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텐츠목차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3128
한자 西原縣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지명/고지명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조선/조선 후기
집필자 강민식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성격 고지명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의 옛 명칭인 청주목이 조선 후기 반역이나 강상을 범하는 사건으로 강등된 읍호.

[개설]

‘서원(西原)’은 685년(신라 신문왕 5) 설치한 서원소경으로부터 유래하며 청주의 별칭으로 쓰였다. 조선 시대 고을에서 반역이나 강상(綱常)을 범하는 사건이 벌어질 때에 10년을 기한으로 현(縣)으로 강등하였다. 청주의 경우 모두 8차례에 걸쳐 서원현으로 강등되어 서원현감이 임명되었다. 가장 먼저 나타나는 읍호 강등 사례는 1611년(광해군 3)부터 1622년(광해군 14)까지 서원현감 임명 기사이다. 1612년 8월 11일 기사에서 “청주의 죄인이 복역(伏逆)되어 현으로 강등시킨다”라는 기사가 있어 최초의 사례로 꼽을 수 있다. 이어 1862년(철종 13)까지 서원현으로 읍호를 강등한 사례가 있다.

[명칭 유래]

‘서원’은 신라가 삼국을 통합한 후 685년 서원소경을 설치한 데에서 유래한다. 경덕왕 때에 서원경으로 바꾸고, 고려 때는 서원부(西原府[部])로 불리기도 하였다. 서원은 봉호(封號)에 사용하였다.

[형성 및 변천]

1611년(광해군 3) 죄인이 복주되면서 서원현으로 읍호를 강등하였으며, 복구 기록은 없다. 1658년(효종 9) 노비가 주인을 살해하여 강등되었다가 1667년 복구되었다. 1681년(숙종 7) 생원 박상한(朴尙韓)의 기우제문이 빌미가 되어 강등되었다가 1689년 복구되었다. 1732년(영조 8) 무신란이 발발한 곳으로 지목되어 강등되었다가 1740년 복구되었다. 1777년(정조 1) 역적 효임(孝任)의 태생지라 하여 강등되었다가 1786년 복구되었다. 1804년(순조 4) 대역죄인 한해옥(韓海玉)의 출생지로 읍호가 강등되었다가 1813년 복구되었다. 1826년(순조 26) 영리 박형서(朴亨瑞)의 흉서 투서로 강등되었다가 1835년 복구되었다. 1862년(철종 13) 대역부도 죄인 김순성(金順性)의 태생지라 하여 강등되었다가 1871년 복구되었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서원현으로 강등되었어도 청주목의 경계는 변함이 없어, 청주목의 방리와 동일하다.

[관련 기록]

『광해군일기(光海君日記)』, 『효종실록(孝宗實錄)』, 『숙종실록(肅宗實錄)』, 『영조실록(英祖實錄)』, 『정조실록(正祖實錄)』, 『순조실록(純祖實錄)』, 『철종실록(哲宗實錄)』에 청주를 강등하여 서원현으로 삼은 기사가 있다.

『효종실록』20권, 효종 9년 6월 16일 기사에 “청주를 강등하여 서원현으로 삼았는데, 청주에 사는 천민이 그의 주인을 시해하였기 때문이다”라는 내용이 있다.

『정조실록』4권, 정조 1년 8월 28일 기사에서는 “청주목·교동부(喬桐府)·서흥부(瑞興府)를 강등하여 현(縣)으로 하고, 토산현(兎山縣)·태인현(泰仁縣)을 제읍(諸邑)의 끝에다 옮겨 놓았다. 청주목서원현으로 고치고 충청도(忠淸道)를 공충도(公忠道)로 고쳤다. 극적(劇賊)이 태생한 고을은 강호(降號)하기 때문이다”라며 청주목을 강등하여 서원현으로 삼은 내용이 보인다.

등록된 의견 내용이 없습니다.
네이버 지식백과로 이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