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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주화 이전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0745
한자 洪胄華
영어음역 Hong Juhwa
분야 종교/유교,성씨·인물/전통 시대 인물
유형 인물/효자·열녀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김양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별
생년 1660년연표보기
몰년 1718년연표보기
본관 남양(南陽)
군실(君實)
만은(晩隱)
아버지 홍일운(洪一運)
추증/추서 사헌부(司憲府)의 지평(持平)
상훈 충효 정문(旌門)

[정의]

조선 후기의 효자.

[가계]

본관은 남양(南陽)이며, 자는 군실(君實), 호는 만은(晩隱)이다. 홍일운(洪一運)의 아들이며 홍석무(洪錫武)의 손자이다.

[활동사항]

부모가 여러 해 된 이질로 누워 계신 가운데, 그는 십리쯤 떨어져 살았으므로 문병차 밤에 자주 왕래하였는데 늘 범이 길을 인도하여 주었다고 한다. 부모 병환에 손가락을 베어 피를 드려서 구하였다. 묘소앞의 여막(廬幕)에서 삼년 상을 치루고 있을 때, 맑은 샘물이 저절로 솟아 나왔고 여막(廬幕)곁에서 흰 기운이 하늘에 뻗쳤으며, 눈이 많이 쌓인 때에도 무덤과 왕래하는 길에는 눈 한점 쌓이지 않으므로, 사람들이 그 이상함에 놀랐다.

[학문과 사상]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숙종(肅宗)송시열이 유배되자 스승의 명으로 그의 서적을 보관했고, 1689년(숙종 15) 을사환국(乙巳換局)으로 인현왕후(仁顯王后)가 폐위되자, 박세휘(朴世輝)·한성우(韓聖佑) 등과 백인소(百人疏)를 올려 스승의 신원(伸寃)을 상소했다. 그 후 벼슬할 뜻을 버리고 학문에 전심하다가 권상하(權尙夏)송시열의 유명(遺命)으로 만동묘(萬東廟)를 세울 때 이를 보좌하였다. 지평(持平)에 증직(贈職)되었다.

[저술]

저서로 『만은유고(晩隱遺稿)』가 있다.

[상훈과 추모]

충청북도 청원군 미원면 수산리에 그의 충효 정문(旌門)이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1.04.05 본문 내용 수정 1) 삼년상 때 묘소의 여막(廬幕)에 있을 때 ->묘소 앞의 여막(廬幕)에서 삼년상을 치루고 있을 때 2) 송시열(宋詩烈)의 문인이다 ->송시열(宋時烈)의 문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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