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35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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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崔得枰 |
영어공식명칭 | Choe Deukpyeong |
이칭/별칭 | 최계보(崔系寶)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 |
시대 | 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정춘택 |
몰년 시기/일시 | 1334년 - 최득평 사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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거주|이주지 | 최득평 거주지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 |
부임|활동지 | 최득평 부임지 - 경상북도 상주시 |
부임|활동지 | 최득평 부임지 - 경상남도 김해시 |
묘소|단소 | 최득평 묘소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전주 |
대표 관직 | 선부전서|상주목사 |
[정의]
고려 후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 거주하였던 문신.
[가계]
최득평(崔得枰)[1260~1334]의 본관은 전주(全州)이며, 어릴 적 이름은 최계보(崔系寶)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남부(崔南敷)이고, 할아버지는 최전(崔佺)이다. 아버지는 중랑장 최정신(崔正臣)이다. 부인은 감찰대부 곽예(郭預)의 딸 청주 곽씨(淸州 郭氏)이고, 아들은 최재(崔宰)이다.
[활동 사항]
최득평은 1260년(원종 원년)에 태어났다. 1277년(충렬왕 3) 관직 생활을 시작하여 원능직(元陵直)을 맡았고, 1279년 사경원판관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후 군기주부, 위위주부, 당후관, 통례문지후 등을 역임하였다. 1298년에는 충간당사인랑에서 전중시사로 옮겨 관리들의 기강을 바로잡다가 국왕 측근 세력의 견제를 받아 파면되었다.
최득평은 1301년 통례문지후로 복직하였고, 이후 종묘령·군부시랑을 역임하였다. 1305년 안렴사로 전라도를 순행하고 통례문령이 되었다. 이후 감찰시사·전농사승·의부직랑·총부직랑·사정판관·중현대부내부령·전라도체찰사 등의 요직을 역임하였다.
최득평은 1318년(충숙왕 5) 선부의랑·내부령이 되었다가, 1319년 상주목사를 거쳐 김해목사로 부임하였다. 지방관으로 근무하며 업적이 세상에 알려졌지만 강직한 성품으로 인하여 조정의 견제를 받아 임기를 마치지 못하고 상경하였는데, 청주를 지나다가 대율리[현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에서 거주하였다고 한다. 이후 왕이 통헌대부선부전서상호군으로 삼았으나 사임하고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다. 최득평은 1334년(충혜왕 3) 사망하였다.
[묘소]
최득평의 묘소는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