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42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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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任岐白 |
영어공식명칭 | Im Gibaek |
이칭/별칭 | 공성(公成),영은(靈隱)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효자·열녀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선암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주희 |
출생 시기/일시 | 1777년 - 임기백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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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803년 - 임기백 사망 |
출생지 | 임기백 출생지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선암리 |
거주|이주지 | 임기백 거주지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선암리 |
사당|배향지 | 임기백 정려각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선암리 |
성격 | 효자 |
성별 | 남성 |
본관 | 풍천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효자.
[가계]
임기백(任岐白)[1777~1803]의 본관은 풍천(豐川)이며, 자는 공성(公成), 호는 영은(靈隱)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임포(任誧)이고, 할아버지는 임성하(任聖夏)이다. 아버지는 임시건(任時健)이고, 어머니는 장봉채(張鳳彩)의 딸 인동 장씨(仁同 張氏)이다. 부인은 안동 권씨(安東 權氏)이고, 아들은 임태원(任泰原)이다. 형은 임주백(任周白)·임풍백(任豐白)이고, 동생은 임빙백(任豳白)이다.
[활동 사항]
임기백은 1777년(정조 원년)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선암리에서 태어났다. 일곱 살 때 『소학(小學)』을 배우고 효를 깨우친 이래 일생 효행을 실천하여 널리 이름이 알려졌다. 어린 시절부터 병약한 아버지를 봉양하며 지냈는데, 열다섯 살 때 아버지의 병세가 위급하여지자 자신의 손가락을 베어 피를 입에 흘려 넣음으로써 아버지가 생명을 연장하게 하였다. 임기백은 1801년 아버지가 사망하자 3년 동안 시묘살이를 하다가 몸이 쇠약하여져 1803년 세상을 떠났다.
[상훈과 추모]
임기백은 사망한 뒤 효자로 정려되었고, 1887년(고종 24) 북이면 선암리에 정려각이 건립되었다. 임기백 효자 정려각은 1932년에 중건하고 1986년 중수하였으며, 청주시 향토유적 제132호로 지정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