박춘무(朴春茂)[1544~1611]이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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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신. 창의사.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사호(士毫), 호는 서호산인(西湖山人)이다. 박민웅(朴敏雄)은 부사 박원진(朴元震)의 손자이다. 도량과 재간이 뛰어나고 활쏘기와 말타기에 능하여 소년 때부터 이름이 났다. 뒤에 장붕익(張鵬翼)과 이봉상(李鳳祥)[1676~1728]이 각각 국사(國士)로서 조정에 천거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 등이 반란(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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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창의 인물.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언백(彦伯)이다. 창의사(倡義使) 박민웅(朴敏雄)의 아우이고, 할아버지는 부사(府使) 박원진(朴元震)이다. 임진의병장 박춘번(朴春蕃)의 현손이다. 청주 출신으로, 어려서부터 기골이 장대하여 무예가 뛰어났으나, 무과에 등과하지는 못했다. 1727년(영조 3)에 어사 김시형(金始炯)이 역사(力士)로 천거하였으나 탁용(擢...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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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임진왜란 때 청주성 전투에서 활약한 의병.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영의정 박란(朴蘭)의 손자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인근 사림의 추앙을 받고 있던 중봉(重峰) 조헌(趙憲)[1544~1592]의 의병진에 합류하였는데, 이 때 나이 21세였다. 1592년 왜군이 청주성까지 진격하자 청주성에서 전투가 크게 벌어졌는데, 7월 28일 전사하였다. 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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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성향(聖鄕), 호는 농아재(聾啞齋)이다. 충청북도 보은 회인(懷仁) 출신 타고난 기개와 큰 도량(度量)을 갖춘 인물인 동시에 담력이 있었다. 오로지 학문에 열중하였고, 의분(義憤)이 대단하였으며, 부모를 섬기는 효성 또한 대단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가 난(일명 무신란) 청주를 주 무대로 난을 일으키자 당시 목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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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충신.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임진 의병장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5대손이며, 병자호란 때 순절한 박동명(朴東命)[1576~1636]의 현손으로 삼대 창의(倡義)의 충절을 자랑한다. 어릴 때 『삼국지(三國志)』 제갈량(諸葛亮)의 출사표를 외우고 감상하길 즐겼다. 1727년(영조 3)에 부친상을 당하여 여막(廬幕)에서 생활하던 중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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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충신. 본관과 가계가 미상이다. 형 박춘훤(朴春萱)과 동생 박춘련(朴春蓮)이 있었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동림산(東林山)으로 피신한 것으로 보아 청원군 옥산면 일대에서 거주했던 것으로 추측된다. 형 박춘훤, 동생 박춘련과 더불어 3형제가 효성과 우애가 지극하였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가족과 형제가 모두 동림산 북쪽 광대동(光大洞)으로 피난을 갔는데, 갑자기 왜적이 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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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문신, 의병장(義兵將).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호는 화천당(花遷堂)이다. 임란의병 박춘번(朴春蕃)의 형이다. 음보(蔭補)로 출사하여 찰방(察訪)을 거쳐,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 때 창의사(倡義使)가 되어 의병을 일으키고 조헌(趙憲)[1544~1592]과 함께 호서지방을 지키는 데 큰 활약을 하였다. 그 해 7월 4일 청주 복태리에서 의병을 일으켜 종사관 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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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진왜란 당시 청주를 중심으로 활동했던 의병장. 임진왜란 당시 청주성 탈환과 진천 전투에서 활약한 의병장 박춘무(朴春茂)[1544~1611]의 동생으로 형과 함께 왜군 토벌에 공을 세웠다. 본관은 순천(順天)이며, 자는 경원(慶元)이다. 평양부원군(平陽府院君) 박난봉(朴蘭鳳)의 후손이며 이조판서(吏曹判書) 박중림(朴仲林)의 9세손이다. 아버지는 진사(進士) 박기정(朴箕精)으로 용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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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本貫)은 초계(草溪)이며, 자(字)는 예보(禮甫)이다. 청주 출신으로 증조할아버지는 변시망(卞時望)의 동생인 변시익(卞時益)이다. 벼슬이 통정대부승정원좌승지겸경연참찬관춘추관수찬관(通政大夫承政院左承旨兼經筵參贊官春秋館修撰官)에 이르렀다. 할아버지는 변단(卞摶)으로 조봉대부경릉참봉(朝奉大夫敬陵參奉)을 지냈다. 이조참판겸동지의금부사오위도총부도총관(吏曹參判兼同知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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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인물, 임란의사(壬亂義士). 본관은 평산(平山)이며, 자는 문길(文吉)이다. 고려 개국공신이었던 장절공(壯節公) 신숭겸(申崇謙)의 후손이다. 1592년(선조 25)에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충청북도 청원군 오창지역으로 진격할 때 왜적에게 사로 잡혀 일본으로 끌려갔다. 왜국으로 끌려간 신예남(申禮男)은 그들의 온갖 협박과 위협에도 굴하지 않고 조선인으로서의 절개를 지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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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728년에 일어난 무신란에 청주 상당산성에서 반란군을 토벌한 의병장. 본관은 곡산(谷山)이며, 자는 문거(文擧)이다. 아버지는 1693년 인현왕후(仁顯王后) 폐위의 부당성을 상소하여, 심한 국문을 받아 옥사한 감찰 연최적(延最績)이다. 1728년(영조 4)에 영조(英祖) 무신란이 일어나자 창의(倡義)하여 조지성(趙持誠), 조완담(趙完澹)의 부자를 시켜 의병 40여 인을 모아 청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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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병장.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호는 기허당(騎虛堂)이다. 충청남도 공주시 계룡면 월암리에서 출생하였다. 충청남도 계룡산 갑사 청련암에서 수도할 때 선장(禪杖: 승려의 지팡이)으로 무예를 익혔는데 따를 자가 없을 정도로 출중하였다.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영규대사(靈圭大師)[?~1592]는 승려들의 창의(倡義)를 독려하였지만 따르지 않았다. 영규대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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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창의사(倡義使).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는 덕보(德甫), 호는 상당일민(上黨逸民)이다. 오덕명은 한성부서윤 오소(吳熽)의 손자이며, 호조참의에 증직된 오응창(吳應昌)의 아들이다. 생부는 호조참판에 증직된 오필창(吳必昌)이다. 어려서부터 지략이 뛰어나고 천성이 충효하여 정의감이 남달랐다. 과거에 낙방하자 30세 후에는 상당산(上黨山)[419m] 아래 집을 짓고 상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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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의병. 유사인(柳思仁)[?~?]의 본관은 진주(晉州)이며, 호는 상의재(尙義齋)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유의근(柳義勤)이고, 할아버지는 유희로(柳希老)이다. 아버지는 유호(柳顥)이고, 어머니는 성주 도씨(星州 都氏)이다. 부인은 조방훈(趙邦勳)의 딸 평양 조씨(平壤 趙氏)이다. 아들은 유환(柳瓛)·유원(柳瑗)·유종(柳琮)·유경(柳璟)·유진(柳璡)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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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장.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창의(倡義)하여 의병장으로 그의 아들 유정기(柳挺箕), 유정두(柳挺斗)와 사교(士校) 김두강(金斗江) 등 의병을 거느리고 안성 죽산에서 패주하는 적도(賊徒) 유해(柳海)를 사로잡아 토벌에 공을 세워 녹훈(錄勳)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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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고성(高城)이며, 자는 무숙(茂叔), 호는 한죽당(寒竹堂)으로 천성이 효성스럽고 학문이 박식하였다. 이인좌(李麟佐)의 난에 의병을 일으켜 이붕해(李鵬海), 민진완(閔鎭緩), 변관하(卞觀下) 등 의병장과 청주 인근 산하에서 군사를 수습하여 인솔하고 청주읍성(淸州邑城) 남문밖에 이르니 이미 창의사(倡義使) 박민웅(朴敏雄)이 적의 두목을 처참한 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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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효자. 이도명(李道明)[1687~1754]의 본관은 완산(完山)이며, 자는 토통(土通)이다. 아버지는 이민의(李敏義)이고 어머니는 유동하(柳棟厦)의 딸 진주 유씨(晉州柳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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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1685년 청주 남면에서 출생하였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청주 근처에서 김진희(金晉熙), 박종귀(朴宗龜), 이도명(李道命) 등과 창의(倡義)하여 의병장으로 훈공(勳功)을 세웠다. 난을 평정한 뒤 포상에서 빠졌으나, 1887년(고종 24)에 감찰(監察)에 증직(贈職)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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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한산(韓山)이며, 고려 말의 명현(明賢)인 목은(牧隱) 이색(李穡)[1328~1396]의 13대손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그의 종제(從弟) 이사해(李思海), 당질(堂姪) 이중저(李重著), 향인(鄕人) 김양구(金陽龜) 등을 이끌어 청주 근처 산하에서 수백 인을 모아 창의하여, 청주성의 동문을 치고 창의사(倡義使) 박민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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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의병장.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자는 성수(聖叟)이고, 밀성군(密城君)의 후예이다. 1728년(영조 4) 이인좌(李麟佐)의 난이 일어나자 청주 인근의 친지를 모아 70여인을 얻었다. 종질(從姪) 이태지(李泰之)를 부관(副官)으로 삼고, 당질(堂姪) 이원지(李元之), 이형지(李亨之) 형제를 종사관(從事官)으로 삼고, 삼종(三從) 이희명(李希命)과 이종인(李宗人), 이민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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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충신. 임진왜란 때 왜군이 청주지역을 지날 때 왜장을 사살하여 그 목을 용만(龍灣) 행재소(行在所)에 바쳤는데, 이것이 왜장을 목 베인 처음 일이라 선조(宣祖)는 매우 기뻐하였다. 그 후 종군하여 순국하니 명나라 조정에까지 알려졌으며, 선조대에 오근촌(梧根村)에 충신의 정문(旌門)이 세워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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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이자 의병장. 본관은 한양(漢陽)이며 자는 숙거(叔擧), 호는 모계(慕溪)이다. 조순생(趙順生)의 후손으로 아버지는 조승윤(趙承胤), 어머니는 조황(趙璜)의 딸 평양조씨이다. 처음 정사현(鄭思顯)에게 글을 배웠고, 뒤에 성제원(成悌元)과 송인수(宋麟壽)[1487~1547]를 사사하였다. 성리학(性理學)에 통달하였다. 효성이 지극하여 일찍이 어머니의 병에 들오리(野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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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문신, 유학자, 의병장. 본관은 배천(白川)이고, 자는 여식(汝式)이며, 호는 중봉(重峰)·도원(陶原)·후율(後栗)이다. 경기도 김포 출생이다. 조응지(趙應祉)의 아들이다. 1555년(명종 10) 12세 때 김황(金滉)에게 시서(詩書)를 배웠다. 1565년 성균관에 입학하였으며, 1567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였다. 1568년(선조 1) 관직에 올라 정주목·파주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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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문신. 최란선(崔蘭善)[1609~1637]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언방(崔彦邦)이고, 할아버지는 최완(崔𡸥)이다. 아버지는 형조참판 최응허(崔應虛)이고, 어머니는 이희(李熹)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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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문신. 최응허(崔應虛)[1572~1637]의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자는 공진(拱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수준(崔秀俊)이고, 할아버지는 최언방(崔彦邦)이다. 아버지는 최완(崔𡸥)이고, 어머니는 노식(盧植)의 딸이다. 부인은 이희(李熹)의 딸 전주 이씨(全州 李氏)이고, 아들은 최란선(崔蘭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