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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교 유물유적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1473
한자 儒敎 遺物遺蹟
분야 종교/유교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조선/조선
집필자 원용준

[정의]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 있는 유교 관련 유적과 유물.

[개설]

청주 지역 유교 유적과 유물은 성리학이 수용된 고려 후기 이후 현재까지의 호서 사림의 역사적 배경과 지역의 역사적 정체성과 인적 구성을 확인할 수 있다.

[청주, 청원 역의 유교]

청주를 중심으로 하는 지역은 조선 후기 김장생과 김장생의 학풍을 이은 송시열의 등장으로 조선 정신문화의 중심적 역할을 담당하였다. 청주 지역의 향교, 서원, 사우 등 고려 후기부터 현재까지의 유교 관련 유적과 유물은 물론이고 한말 구국 운동을 하였던 인물들을 통하여 청주 지역 유교의 정신문화적 가치를 확인할 수 있다. 청주 지역의 대표적 유교 문화재로는 문의면 미천리문의향교(文義鄕校)를 비롯하여 검암(儉巖), 쌍천(雙泉), 송천(松泉), 옥화(玉華), 기암(機巖), 백록(白鹿), 노봉(魯峯) 등 다수의 서원이 있으며, 또한 국계사(菊溪祠), 덕천사(德川祠), 체화사(棣華祠), 죽계사(竹溪祠) 등 제향을 목적으로 한 사우가 있다.

[청주 지역의 향교와 서원]

유교 유적은 크게 향교, 서원, 사우, 사묘(祠廟), 정려(旌閭) 등으로 나눌 수 있다. 청주 지역의 대표 유교 유적으로 상당구 대성동에 있는 청주향교를 들 수 있다. 987년(고려 성종 6) 전국의 12목에 학교를 세우게 하였다는 기록으로 보아, 당시 12목의 하나였던 청주에 향교와 문묘가 건립되었을 것으로 추정되지만 정확한 건립 연대는 불명확하다. 청주향교는 ‘삼남제일(三南第一)’이라 칭할 정도로 역사적 의의가 높은 향교로, 세종(世宗)이 서적을 하사하거나 세조(世祖)가 친히 제향을 지내는 등 일찍부터 공적 교육과 제향을 담당하는 기관으로 주목받아 왔다. 향교와 문묘의 배치를 살펴보면 앞에 향교가 있어 거기에 외삼문과 명륜당을 두고, 뒤에 문묘가 있어 신문과 대성전 그리고 묘정 좌우에 동서양무를 둔 전교후묘의 양식이다. 현재 제향 공간인 대성전에는 5성(五聖), 송조6현(宋朝六賢), 우리나라 18현(十八賢)의 위패를 봉안하고 있다.

상당구 문의면에는 문의향교가 있다. 문의향교의 건립 시기는 미상이나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 의하면 문의현에서 서쪽으로 1리[0.4㎞]에 있다는 기록이 있다. 대청댐 담수 이후인 1980년 이건하였다. 문의향교 대성전에는 5성, 송조4현, 우리나라 18현의 위패가 봉안되어 있고, 앞에 강학 공간인 명륜당이 있다. 봄·가을에 석전(釋奠)을 봉행하며 초하루와 보름에 분향하고 있다. 전교(典校) 1명과 장의(掌議) 수 명이 운영을 담당하고 있다. 소장 전적은 판본 5종 6책, 사본 10종 14책 등이 있는데, 이 중 『교임선생안(校任先生案)』, 『청금록(靑衿錄)』, 『향학계좌목(鄕學稧座目)』, 『교중약속(校中約束)』 등은 향토사 연구에 도움이 되는 자료이다.

청주 지역의 대표적인 서원으로 아래와 같은 서원들이 있다. 검암서원은 1661년(현종 2) 지방 유림의 공의로 창건되었으며, 조헌(趙憲)을 주향하고, 한일휴(韓日休) 등을 배향하고자 건립된 서원이다.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는데, 1958년 은진 송씨(恩津 宋氏) 종중과 청주 유림들이 다시 세우고 신응태(申應泰)를 추향하였다. 매년 음력 3월 중정(中丁)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쌍천서원은 1695년(숙종 21) 신식(申湜)을 배향하기 위하여 세운 서원이다.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15년 유림이 복설하였고, 1989년 고령 신씨(高靈 申氏) 문중에서 중건하였다. 매년 음력 3월 중정일과 9월 중정일에 향사하고 있다.

송천서원은 1695년(숙종 21) 김사렴(金士廉) 등을 배향하기 위하여 건립된 서원이다. 1711년(숙종 37)에 ‘송천’이라고 사액(賜額)되었으나 1871년(고종 8)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 1976년 복원하였고, 복원 이후 김여량(金汝亮)을 추가 배향하였다. 매년 음력 3월 20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옥화서원은 1717년(숙종 42) 이득윤(李得胤) 등을 배향하고자 세운 서원이다.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89년 다시 세우고 매년 음력 3월 중정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옥화서원에는 1674년(현종 15) 송시열(宋時烈)이 지은 「주일재잠(主一齋箴)」, 「옥화대명(玉華臺銘)」과 1760년(영조 36) 송시열의 5대손 송환기(宋煥箕)가 지은 「주일재중건기(主一齋重建記)」가 걸려 있다.

기암서원은 1699년(숙종 25) 강백년(姜栢年)을 배향하기 위하여 건립한 서원이다. 1826년(순조 26) 오숙(吳熽)을 추가 배향하였다.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84년 오창면 기임리에서 낭성면 갈산리 호평마을로 옮겨 다시 복원하였다. 바깥마당에 노장우(盧章愚)가 짓고 조수형(趙壽衡)이 쓰고 1984년 세운 ‘기암서원 중건사적비(機巖書院 重建事蹟碑)’가 있다. 매년 음력 3월 1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백록서원은 1710년(숙종 36) 권상(權常)을 배향하기 위하여 건립된 서원이다. 1760년(영조 36) 봉계서원(鳳溪書院)이 창건되자 합향하면서 철폐되었다.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봉계서원마저 폐원되자 1929년 후손들이 백록서원 옛터에 권상을 모신 사당을 다시 세우고 ‘남강사(南崗祠)’라 하였다. 광복 후 유림과 후손들이 협력하여 1966년 보수하였다. 안동 권씨 문중에서 관리하고 있으며 매년 9월 중정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노봉서원은 1615년(광해군 7) 건립한 서원이다. 1662년(현종 3) 사액받았다. 오시립(吳時立), 오유립(吳裕立), 오명립(吳名立), 송인수(宋麟壽), 정렴(鄭磏)을 배향한다. 1694년(숙종 20) 송준길(宋浚吉), 1695년(숙종 21) 송시열, 1725년(영조 1) 권상하(權尙夏)를 추가 배향하였다가 그중 송준길은 부용면에 검담서원을 지었을 때 제외되었다.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에 따라 철거된 다음 복원하지 못하고, 터에는 노봉서원 묘정비(魯峯書院 廟庭碑)만 남아 있다. 노봉서원은 청원 지역에서 가장 먼저 세워졌고 가장 먼저 사액받아 역사적 가치와 비중이 가장 크지만 아직 복원되지 않은 상태이다.

[청주 지역의 기타 유교 유물, 유적]

사우는 서원과 달리 교육 기능은 없고 제향만 행하는 기관이다. 사우는 오늘날 서원과 같은 취급을 하여 명칭도 서원이라고 하는 경우가 많다. 주요 사우는 다음과 같다. 국계서원은 1701년(숙종 27) 건립되었다. 박증영(朴增榮), 변경복(卞景福), 이덕수(李德洙) 3인을 봉안하였으나, 후에 이수언(李秀彦)을 추가 배향하였다. 1871년(고종 8)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1960년 다시 세우고 매년 음력 3월 3일과 9월 9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덕천서원은 1694년(숙종 20) 유희령(柳希齡)유흥룡(柳興龍)을 배향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건립 당시에는 ‘덕천향사(德川鄕祠)’ 혹은 ‘덕천사’라고 하였다. 1868년(고종 5)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광복 후 유림들에 의하여 복원되었다. 덕천서원에서는 매년 음력 2월 중정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죽계서원은 1738년(영조 14) 지방 유림의 공의로 단종의 복위를 도모하다 죽임을 당한 금성대군(錦城大君)과 이보흠(李甫欽)을 추모하기 위하여 건립되었다. 후에 안평대군(安平大君), 화의군(和義君), 한남군(漢南君), 영풍군(永豊君)을 추향하였다. 1868년(고종 5) 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철폐되었다가 광복 후 1960년 전주 이씨 문중과 지방 유림들에 의하여 복원되였다. 매년 3월 말정(末丁)일과 9월 말정일에 향사를 지내고 있다.

사묘는 선조 혹은 선현의 신주나 영정을 모셔 두고 제사 지내기 위한 건물이다. 흥덕구 수의동에 있는 청주 충렬사(淸州 忠烈祠)임진왜란 당시 동래부사로 재직 중 순직한 송상현을 모신 사당으로 1610년 창건하였다. 2004년 새롭게 사당과 기념관을 신축하였다. 상당구 수동에 있는 표충사(表忠祠)는 1728년 무신란(戊申亂) 당시 순절한 이봉상(李鳳祥), 남연년(南延年), 홍림(洪霖)을 제향하기 위하여 1731년 건립되었다. 이 밖에 동학농민운동 당시 산화한 관군을 기리기 위하여 1914년 건립된 모충사(慕忠祠), 1874년 청주 곽씨(淸州 郭氏) 연담공 곽예(郭預)의 영정을 봉안하기 위한 청원사(淸原祠), 1930년경 건립된 순천 박씨(順天 朴氏) 단묘(壇廟)인 원모단(遠慕壇) 등이 있다.

정려는 충신, 효자, 열녀를 표창하기 위한 건물이다. 청주 충렬사 앞에 있는 송상현 충신각은 1595년 명정되어 1704년 세웠다. 임진왜란에 참전하고 병자호란에 순절한 박동명(朴東命)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1709년 세운 박동명 충신각이 있다.

이 밖에 대표적인 유물로는 판목류가 전한다. 「광국지경록판목(光國志慶錄板木)」은 1744년 종계변무(宗系辨誣)를 축하하는 경하시를 모아 판각한 것으로, 「광국지경록판목」에 의하여 1701년 『광국지경록』이 간행되었다. 「광국지경록판목」은 보은의 기계 유씨(杞溪 兪氏) 재실인 ‘영모재’에서 보관하던 것으로 현재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으며 당시 판목 중 유일본이다. 「눌재강수유고판목(訥齋江叟遺稿板木)」은 1666년 밀양 박씨(密陽 朴氏) 문중에서 박증영(朴增榮)박훈의 시문집을 만들기 위하여 판각한 것으로 청주대학교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청주 지역의 유교 유물·유적은 조선 시대 지배층인 양반의 제례(祭禮)와 강학(講學)의 양상을 보여 주며, 단순한 문화유산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조선 시대 유교의 역사와 양상을 알려 주는 사상적, 역사적 배경을 지니고 있다. 당시 지배층인 양반은 유교 유적을 기반으로 하여 활발한 정치적 활동은 물론, 교육·자치 활동을 꾀하였다. 즉 유교 유물·유적은 양반 관료제 사회인 조선의 관료 후보군의 교육 장소로서 역할과 함께 가문과 정파를 유지하기 위한 다양한 활동을 전개한 터전이기도 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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