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23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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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甕器匠 |
영어공식명칭 | Master of Earthenware Making |
이칭/별칭 | 옹장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봉산리|상당구 문의면 대청호반로 721[문산리 산6-1]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유림 |
[정의]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서 전통 옹기 만드는 일을 직업으로 하는 장인.
[개설]
옹기는 질그릇이나 오지그릇을 통틀어 일컫는 말이다. 잿물을 입혀 구우면 오지그릇이고 잿물을 입히지 않으면 질그릇이다. 옹기는 청자나 백자와 달리 작은 알갱이가 섞여 있는 질[점토]로 만든다. 가마에서 구워질 때 질이 녹으며 미세한 구멍이 형성되는데, 이 구멍으로 온도 및 습도 등을 조절하게 되어 식품을 썩지 않게 오랫동안 저장하거나 숙성시킬 수 있다. 우리나라는 전통적으로 간장, 고추장, 김치 등 발효 식품이 식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맡고 있기에, 저장과 숙성에 유리한 옹기는 현재까지도 꾸준하게 사용되고 있다.
조선 시대의 법전인 『경국대전(經國大典)』에는 14개 기관에 옹장(甕匠) 104명을 두었다는 기록이 있어, 옹기를 제작하는 관원이나 장인을 별도로 두어 관리하였음을 알 수 있다. 옹기는 일상생활에 사용되는 만큼 수요가 많았기 때문에 그만큼 수요가 많았던 것이다. 현대에도 옹기의 장인인 옹기장은 국가무형유산 지정 외에도 충청북도 무형유산을 비롯한 여러 지역의 시도 무형유산으로도 지정되어, 전국 각지에서 옹기 제작 기술을 계승하고 있다.
[옹기장 박재환]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7대째 옹기를 구워 온 옹기장 박재환은 1948년 무렵부터 할아버지인 박기석과 아버지 박팔원에게서 옹기 제작법을 전수받기 시작하였다. 1958년부터 1970년까지 충청북도, 충청남도, 경기도 등 전국 각지의 옹기 공장을 떠돌며 10여 년간 기술을 연마하였다. 1971년에는 고향인 청주로 돌아와 지금의 흥덕구 오송읍 봉산리 점촌마을에 9칸 규모의 전통 옹기 가마 시설을 갖추고 옹기 제작소를 세웠다. 해당 지역이 미호강과 가까워 옹기 제작에 적합한 점토가 많이 분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박재환은 봉산리에서 전통 방식으로 옹기를 제작하면서 전통 옹기 제작 기술의 보존 및 복원을 위하여 꾸준히 노력하였다. 이러한 노력이 인정받아 ‘옹기장’은 2003년 10월 24일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12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북도 무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북도 무형유산으로 바뀌었다.
박재환은 왕성한 옹기 제작 활동을 벌여 2009년에는 캐나다에서 열린 세계무형문화재작품전에 ‘똥장군’을 출품하여 세계 각국의 관심을 끌었다. 2010년에는 캐나다에서 열린 밴쿠버동계올림픽 기간에는 캐나다의 한국대사관에서 옹기 작품을 전시하였고, 울산세계옹기문화엑스포의 광고 모델로 선정되어 박재환 자신의 가마에서 엑스포 성화의 불이 채화되기도 하였다. 2017년에는 오송제2생명과학단지 및 오송역 건설로 말미암아 봉산리 가마가 철거되면서 청주시 상당구 문의면 대청호반로 721[문산리 산6-1]의 문의문화재단지 내로 장소를 옮겨 옹기전수관을 개관하였다. 박재환은 2022년 10월 25일 92세로 사망하였다. 이로써 충청북도 무형유산 옹기장은 기능 보유자 없이 종목만 남아 있는 상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