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89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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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山神祭 |
영어공식명칭 | Religious Ritual for the Mountain Spirit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해인 |
[정의]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서 마을 수호신인 산신에게 지내는 마을 제사.
[개설]
산신제 는 국토의 70%가 산인 우리나라 특유의 전통적인 산악신앙에서 비롯된 제의이며, 큰 규모의 제천의식에 뿌리를 두고 전하여 오다가 점차 마을 수호신에 대한 소규모 의례로 자리 잡았다. 현재는 산신제가 지역민의 평화와 안녕을 도모하고자 마을 수호신을 모시는 마을 제사의 일환으로 행하여지는 것이 대부분이다.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서 산신제 시기는 마을마다 다르지만 정월에 지내는 것이 보통이다. 제의 장소는 일반적으로 마을 뒷산의 한곳이며, 형태는 대개 당집과 나무의 혼합이거나 자연석과 나무의 혼합으로 구성된다.
[청주의 산신제]
산신제 를 지냈던 청주 지역 마을로는 상당구에서는 가덕면의 계산리·삼항리·한계리, 문의면의 마동리·소전리·염티리·품곡리, 미원면의 계원리·구방리·금관리·대덕리·수산리·월룡리·쌍이리·중리 등이 있고 그 밖에도 내수읍의 덕암리·비상리를 비롯하여 청원구 북이면 신기리, 흥덕구 옥산면 오산리, 서원구 현도면의 선동리·중삼리 등이 있다. 산신제의 제사는 주로 정월에 지내며, 그중에서도 열나흗날 혹은 대보름에 지내는 것이 일반적이다. 따로 길일을 택하여 올리는 마을도 있다. 음력 10월 초순에 지내는 경우도 적지 않은데, 가덕면 한계리, 미원면 대덕리·쌍이리, 현도면 중삼리이다. 문의면 마동리에서는 9월 초사흗날에 행한다.
[원평동 벌독정이 산신제]
몇몇 마을에서 전하여 오는 산신제의 사례를 구체적으로 살펴보도록 하자. 흥덕구 원평동의 벌독정이마을에서 지내는 산신제는 6·25전쟁 당시 단절되었다가, 마을에 변고가 자꾸 생긴다는 이유로 다시 재개되었다. 다시 지내기 시작할 때 제사 장소를 정비하면서 시멘트로 기반을 다지고 ‘산신지령(山神之靈)’이라 새긴 비석을 세웠다. 산신지령 비석이 세워진 산을 ‘산지당거리[산제당거리]’라 부르는데, 거리의 이름이 산 이름으로 전용된 예이다. 제삿날은 정월 초이레 자정이며, 산신제의 준비에는 3~7일 정도가 든다.
제삿날이 다가오면 우선 마을 회의에서 당주 1명, 축관 1명, 제관 2명과 함께, 제물을 장만하는 공양주 5명을 선출하는 것으로 제의를 준비한다. 제사 전에는 몸과 마음을 깨끗이 하고 부정을 멀리하는데, 당주는 7일간 목욕재계하고 부정이 타지 않도록 금기를 지킨다. 제삿날 사흘 전에는 집 앞에 황토를 뿌리고, 제사 당일에는 금줄을 쳐서 외인의 출입을 금한다. 이틀 전인 정월 초닷새에는 산제당 앞에 천막을 치고 정결하게 산제당을 지킨다. 하루 전날인 초엿새에는 장소를 정비하고 아침부터 음식을 마련한다. 음식 차림은 소머리와 함께 파, 미나리 등 나물이 있고, 과일로는 밤과 대추를 준비한다. 특히 밤은 한 말을 올린다.
벌독정이마을에서는 『산신제 의례집(山神祭 儀禮集)』이 전하고 있어, 제사 절차는 『산신제 의례집』에 따르며 소요 시간은 1시간 정도이다. 실제 절차를 보면, 우선 고축(告祝)을 한 후 당주가 초헌(初獻)을 하고, 제관이 아헌(亞獻)과 종헌(終獻)을 맡으며, 이후 동네 소지(燒紙)를 한다. 끝나면 금줄을 걷고 산제당에서 내려온다. 제사가 끝나면 음복을 하는데, 제사에 참여한 주민은 그 자리에서 음복을 하고, 참여하지 않은 주민은 이튿날 아침에 모여서 음복을 한다. 밤은 모든 주민에게 나눠 준다.
[오산리 개울 산신제]
옥산면 오산리의 개울마을에서 지내는 산신제의 경우, 정월 열나흗날 저녁에 제를 지낸다. 산제당은 뒷산인 응봉산 중턱에 있다. 전하는 계 문서에는 산제당이 을사년 11월에 건립되었다고 기록하고 있는데, 1545년 을사사화(乙巳士禍)와 관련되었다고 한다. 당시 을사사화가 벌어지고 가뭄으로 흉년이 들었으며, 호환과 열병이 발생하여 가축이 죽는 등 살 수 없을 지경에 처하여, 이에 주민들은 산신당을 만들어 위패를 모시고 해마다 치성을 드리기 시작하였는데, 이후에는 평안을 찾았다고 한다. 1970년대 새마을운동이 벌어졌을 당시에는 산제당이 철거당할 위기에 처하자 이를 피하고자 소나무를 베어 덮어 가려서 보존할 정도로 정성을 다하였다고 한다.
제삿날이 다가오면, 동네 주민 가운데 부정이 없는 깨끗한 사람으로 제주를 선출하고, 제관과 축관, 공양주[유사(有司)]를 뽑는다. 제주로 뽑히면 외출을 삼가고 부정한 것을 꺼리며, 산제당 밑에 있는 우물에서 목욕재계한다. 제삿날이 되면 통돼지 한 마리, 백설기 한 시루, 밥 한 솥, 국 한 솥, 그리고 과일과 포 한 마리를 제물로 준비하는데, 모든 제물은 산제당 아래에 있는 우물을 사용하여 장만한다고 한다. 제사에서 마을의 안녕과 풍년을 기원하고, 동네 주민들의 성명과 출생한 연월일을 적어 소지를 올리면서 집안의 화목과 소원 성취를 기원한다. 소지가 끝나면 마을로 내려와 동네 주민이 모여 음복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