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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열녀.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그의 남편 강득룡(姜得龍)이 출전(出戰)하매 그의 옷에다 실로 십(十)자 표시를 해두었다. 남편이 전사하자, 그녀가 표시한 것을 증거로 남편의 시체를 찾아 장례를 예법대로 치렀다. 그 후 청상으로 기거하면서 시부모를 섬김에 효를 다하고, 정절을 지키며 수절하니 이웃 사람들의 칭찬이 끊이질 않았다. 효종 때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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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자. 본관은 청주(淸州)이며, 자는 대유(大有), 호는 남계(南溪)이다. 정렬공(貞烈公) 경복흥(慶復興)의 7세손이며 좌랑(佐郞) 경신직(慶臣直)의 아들이다. 학식이 고명하고 만고의 효자로 널리 알려졌다. 청원군 남일면 모산(茅山)에서 살았다. 조선 세조 임금 때에 조정(朝廷)에서 불렀으나 출사(出仕)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병석에 눕자 겨울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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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청주 출신이며, 양민으로서 효행이 극진하였다. 어머니가 개가를 하였는데, 모친과 이부(異父)를 지극 정성으로 섬기었다. 나이 17세에 형을 대신하여 요동(遼東)의 역(役)에 나갔다. 이때에 봉림대군(鳳林大君)[뒤에 효종 임금]도 청나라의 볼모로 잡혀 요양에 있었다. 조선과 청나라의 협상으로 요동에 있던 조선 군사를 돌려보내게 되었다. 고억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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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의 효자.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자는 영지(永之)이다. 곽상조의 아명은 백수(百壽) 이다. 현풍곽씨(玄風郭氏)를 포산곽씨(苞山郭氏)라고도 한다. 아버지는 곽형호(郭亨浩), 어머니는 교동인씨(喬桐印氏)이다. 큰아버지는 효자로 정려된 곽원호(郭元浩)이며, 할아버지는 곽진은(郭鎭殷), 증조할아버지는 곽여찬(郭汝贊)이다. 아들은 곽유엽(郭有燁), 곽진엽(郭晋燁), 곽최엽(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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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청주 출신이다. 순조(純祖) 때의 사람으로 네 살에 부친을 여의고 편모(偏母)를 지성으로 봉양하며 늙도록 효도를 다하였다. 어머니 상 때에는 비바람을 가리지 않고 성묘하였다. 어려서 아버지 상을 입지 못하였던 일을 한탄하더니 그의 회갑에 이르자 한이 맺혀 상복을 갖추어 상례(喪禮)를 삼년간 다하니 정성이 대단하여 향리에 널리 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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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현풍(玄風)이고, 아버지는 곽진은(郭鎭殷)이며, 어머니는 인천이씨(仁川李氏)이다. 효자 곽진은의 아들로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였다. 곽원호와 그의 아버지, 할아버지 삼대에 걸쳐 효행으로 정려(旌閭)된 효자 집안이다. 여덟 살 때에 묘소 아래 수리(數里)에 걸쳐 소나무와 참나무를 심으니 후에 숲을 이루고 울창하게 되었는데 이것은 효심에서 한 일이었다. 부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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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현풍(玄風)이며, 아버지는 곽여찬(郭汝贊)이다. 청주 출신으로 부인은 인천이씨(仁川李氏)이다. 효자 곽여찬(郭汝贊)의 아들로 아버지의 효행을 이어받아 어머니 병환에 손가락을 자른 피로 어머니를 구한 일이 있다. 아버지 병환을 고치려고 정성을 다하였으나 약값을 마련하지못해 도리가 없어 관가에 나가 공천(公賤)에 몸을 팔려고 하였더니, 관가에서 그 효는 가상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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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 효자 곽진은(郭鎭殷)의 부인이다. 본관은 인천(仁川)이며, 남편은 곽진은이고, 청주 출신이다. 친정에서 부모에 효를 다하였고, 출가하자 늙고 가난한 시모를 지성으로 봉양하였다. 인천이씨(仁川李氏)는 시부모의 병을 고치고자 머리를 깎아 팔았다고 한다. 인천이씨의 효행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1850년(철종 1)에 정려(旌閭)되었다. 인천이씨 효자각은 남편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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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청주 출신으로, 가세가 가난하였으나 벼슬을 구하지 않았다. 어머니가 돌아가신 뒤 묘소 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살았는데 감천(甘泉)이 계절로 솟아 나왔고 산나물이 돋아났으며, 호랑이가 나와 낯익어 벗이 되고 의승(義僧)이 와서 지켜 주었다. 집상(執喪)이 끝나고 돌아가려 하니 중도 범도 간 곳이 없고 샘물도 또한 말라 버렸다. 이 이상한 일을 지평(持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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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청주 출신이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노모(老母)를 업고 산간(山間)으로 피난하다가 왜적(倭賊)을 만나 싸웠다. 양손으로 칼을 막아 손가락이 모두 끊어졌음에도 끝내 그 모친을 놓지 않으므로 왜적이 뒤로 돌아 그 모친을 살해하고자 하니 그는 어머니를 안고 칼을 맞아 죽었다. 1633년(인조 11)에 정려(旌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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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청주의 열녀. 열녀 전씨(全氏)는 선비 김당(金唐)의 부인이다. 열행이 뚜렷하였기에 장계를 올려 정려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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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김학성(金學性)의 넷째 아들이다. 어머니가 병석에 눕자 형제들이 모두 손가락을 베어 그 피를 마시고 수일동안 연명하다가 돌아가셨다. 어머니 묘소 옆에 여막을 짓고 3년동안 시묘살이를 했으며, 넷째 아들이면서도 정성을 다했다. 김병위의 효행이 널리 알려져 1875년(고종 12) 청주 영장(營將)이 표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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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자. 두 아우와 같이 살면서 함께 부모 봉양을 지극히 하였다. 모친이 죽자 슬퍼하고 사모하는 정성을 다하였고, 삭망 전에는 반드시 술과 음식을 갖추어 올리니 사람들이 옷을 벗어 도와주는 이도 있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旌閭)되었다 한다. 『성종실록(成宗實錄)』에는 다음과 같은 내용이 전한다. 예조(禮曹)에서 충청도관찰사(忠淸道觀察使)...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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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청주 출신이다. 2세 때에 생모(生母)가 돌아가셨다. 14세에 종가(宗家)로 입양(入養)되었으나 항상 친부를 잊지 못하여 꿩과 토끼를 잡고 생선을 낚아 봉양하였다. 효행이 뛰어나 향리에서 여러 번 영문(營門)과 조정에 상신(上申)한 바 있으나 정려(旌閭)되지 못하고 1828년(순조 28) 그 효행이 인정되어 동몽교관(童蒙敎官)에 증직(贈職...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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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청주 출신이다. 벼슬은 집의(執義)를 지냈다. 품성이 질박하고 성실하여 실속이 없으면서 뽐냄이 없었다. 4세에 모친을 여의고 농사를 지어 정성껏 부친을 모시는데 조금도 뜻을 거스르지 않았다. 어려서 어머니 상을 일찍 당한 것이 한이 되어 부친상 때에 상청(喪廳)을 함께 배설하여 삼년상을 치렀다. 송시열(宋時烈)이 글을 짓고 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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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남편은 김억손(金憶孫)이다. 청주 출신 열녀로 19세에 남편이 죽었고, 그 후에도 시어머니에게 효성을 다하였다. 들에 나가 나물을 캐는 데 강폭한 자가 야욕을 품고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니 칼로 팔을 베어버렸고 죽을 때까지 수절하였다. 이 일이 조정에 상신되어 정려(旌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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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 본관은 김해(金海)이며, 남편은 김여산(金如山)으로 청주 출신이다. 김여산의 처로 시부모에게 효성이 지극하였다. 남편의 병환이 위급하자 세 차례나 손가락을 잘라 남편을 치료하였다. 아들 아홉형제를 선도하였으므로 여러 번 쌀과 고기가 하사되었다. 1883년(고종 20)에 정문(旌門)이 내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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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청풍(淸風)이며, 청주 출신이다. 효성이 지극하여 지성으로 어버이를 공양하였다. 일찍이 도적이 집에 들어 칼날이 그 어머니에게 미칠 때 김연이 몸으로 막으니 도적도 감격하여 범하지 못하였다. 그 뒤 어머니가 등창이 나서 앓을 때에 밤낮으로 고름을 빨아 낫게 하였다. 모친의 병환에 지성을 다하고자 눈 속에서 알몸으로 하늘에 빌기가 일쑤였는데 지성이 지극함인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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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주지역의 효자. 본관은 광산(光山)이며, 자는 복경(福景)이다. 집이 비록 가난했으나 어버이를 극진히 섬긴 효자이다. 병환중인 아버지가 추운 겨울에 잉어를 먹고 싶다고 하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서 드시게 하였으며, 돌아가시기 직전에는 손가락을 자른 피로 3일간 목숨을 연장시키기도 하였다. 마침내 부친이 죽자 묘소 옆에 여막을 짓고 3년상을 치렀다. 1875년(고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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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경주(慶州)이며, 청주 출신의 양민이다. 효성이 지극하였다. 일찍이 그 부친이 병환이 들자 농사일을 잊어가며 극진히 간호하였다. 또한 전답을 팔아 시탕(侍湯)하였으며, 대소변을 직접 입에 대어 맛을 보아가면서 병의 차도를 진단하였고, 주야로 하늘에 빌었더니 병이 치유되었다 한다. 효행이 널리 알려져 숙종 조에 정려(旌閭)되었고, 아울러 복호(復戶)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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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김정오(金鼎五), 김정삼(金鼎三), 김정일(金鼎一)의 형이며, 청주 출신이다. 천성이 착하여 부모에 대한 효성이 지극하였고 예절과 몸가짐이 고매하였다. 모친의 병환에 강의 물고기가 먹고 싶다하므로 그 아우 김정오, 김정삼, 김정일과 더불어 그물을 가지고 개울에 나갔더니 갑자기 누치(訥魚) 한 마리가 그물로 들어 왔다. 또한 꿩 두 마리(雙雉)가 마당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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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호는 계인당(繼忍堂)이다. 김형집(金亨集)의 아들이다. 청주 출신으로 어릴 때부터 학문에 심취하여 문장이 세상에 뛰어났고, 타고난 천성이 순효(純孝)하였다. 부모가 병이 깊어지자 간호를 극진히 하였고, 엄동설한에도 죽순을 구하여 시봉(侍奉)하였으므로 백성들이 그 효성을 칭찬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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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효부.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는 한득일(韓得一)이며, 안동인(安東人) 김현(金炫)의 처이다. 안동김씨 김현의 후처로 들어가 시부의 제사를 지성으로 모셨고, 시모를 효양으로 섬기어 주위의 칭송이 매우 컸다. 남편이 병이 들자 고름을 입으로 빨아내어 병을 고치는 데 힘을 쏟았고, 남편이 죽자 곡읍(哭泣)하기를 그치지 않더니, 다음날 목을 매어 남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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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本貫)은 안동(安東)이며, 돈령(敦寧) 김복원(金復元)의 아들로 청주 출신이다. 효행이 뛰어났고 성리학(性理學)에 조예가 깊었다. 「삼재체용도(三才體用圖)」를 만들었으며, 암행어사김명진(金明鎭)이 이것을 보고 탄복하였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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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本貫)은 청풍(淸風)이며, 청주 출신이다. 벼슬이 통훈대부(通訓大夫) 행남부주부(行南部主簿)이 이르렀다. 형인 김호철와 함께 형제가 효성이 지극하였다. 부모가 병석에 눕자 형제가 모두 손가락을 잘라 병을 치유하였다. 부모상을 당하여 생전의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예를 다하였다. 숙종(肅宗) 임금 때에 쌍효(雙孝)로 정려되었다. 뒤 사람이 그 정문의 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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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순조(純祖) 임금 때 사람으로 효성(孝誠)이 극진(極盡)하였다. 부친이 신체가 부어오르는 병으로 오랫동안 고생하였다. 백약(百藥)이 듣지 않아 걱정하던 중 주변에서 잉어를 써보라 하기에 추운 겨울에 얼음을 깨고 잉어를 잡아 썼더니 차도가 있었다. 부모가 노환으로 음식을 먹지 못하고 홍시를 먹고 싶다고 하므로 친구 집이 있는 문경(聞慶)까지 120리 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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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本貫)은 청풍(淸風)이며, 청주 출신이다. 동생 호설은 벼슬이 통훈대부(通訓大夫) 행남부주부(行南部主簿)이 이르렀다. 형제가 모두 효성이 지극하여 이름이 높았다. 부모가 병석에 눕자 형제가 모두 손가락을 자른 피로 병을 치유하였다. 그 뒤 부모상을 당하여 생전의 부모님을 그리워하며 예를 다하였다. 숙종(肅宗) 임금 때에 쌍효(雙孝)로 정려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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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孝子). 본관은 고성(固城)이며, 자는 사인(士仁), 호(號)는 용암(勇菴)이다. 부인은 파평윤씨(坡平尹氏)로 윤득규(尹得圭)의 딸이고, 남양홍씨(南陽洪氏)는 홍우섭(洪友燮)의 딸이다. 태종 때 문과에 합격하여 부수찬(副修撰)과 수원목사(水原府使), 삼도방어사(三道防禦使), 병조판서(兵曹判書), 체찰사(體察使)를 지낸 김희량(金希亮)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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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부모에 지극한 효성을 보여 여러 번 천거되고 벼슬이 증직되었다. 본관은 의령(宜寧)이며, 자(字)는 은여(隱汝)로 개국공신 강무공(講武公) 남은(南誾)의 14세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남학령(南鶴翎), 할아버지는 남의관(南義寬), 아버지는 가선대부내무협판(嘉善大夫內務協辦)에 증직된 남기묵(南紀黙)이고 어머니는 남양홍씨(南陽洪氏)이다. 빈궁하였으나 효성이 뛰어나 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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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노계원(盧繼元)의 증손이다.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 병환에 한겨울임에도 얼음을 깨고 물고기를 잡아 공양(供養)하였으며,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아버지를 소생시켜 생명을 2년이나 연명시켜 드렸다.이에 사람들이 그 효성을 칭송하였고, 조정에 알려져 1729년(영조 5) 복호(復戶 : 조선시대 충신·효자·절부(節婦) 등에게 요역과 전세 이외의 잡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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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함양(咸陽)이다. 청주 출신이며, 그의 부친은 판서(判書)로서 나이가 100세에 이르렀는데 아들에게 부축을 받아 조석으로 문안을 드렸으며, 상고(喪故)에 노후(老後)임에도 여막(廬幕)에서 3년을 보냈다. 이 사실이 조정에 알려져 효행으로 정려(旌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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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부(孝婦). 본관은 안동(安東)이다. 아버지는 김대일(金大鎰)이고 남편은 박준덕(朴峻德)이며, 시아버지는 박돈화(朴墩和)이다. 박준덕의 아내로 시부모께 극진히 효도를 하였다. 시부모 상을 당하자 여막(廬幕)에서 3년을 지냈으며, 남편이 병으로 앓을 때 손가락을 자른 피로 남편을 구하기도 하였다. 이러한 일로 인해 효열(孝烈)로 정려되었다. 남편 박준덕은 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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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무과 합격자, 효자. 본관은 밀양(密陽)이며, 자는 백희(伯喜)이다. 대사헌 와촌(瓦村) 박문고(朴文古)의 5대손이며, 교관(敎官)에 증직된 박재근(朴在謹)의 아들로 청주 출신이다. 1816년(순조 16)에 무과에 등과하여 여러 번 선전관의 명망에 들어갔다. 어머니의 병으로 손가락을 잘라 효를 행했고 이러한 사실이 알려졌다. 충청북도 청원군 남일면 행정(杏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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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청주지역의 효자. 본관은 초계(草溪)이고, 자는 양백(養伯)이며, 호는 사익재(四益齋)이다. 정국공신(靖國功臣) 변준(卞寯)의 현손으로 알려져 있다. 어려서부터 효행이 지극하였다. 아버지를 일찍 여의고 집안이 매우 가난하였으나 홀어머니를 섬김에 지극한 정성을 다하였다. 어머니의 병환에 여러 차례에 걸쳐 목욕재계하고 정성껏 하늘에 빌었더니 어머니의 병이 쾌차하여 고을사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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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청주지역의 효자. 본관은 이천(利川)으로 양경공(良景公) 서유조(徐愈早)의 후손이다. 청원군 문의면 도원리 출신이며, 아버지는 서봉남(徐奉南)이고, 할아버지는 서복만(徐福萬)이며, 증조할아버지는 서응년(徐應年)이다. 효성이 지극하였으며 부모님 공양에 최선을 다하였다. 병환중인 아버지가 추운 겨울에 잉어가 먹고 싶다고 하자 저수지에 가서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는데, 무릎...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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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 후기 청주 출신의 향리이자 효자. 청주의 향리로서 백성으로부터 조금도 재물을 취하지 않았다. 1378년(우왕 4) 왜구가 고을에 침입하자 어린 아들딸들이 옷을 붙잡고 울부짖었으나 그는 돌아보지 않고 바로 집으로 달려가 모친을 업고 도망하여 숨어서 화를 면하였다. 이 일에 대해 마을 사람들이 탄복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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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손혁(孫赫) 처 박씨(朴氏)는 4년 시묘(侍墓)와 20년 이상 남편의 제사를 게을리 하지 않은 열녀로 조선 성종 때 정려되었다. 손혁의 처 박씨는 남편이 죽자 무덤 옆에 여막(廬幕)을 짓고 3년을 슬퍼하더니 다시 1년을 지낸 뒤에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매월 초하루와 보름에 몸소 제사 지내기를 20여 년 동안 조금도 게을리 하지 않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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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미숙(美淑), 호는 송암(松巖)이다. 아버지는 신혁(申氵奕)이고, 할아버지는 신득홍(申得洪)이며, 부인은 한산이씨(韓山李氏)이다. 동생으로 신만제(申萬濟)와 신창제(申昌濟)가 있었다. 어린 나이에 아버지께서 병석에 누워 있자 간절한 마음으로 인삼을 구하여 드렸다고 한다. 효행이 지극하여 1677년(숙종 3)에 지평(持平)으로 증직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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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효자. 본관은 아주(鵝州)이며, 신심(申鐔)은 효자 신지익(申之益)의 아들이다. 병자호란에 갑작스럽게 적병을 만나 자신의 몸으로 부모를 막고 슬피 울며 살려줄 것을 청하니 적병들도 차마 어찌하지 못하였다. 또한 어머니의 병에 단지(斷指)하여 구완하였다. 산외면(山外面) 송동리(松洞里) 삼효각(三孝閣)에 아버지 신지익, 사촌 신협(申鋏)과 함께 숙종 때 효로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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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민사건(閔思謇)의 딸이며, 공조참판에 증직된 신예남(申禮男)의 아내이다. 임진왜란 때 남편 신예남을 따라 진보(眞寶)로부터 청주 오창(梧倉)으로 옮겨 살았다. 왜적이 들이닥쳐 신예남이 잡히자 적에게 뛰어들어 구하고자 하였다. 심하게 다친 채 뜻을 이루지 못하고 두 아들을 데리고 고향 진보로 옮겨가 남편의 의관으로 초혼장(招魂葬)을 지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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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아주(鵝州)이고, 효자 신심(申鐔)의 아버지이고, 효자 신협(申鋏)의 숙부이다. 일찍이 부친을 여의고 홀어머니를 지극한 효성으로 모셨다. 어머니가 병환이 나자 목욕재계하고 북두칠성에 빌었으며,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어머니 병간호를 하였다. 상을 당하여서는 애통함이 지나쳐 곡을 하다 혼절하기도 하였으며, 최질을 풀지 않고 집상(執喪)하였다. 이 일이 조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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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자.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호는 종산(種山)이다. 문과에 급제한 이듬해 임진왜란 때 의병으로 나갔다가 청요직을 거쳐 감사를 역임한 신용(申涌)의 손자이고, 아버지는 신득치(申得治)이다. 1684년(숙종 10) 정시(庭試) 갑과(甲科)에 장원한 신필청(申必淸)이 그의 아들이다. 부인은 권서(權緖)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천성적으로 효행을 타고 났었다. 9살에 그의 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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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아주(鵝州)이며, 청원군에서 효자로 이름 높았던 신지익(申之益)의 조카이고, 효자 신심(申鐔)과 종형제이다. 어머니가 병환이 들자 지극정성으로 간호하였고, 차도가 없자 자신의 손가락을 잘라 그 피로 어머니를 소생시켜 주위로부터 효성이 크게 알려 졌다. 그의 효성은 집안 내력이었다. 숙부 신지익과 종형제 신심 등 한 집안에서 3명의 효자가 나와 나라에서 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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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자. 백정의 신분으로 어머니를 잘 모시어 이름난 효자였다. 양수척(楊水尺)은 조선 세조~성종 년간에 상당구 운동동 비선거리에서 두 아우들과 함께 살았는데, 주위 사람들에게 많은 무뢰와 횡포를 저질렀을 뿐만 아니라 늙은 어머니에게도 공손치 못하였다. 이에 노모는 항상 이들 형제를 걱정하다 병을 얻어 눕게 되고, 마침내는 누운 채로 배변까지 하게 되었는데 이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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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본관은 하동(河東)이며, 남편은 양탁연(楊卓然)이다.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 일대에 거주했던 것으로 파악된다. 부인은 선비 양탁연의 아내로 임진왜란 때 딸과 함께 산속으로 피난을 가다가 왜적에게 발견되었다. 왜적이 겁탈을 하려고 하자 화를 내어 욕을 하며 저항하다가 결국 딸과 함께 왜적의 칼에 죽임을 당하였다. 정절을 지키려다 목숨을 잃었음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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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열녀 김씨(金氏)는 여이현의 부인으로 열행이 있어, 조정에 알려져 정려되었다. 현재 정려는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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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청주 출신으로 아버지가 병이 들어 꿩고기, 물고기, 노루고기 등을 먹고 싶어 하자, 이것들을 모두 잡아다가 봉양하기를 극진하게 하였다. 향리 사람들은 하늘이 그 효도에 감탄하여 쉽게 구해진 것이라고 칭찬하였다. 부모상을 당하여서는 여막에서 삼년을 지내면서 예를 다하였는데, 이 일이 조정에까지 알려져 포상의 은전을 받았다. 1665년(효종 6)에 정려(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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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자. 청주 출신으로 1597년(선조 30) 정유재란이 일어나자 어머니를 업고 피난하였다. 그 때 왜적에게 잡혀 포로가 되었을 때, 적이 그의 어머니를 칼로 해치려는 순간 어머니를 안고 엎드려 함께 목숨을 잃었던 효자였다. 그는 자식 없이 죽었기 때문에 조정에서 포상할 대상이 없어 향리인들이 안타까워했다고 전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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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효자.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고려 고종(高宗) 때 몽고군 격퇴에 공을 세워 보성군에 봉해진 오현필(吳賢弼)의 후손이다. 아들이 효자로 이름 높은 오진택(吳振澤)이고, 손자 오정기(吳鼎基) 역시 효자로 칭송되었다. 청주 출신으로 효행이 뛰어났으며 학문 또한 고명(高明)하여 칭송이 높았다. 아들과 손자 모두가 효행으로 이름 높아 국가로부터 복호(復戶)의 은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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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청주 출신으로 어머니의 병이 깊어지자 똥을 직접 맛을 보아가면서 병의 차도를 진단하였을 정도의 효자였다. 어머니가 생선이나 과일 등 먹고 싶다는 음식은 모두 구해다가 봉양하였다. 친기(親忌 : 부모의 제사)가 닥칠 무렵 키우던 개가 새끼 낳을 때가 되어 걱정하고 있었는데, 이틀 동안 사라졌던 개가 새끼를 낳아 물고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이웃 사람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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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청주 출신으로 타고난 효성으로 이웃으로부터 칭송을 들었다. 가세가 빈한하여 밖에서 맛있는 음식을 접하면 반드시 집으로 갖고 와서 어버이에게 드렸고, 먼저 먹는 법이 없었다. 어버이가 병이 들었을 때는 침식을 폐하고 병간호에만 매달렸다.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어버이를 업고 태백산으로 들어가 음식이 있으면 먼저 어버이에게 드리고, 다음에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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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청주 출신으로 조선시대 이름난 효자이다. 아버지가 병이 들어 꿩고기가 먹고 싶다 하자, 지성으로 이를 구하여 봉양하였다. 효행으로 이름 높아 조정에서 중추부사(中樞府事)란 관직을 내리고, 삼대(三代)를 추은(推恩)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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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청주 출신으로 조선 중기에 효행으로 이름 높았다. 1700년(숙종 26)에 장례원(掌隷院) 별검(別檢)에 증직(贈職)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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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고려 고종(高宗) 때 몽고군 격퇴에 공을 세워 보성군에 봉해진 오현필(吳賢弼)의 후손이다. 효자로 칭송되었던 오진택(吳振澤)의 아들이고, 역시 효자로 이름 높던 오상건(吳尙健)의 손자이다. 청주 출신으로 효행으로 이름 높던 청원군의 보성오씨(寶城吳氏) 가문에서 태어나 어릴 때부터 효행이 몸에 배어 있었다. 그가 죽은 후 나라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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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효자. 오준립(吳俊立)[1587~1667]의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자는 수보(秀甫)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오천령(千齡)이고, 할아버지는 오세양(世暘)이다. 아버지는 오경지(景智)이고, 어머니는 첨사 안순개(安舜凱)의 딸 순흥 안씨(順興 安氏)이다. 부인은 윤택(尹澤)의 딸 파평 윤씨(坡平 尹氏)이고, 아들은 오상영(吳尙英)·오상성(吳尙聖)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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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보성(寶城)이며, 고려 고종(高宗) 때 몽고군 격퇴에 공을 세워 보성군에 봉해진 오현필(吳賢弼)의 후손이다. 아버지는 효자로 이름 높은 오상건(吳尙健)이고, 아들 오정기(吳鼎基) 역시 효자로 칭송되었다. 청주 출신으로 효행이 뛰어나 하늘에서 나왔다고 여길 정도였고, 학문 또한 고명(高明)하여 칭송이 높았다. 아들과 손자 모두가 효행으로 이름 높...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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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 남편은 이실만(李實萬)이다. 관청의 노비였는데 19세에 이실만의 처가 되어 시아버지를 섬김에 효성을 다하고, 시어머니 제사도 지성으로 지냈다. 그 행실을 귀히 여겨 잡역에서 해방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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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문화(文化)이다. 타고난 성품이 지극히 효성스러웠으며 부모를 극진히 봉양하여 고을 사람들이 모두 감탄하였다. 이러한 효행으로 현종(顯宗) 때 복호(復戶)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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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판서 윤찬(尹贊)의 증손이다. 부모를 섬기는데 지극히 효도하고, 부모의 상을 당하여 여막(廬幕)에서 지낼 때, 까치 두 마리와 까마귀 두 마리가, 3년을 두고 같이 울었다. 그 나무를 효자나무(孝子樹)라 하고 명정(命旌)되었다. 충청북도 청원군 북이면 내추리에 그의 효자문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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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열녀. 남편은 이대윤(李大潤)이다. 진사 이대윤의 처 현풍곽씨(玄風郭氏)는 8세 때에 손가락을 자른 피로 아버지의 병환을 낫게 한 일이 있었다. 출가하여 효도로서 시부모를 섬기고 공경으로 남편을 받들었다. 갑자기 남편이 몸져 눕자 정성껏 간호하였으나 세상을 버리자 청상으로 보냈다.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시외가로 피난하여 외조부모 묘소를 성묘하던 도중 왜병을 만났다. 왜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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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동래부사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첩이다. 동래부사였던 송상현을 따라가 부산에 있으면서 1592년 왜적 침입의 소문이 일자 송상현이 한양으로 피신을 시켰다. 그 후 동래성이 함락되었다는 소식을 접하고 통곡하면서 송상현을 따라 죽겠다며 동래로 돌아왔다 종 만개(萬介)·금춘(今春)과 더불어 왜적에게 포로가 되었으며 이후 일본으로 보내져 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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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열녀. 청주 출신으로 사인(士人) 이영시(李榮時)의 처이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군이 청주에 당도하였을 때 피난하던 중 왜적에게 잡혀 손이 묶인 채 말에 태워져 끌려가고 있었다. 이 때 하씨(河氏)가 몰래 뛰어내려 왜적에게 항거하다가 무참히 살육을 당하였다. 이 일이 조정에 알려져 정려(旌閭)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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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부. 본관은 안동(安東)이며, 선비 이지동(李之董)의 부인이자, 효행으로 복호된 김정삼(金鼎三)의 손녀이다. 효부 안동김씨는 남편이 일찍 죽자 함께 죽을 것을 맹세하였다. 그러나 두 눈이 먼 시어머니가 병으로 누워 있어 차마 남편을 따라 죽지 못하고 6년동안 간호하였다. 안동김씨는 머리에 기름을 바르고 시어머니와 나란히 누워 머리의 이가 자기 머리로 옮겨오게 하고, 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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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열녀. 본관은 안정(安定)이며, 효행으로 정려를 받은 나운걸(羅云傑)의 딸이자, 진사(進士)를 지낸 경주이씨(慶州李氏) 이혼(李渾)의 부인이다. 나씨는 어렸을때부터 성품이 정숙하였는데, 나이 22세가 되자 경주이씨 문중의 이혼과 혼인하였다. 효성으로 시부모를 봉양하고, 남편을 따랐는데, 남편의 등에 등창이 나서 목숨이 위태롭게 되었다. 이에 나씨가 칼로 그 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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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절을 지켜 정려된 무녀(巫女). 남편은 재인(才人)인 강선재(姜善才)이고, 아버지는 효자로 이름난 정상명(鄭尙命)이다. 거주지는 청주(淸州)이다. 성품이 효성스러워 출가하기 전 아버지가 피부병에 걸려 종기가 나서 앓을 때 입으로 아버지의 고름을 빨아 고친 일이 있었다고 한다. 재인인 강선재에게 출가하였는데, 남편이 죽자 항상 몸에 칼을 지니고 불의의 일을 막으려 하였으므로 누구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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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효자. 임기백(任岐白)[1777~1803]의 본관은 풍천(豐川)이며, 자는 공성(公成), 호는 영은(靈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임포(任誧)이고, 할아버지는 임성하(任聖夏)이다. 아버지는 임시건(任時健)이고, 어머니는 장봉채(張鳳彩)의 딸 인동 장씨(仁同 張氏)이다. 부인은 안동 권씨(安東 權氏)이고, 아들은 임태원(任泰原)이다. 형은 임주백(任...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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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제강점기의 열녀. 본관은 강릉(江陵)이며, 아버지는 김계선(金啓先)이고, 남편은 성산전씨(星山全氏) 전병화(全炳華)이다. 1911년에 출생하였으며 일찍 아버지를 여의자 홀로 남으신 어머니를 위하여 효를 다하였다. 16세에 성산인(星山人) 전병화에게 출가하여 아내로서의 도리를 다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남편이 일본에 갔다 와서 병을 얻어 여러 달 고생을 하였는데 부인은 지성으로 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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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열녀. 본관은 충주(忠州)이며, 아버지는 장령(掌令)을 지낸 지전(池筌)이고, 남편은 통정대부 군자감정(軍資監正)에 추증된 충의위(忠義衛) 정검(鄭儉)이다. 부인은 하늘로부터 타고난 효성스러운 성품을 지녔으며, 하동정씨(河東鄭氏) 정검에게 시집을 가서는 지극한 정성으로 시부모님을 섬겼다. 임진왜란(壬辰倭亂) 때 왜적을 피해 딸과 함께 마을 뒤 응봉산(鷹峯山)으로 피신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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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중기의 효자. 본관은 동래(東萊)이다. 부모가 병을 앓을 때에 의원이 말하기를 잉어를 써야 한다 하여 겨울날 못에 나가 울었더니 얼음을 뚫고 잉어가 나와 약으로 쓰니 효과를 거두었다. 또 어머니가 병을 앓아 잉어가 생각난다 하니 크게 가물어 물이 말라 구하기가 어려웠다. 하늘을 보고 울자 갑자기 큰 비가 내려 돌길에 두 마리의 잉어가 튀어 나왔다. 거두어 약으로 쓰니 효과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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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후기의 효자. 판서 정사호(鄭賜湖)의 증손으로, 사인(士人) 정의창(鄭儀昌)의 아들인데 그의 모친 채씨는 효부로 정려(旌閭)되었다. 정성과 공경으로 부모를 섬기고 부친 병환에 손가락을 잘랐으며, 상고(喪故)에 죽은 이를 슬퍼하고 그리워함이 도를 넘고 여막(廬幕) 삼년간 주야로 울며 조밥과 맨소금으로 집상(執喪)하더니 복상(服喪)이 끝나고 쓰러졌다. 모자 양대의 효행이 조정에 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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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 효녀이며 효부. 사인(士人) 정의창(鄭儀昌)의 처로서 천성이 효성스러웠다. 아버지의 병에 단지(斷指)한 일이 있었고, 출가한 뒤 병든 시어머니를 젖을 짜 봉양하여 수명을 연장하였다. 이 행위로 정려(旌閭)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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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 선조대의 열녀. 열녀 이씨는 정지신(鄭之信)의 부인이다. 임진왜란이 일어나 왜적을 만나자 자결하여 정려가 내려졌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충청도읍지(忠淸道邑誌)』, 『호서읍지(湖西邑誌)』, 『조선환여승람(朝鮮寰輿勝覽)』에 이씨의 열행이 기록되어 있다. 남편 정지신도 이름난 효자로 청주목 남이면 노천동리에 효자 정려를 건립했다. 현재 정려는 모두 남아있지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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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1799년(정조 23)에 출생하였으며, 효행이 뛰어나 1892년(고종 29) 동몽교관(童蒙敎官)이 증직(贈職)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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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학문을 좋아하였으며 선현을 본 삼기에 힘썼다. 50세에 상고(喪故)를 당하자 여막(廬幕)생활 3년동안 한서풍우(寒暑風雨)를 무릅쓰고 공산(空山)에 홀로 거처하여 생식(生食)하였다. 원근이 그의 효행에 감탄하였으며, 청원군수는 그 독행을 표창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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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열녀. 본관은 문화(文化)이며, 충경공(忠景) 유량(柳亮)의 후손인 진사 유식(柳湜)의 딸이며, 승지(承旨)를 지낸 조태명(趙台命)의 아들인 조종혁(趙宗爀)의 후처이다. 한양조씨(漢陽趙氏) 충정공파 족보에 의하면 조태명은 조종환, 조종혁, 조종섭의 세 아들을 두었는데, 큰아들 조종환은 조태승의 양자로 들어갔으며 부인은 광산김씨였다. 셋째인 조종섭은 무과에 급제하여 선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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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자는 사완(士緩)이며, 호는 지선당(止善堂)이다. 몸소 밭을 갈아 부모님을 모시며 어려서 아버지의 병에 대변을 맛보아 증세를 살피고, 어머니의 병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드려서 소생시켰다. 부모상에 시묘하는 6년간 범이 와서 지켜 주었다 한다. 순조 때에 침랑(寢郞)에 천거되고, 1893년(고종 30) 효로써 유림에서 상소하고, 또 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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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열녀. 본관은 원주(原州)이며, 문정공(文定公) 이진(李珍)의 후손인 이재곤(李載坤)의 딸이다. 한양조씨(漢陽趙氏) 조진혁(趙鎭爀)의 아내로 남편 조진혁이 청원군 강내면에 살았다. 부인은 어려서부터 성품이 효성스러웠다. 어려서 아버지가 아플 때 아버지 대신 자기가 아프게 해달라고 하늘에 기도하여 아버지의 병환이 차도가 있었다 한다. 시집 간 다음 해에 잠시 친정에 왔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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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나이 10세에 도적을 만나 몸으로 아버지를 막다가 도적이 잔인하게도 어린 천상의 왼손 두 손가락을 칼로 잘라버렸다. 그 뒤 모친의 병환이 급하게 되자, 그는 손가락을 잘라서, 피를 드려서 어머니를 구하였다. 그래서 그의 부친이 울면서 말하기를, “전에는 애비를 위하여 도적에게 두 손가락을 끊기고, 이번에는 에미로 하여 또 한 손가락을 끊으니, 부모로 하여 너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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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한양(漢陽)이고, 자(字)는 성구(聖九)이며, 호는 죽헌(竹軒)이다. 영모제(永慕齊) 조학수(趙學洙)의 아들이다. 다설 살에 아버지를 여의고, 할머니와 홀어머니를 받들었다. 큰 손자로서 17세에 할아버지와 아버지의 제사를 모시게 되었다. 죽으로 끼니를 이어 여윈 나머지 손발이 뒤틀리기까지 하였으나 조상의 제사에 정성을 다하였다. 지팡이에 의지하여 아침저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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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자는 희보(希甫)이다. 1767년(영조 43) 충청북도 청원군 북일면 신화동에서 출생하였다. 효우(孝友)가 뛰어나, 사림이 정서(呈書)한 바 있으나, 정포(旌褒)에 이르지 못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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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평양(平壤)이며, 자는 우경(虞卿)이다. 효우(孝友)로 세상에 알려져 송치규(宋穉圭)가 가장(家狀)에서 칭송하였다. 1884년(고종 21) 효행으로 감찰에 증직(贈職)되었다. 채지홍(蔡之洪)의 문인이다. 유고 1권이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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근대 개항기의 열녀. 본관은 양성(陽城)이며, 아버지는 이한경(李漢敬)이고, 남편은 경주최씨 최성대(崔成大)이다. 족보상에 기재된 남편의 이름은 항렬을 사용하여 지은 최현식(崔顯植)이지만, 호적(戶籍)이나 실제 생활에서 사용되는 이름은 족보에 자(字)로 기재된 최성대이다. 후사(後嗣)가 없어 조카 최원관(崔元寬)으로 대를 잇게 하였다. 부인은 17세에 문의(文義) 오룡리(현, 충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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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전기의 열녀. 본관은 함흥(咸興)이며, 임진왜란 때 순절한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의 첩으로, 함흥한씨(咸興韓氏) 통천군수 한언성(韓彦聖)의 서녀(庶女)이다. 한금섬(韓金蟾)은 송상현의 첩으로 재주와 미모가 뛰어났는데, 13세가 되던 1591년(선조 24)에 송상현이 동래부사(東萊府使)로 부임되자 그를 따라 동래에 갔다. 1592년에 임진왜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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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효자로 정려(旌閭)되어 청주 서쪽 삼리허(三里許)에 정려비(旌閭碑)가 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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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의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문백(文伯)이다. 효자로 정려된 증참판 홍석무(洪錫武)의 손자이다. 부인은 박이환(朴而煥)의 따님인 상주박씨(尙州朴氏)이다. 천성이 효성이 깊고, 부모병환에 축문을 지어 손바닥을 불을 놓아 하늘에 빌었다. 부모의 상을 당해 여막(廬幕)에서 거처하며 애도함이 도에 지나칠 정도였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으로 학문이 고명하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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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후기의 효자.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군실(君實), 호는 만은(晩隱)이다. 홍일운(洪一運)의 아들이며 홍석무(洪錫武)의 손자이다. 부모가 여러 해 된 이질로 누워 계신 가운데, 그는 십리쯤 떨어져 살았으므로 문병차 밤에 자주 왕래하였는데 늘 범이 길을 인도하여 주었다고 한다. 부모 병환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드려서 구하였다. 묘소앞의 여막(廬幕)에서 삼년 상을 치루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