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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주 최명길 신도비 이전항목 다음항목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3194
한자 淸州 崔鳴吉 神道碑
분야 종교/유교
유형 유적/비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 253-3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민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관련 인물 생년 시기/일시 1586년 - 최명길 출생
관련 인물 몰년 시기/일시 1647년 - 최명길 사망
건립 시기/일시 1702년연표보기 - 청주 최명길 신도비 건립
문화재 지정 일시 1980년 1월 9일연표보기 - 청주 최명길 신도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9호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1년 11월 19일 - 청주 최명길 신도비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특기 사항 시기/일시 2024년 5월 17일 - 청주 최명길 신도비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현 소재지 청주 최명길 신도비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 253-3지도보기
성격 신도비
관련 인물 최명길|최석정|박세당
재질 석재
크기(높이, 너비, 두께) 높이 270㎝, 너비 106.5㎝, 두께 36.8㎝[비신]|높이 108.5㎝, 너비 172.5㎝, 두께 83㎝[받침돌]|높이 35㎝, 너비 155㎝, 두께 92㎝[덮개돌]
소유자 전주 최씨 종중
관리자 전주 최씨 종중
문화재 지정 번호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최명길의 신도비.

[개설]

신도비는 높은 벼슬을 지냈거나 학문이 뛰어난 인물의 묘소 앞에 세운 금석문이다. 청주 최명길 신도비(淸州 崔鳴吉 神道碑)는 1702년(숙종 28) 세웠다. 최명길(崔鳴吉)[1586~1647]은 본관이 전주(全州), 자는 자겸(子謙), 호는 지천(遲川), 창랑(滄浪),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605년(선조 38) 생원시와 증광문과에 급제하며 관직에 나아가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커다란 역할을 담당하였다. 청주 최명길 신도비 비문은 박세당(朴世堂)이 짓고 증손 최창대(崔昌大)가 쓰고 손자 최석정(崔錫鼎)이 두전을 썼다. 최석정은 당대 소론의 영수로 노론에 의하여 사문난적으로 몰리고, 할아버지 최명길의 병자호란 당시 행적으로 고초를 크게 겪었다. 1980년 1월 9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5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건립 경위]

청주 최명길 신도비최석정이 건립하였다. 최석정은 할아버지 최명길의 신도비를 원래 남구만(南九萬)[1629~1711]에게 부탁하였으나 비문에 의리(義理)의 문제 등 세 가지 논란을 언급하자, 다시 박세당에게 비문을 받아 세웠다. 박세당은 여덟 가지를 들어 최명길을 옹호하였다.

[위치]

청주 최명길 신도비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 253-3에 있다.

[형태]

청주 최명길 신도비는 높은 받침돌 위에 비신을 세우고 지붕 모양 덮개돌을 올렸다. 비문은 4면에 새겼다. 비신은 높이 270㎝, 너비 106.5㎝, 두께 36.8㎝ 크기이며, 받침돌은 높이 108.5㎝, 너비 172.5㎝, 두께 83㎝이다. 덮개돌은 높이 35㎝, 너비 155㎝, 두께 92㎝ 크기이다.

[금석문]

청주 최명길 신도비 비문은 2편이 있는데, 남구만의 문집인 『약천집(藥泉集)』과 박세당의 문집인 『서계집(西溪集)』 두 곳에 실려 있다. 현재 세워진 신도비문은 박세당의 글이다. 글은 증손인 최창대가 짓고, 전액은 최석정이 썼다. 신도비의 내용은 최명길의 일대기와 선대, 자손록, 그리고 명(銘)으로 이루어졌다. 특히 반정에 참여한 일, 원종(元宗)의 추존을 반대한 일, 전란 당시의 활약, 화의를 이끈 일, 명과 청의 징병을 무마한 일, 양자(養子)를 되돌려 보내지 않은 일, 붕당에 초연한 점 등 여덟 가지 업적을 밝혀 두 차례 전란에 대처하는 모습과 붕당 정치를 타개하기 위한 노력을 담았다.

[현황]

청주 최명길 신도비는 4면에 홍살을 두른 비각 안에 보호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청주 최명길 신도비는 조선 시대 잦은 외침 속에서 주된 역할을 맡았던 최명길의 세계와 출세, 행적 등을 새긴 신도비이다. 조선 후기의 사상 동향을 결정 지은 병자호란 전후의 사정과 사후 평가, 부정적인 평가를 극복하기 위한 노력 등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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