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12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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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梧根部曲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지명/고지명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
시대 | 고려/고려 전기,고려/고려 후기 |
집필자 | 강민식 |
비정 지역 | 오근부곡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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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격 | 고지명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일대에 있었던 고려 시대의 특별 행정 구역.
[개설]
부곡(部曲)은 삼국 시대부터 고려 시대까지 있었던 특별 행정 구역이다. 조선 전기에는 거의 폐지되어 대부분 지리지 고적(古蹟) 조에 남아 있었다. 오근부곡(吳根部曲)은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 청주목 고적 조에 처음 보이는데, 오근부곡은 고을 북쪽 30리[약 12㎞]에 있다고만 하였다. 『신증동국여지승람』 역원(驛院) 조에 오근원(吳根院)이 오근부곡의 옛터에 있다고 하였다. 『여지도서(輿地圖書)』 청주 고적 조에도 같은 내용이 보이는데, 역원 조에 오근원은 옛날에 있었지만 지금은 없으며 단지 그 옛터 옆에 창고를 두었다고 하였다. 창고 조에 북창(北倉)은 달리 오근창(梧根倉)이라 하는데 고을 북쪽 30리에 있으며, 14칸이라 하였다. 그리고 방리(坊里) 조 북강외일면(北江外一面) 창리(倉里)는 관문으로부터 북쪽 30리에 있으며 편호는 39호, 남 70구, 여 72구라 하였다. 따라서 오근부곡이 폐지된 뒤 조선 전기 오근원이 들어서고, 다시 조선 후기에 이르러 창리에 북창이 들어선 것을 알 수 있다. 오근부곡 터는 오늘날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창리로 오창읍 소재지이다.
[명칭 유래]
오근부곡의 오근은 오근(吳根), 오근(梧根)으로 달리 쓰이는데, 정확한 어원은 알 수 없다.
[형성 및 변천]
부곡은 고려 시대 군현 아래에 편제된 특수 행정 구역이며, 고려에 저항한 지역민이나 투항한 이민족을 수용하던 행정 단위였다. 조선 시대에 들어서면서 군현제에 편입하여 자취를 감추게 되었다. 전통 시대 북강외일면으로 불리다가, 1914년부터 오창면(梧倉面)으로 불리기 시작하였으니, 오창의 유래는 오근부곡으로부터 나왔음을 알 수 있다. 오늘날 오창읍 창리는 옛 오근부곡의 터임을 알 수 있다. 충북선이 개설된 후 원래 오창읍 소재지에서 열렸던 오근장에서 따와 역명을 오근장역으로 정하였고, 나아가 1990년 북일면 서남쪽 지역이 청주시에 편입되면서 8개 법정동을 관할하는 행정동인 오근장동을 신설하였다.
[위치 비정/행정 구역상의 구분]
오근부곡은 조선 전기에 오근원이 들어서고, 조선 후기에 이르러 오근원 터에 북창, 오근창이 운영되었음을 알 수 있다. 오근부곡은 오늘날 오창읍 창리 일대로 추정한다.
[관련 기록]
『신증동국여지승람』 권15, 청주목의 역원 조에 오근원은 오근부곡의 옛터에 있다고 하였다. 이어 『신증동국여지승람』 고적 조에 오근부곡은 고을 북쪽 30리에 있다고 하여 대략적인 위치를 알 수 있다. 조선 후기의 기록인 『여지도서』 충청도 청주목 고적 조에도 오근부곡이 고을 북쪽 30리에 있다고 하였는데, 이미 없어진 오근원 자리 옆에 북창, 혹은 오근창이 들어섰다는 것이다. 따라서 조선 후기의 오근창[북창]은 옛 오근원, 그리고 그보다 앞서 오근부곡 자리였음을 알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