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23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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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石菴制 時調唱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황성현 |
[정의]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서 전수되는 시조창.
[개설]
석암제 시조창 은 전 국가무형문화재 가사 예능보유자 석암(石菴) 정경태(鄭坰兌)[1916~2004]의 시조창법이다. 한시를 잘 지어 주역에 해박한 지식이 있었던 정경태가 음양이 배합하는 율려상조법(律呂相調法)을 적용하여 석암제 시조창을 만들었다. 정경태로부터 계승된 계보가 이상래(李尙來)[1945~ ]까지 이어지고 있다. 석암제 시조창은 2012년 5월 11일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북도 무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북도 무형유산으로 바뀌었다.
석암제 시조창 은 전국에 널리 보급된 시조창이다. 3~4음계였던 예전의 시조창을 변경하여 선율을 재창작한 석암제 시조창은 정경태의 시조 보급 운동과 각지에서 개최된 시조 경창 대회를 거쳐 전국적으로 전파되었다. 석암제 시조창의 전승 계보 및 전승자를 알아보면 정경태와 김월하(金月荷)[1918~1996], 영동의 한우섭(韓禹燮), 정구익(鄭求益)으로부터 이상래까지 계승되고 있다.
정경태는 1916년 전라북도 부안군 출신이다. 1931년 오성현에게 평시조와 사설시조를 배우기 시작하여, 김춘경에게 남녀창 지름시조와 가곡을 배웠고, 1932년에는 고창의 이도삼에게 사설시조를 배웠다. 1933년 오윤명에게 영제시조와 상사별곡과 처사가를 배우고, 장성 명기 안계향에게 사설 지름시조를 배웠다. 1934년에 임재희에게 가사를 배우고, 1936년에 전계문(全桂文)[1872~1940]에게 여창을 배우고, 1941년 이병성(李炳星)[1909~1960]에게 남창을 사사하였다. 이러한 사사 과정을 거쳐 남창 다섯 바탕, 여창 다섯 바탕을 완창할 수 있었다. 이후 제자 양성에 힘쓰며 일선 학교에서 시조를 가르쳤다. 석암 정경태는 또한 시조 보급을 위하여 1946년 『시조창보(時調唱譜)』, 1948년 『조선창악보(朝鮮唱樂譜)』, 1955년 『국악보(國樂譜)』 등의 저술을 남겼다.
[청주의 석암제 기능보유자, 이상래]
충청북도 기능보유자인 이상래는 1954년부터 아버지의 시조창을 듣고 따라 하기 시작하여 1959년 입문한 이래 정경태와 김월하, 한우섭, 박인규(朴仁圭)에게 시조를 배웠고, 1964년에 이관승에게 사사하여 민속 문화인 시조창을 계승하여 영제를 제외한 모든 시조에 능하다. 이상래 시조창의 특징은 호흡을 길고 유장하게 하여 시조의 특징인 느림의 미학을 잘 표현한다. 3박자로 길게 전성으로 부를 때 완강속법(緩强速法)으로 표현하며, 영성법(鈴聲法)을 잘 구사하여 부르는 것[방울목]과, 속청으로 소리를 흔들며 뻗어가다 떨어지는 음으로 부를 때 감아 내리는 특징이 있다. 이상래의 전수자로는 이명숙, 추이분 등이 있다.
[전승 현황]
석암제시조창보존회는 2012년 충청북도 무형문화재로 지정된 석암제 시조창을 전통적으로 보존하고 발전적으로 계승할 목적으로 2018년 3월 31일 조직되었다. 석암제시조창보존회에서는 매월 정기 강습회를 실시하는 등 해마다 이상래 보유자와 제자들이 함께하는 정기 공연을 펼치고 있다. 1945년생인 이상래는 2020년 하반기부터 건강이 악화되면서 이수자인 이현배가 주요 강사로 활동하고 있다. 2021년부터는 무형문화재 공개 행사 모니터링을 실시하고 있다. 공개 행사 모니터링은 보유자 이상래와 이수자, 전수 장학생들에 대한 기량 점검 및 평가, 시연의 문제점 및 개선 사항 도출, 석암제시조창보존회의 전승 현황과 보존회 운영 실태 등을 종합적으로 점검한다. 2021년 공개 행사는 김수현드라마아트홀[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수동159-10]에서 진행되었고, 2022년에는 청주아트홀[청주시 서원구 사직동 888]에서 진행되었으며, 2023년에는 한국공예관 5층[청주시 청원구 내덕동 201-1]에서 진행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