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90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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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龍神祭 |
영어공식명칭 | Dragon God Ritual |
이칭/별칭 | 용왕제,샘고사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현대/현대 |
집필자 | 김해인 |
[정의]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서 용신에게 그해 농사가 잘되기를 기원하며 지내는 제사.
[개설]
농경사회에서 비만큼 중요한 것은 없다고 하여도 지나친 말이 아니다. 이러한 비, 곧 물을 관장하는 수신(水神)이 바로 용이다. 용은 원래 큰 바다 밑에 있는 용궁에 산다고 하는데, 민간에서는 바다뿐 아니라 물이 있는 강이나 호수, 심지어 우물에도 용왕이 있다고 믿으면서 용신제를 지내고 있다. 용신제는 비가 잘 와서 농작물이 잘 자랄 수 있게 하여 달라고 용신에게 기원하는 것이다.
용신제 는 바다가 있는 지역의 경우 풍어제의 성격을 띠며 바닷가에서 지내기도 하지만, 충청북도 청주처럼 바다가 없는 내륙 지역에서는 풍농을 기원하며 우물이나 샘 등 물이 있는 곳에서 지낸다. 또 용신제를 지낼 때는 우물이나 샘이 마르지 않고 깨끗하게 계속 나올 수 있게 하여 달라고 빌고, 때로는 액막이, 수재 예방, 아이의 점지 및 무병장수 등을 기원하기도 한다. 용왕제, 샘고사라고도 불린다.
[청주 지역의 용신제]
청주 지역에서 행하여지던 용신제는 주로 정월대보름 무렵에 지낸 것으로 조사되었다. 단독으로 용신제만 지내기보다는 복합제 형태로 다른 마을 제사와 함께 지낸 것이 일반적이다. 또 제주를 별도로 선출하지 않고 마을 제사의 제주가 용신제의 제주도 맡는 경우가 흔하였다. 그러나 현대화·도시화가 진행되면서 점점 마을 제사가 축소되었고, 용신제의 성격도 마을 단위 의례가 아닌 개인적으로 지내는 고사로 성격을 달리하여 계승되고 있으며, 이마저도 사라져 가는 추세이다.
흥덕구 평동 들말에서는 ‘통샘고사’[용신제]를 지냈다. 통샘은 들판 가운데 있던 샘이며 여름에 차갑고 겨울에 따뜻한 데다가 수량이 늘 일정하여 들말 사람들의 생활에서 중요한 역할을 차지하였다. 통샘에서는 개인적으로 고사를 지내곤 하였는데, 대개 촛불을 켜 둔 채 미역과 쌀, 떡을 차려 놓고 밤에 몰래 지내곤 하였다. 현재 통샘은 소실된 상태이다.
청원구 오창읍 성산리에 있는 웃빌미기·아랫빌미기·능골·질푼이 등의 마을에서는 마을의 공동 우물에서 개인적으로 용신제를 올렸는데, 주로 정월 열나흗날 밤에 떡시루를 차려 놓고, 가정의 안녕과 복을 기원하였다. 하지만 용신제의 대상이었던 우물이 식수로서의 기능을 상실하고 자가 수도를 쓰게 되면서 우물과 용신제는 점차 사라졌다.
청원구 내덕동 안터벌은 산간 마을이라 물이 귀하여 우물에서 동네 아낙들이 음력으로 정월과 시월에 개인적으로 고사를 지냈다. 우물은 양지말과 음지말에 각각 하나씩 있었는데, 주민들이 물을 보호하고자 양철로 지붕을 얹어서 ‘우물각’을 세웠다. 샘고사[용신제]를 성대하게 지낼 때는 만신할머니를 모셔서 제사상에 떡과 돼지머리, 삼색과실을 올려 지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평상시에는 잘 추린 짚 위에 밥과 미역을 놓고 촛불을 켜 놓고 절을 하며 소원을 빌었다. 고사가 끝나면 떡 한 조각을 우물과 우물 주변에 떼어 놓는 것으로 마무리하였다.
[문의 용신제]
오늘날 청주시와 세종시에 속하는 조선 후기 충청도 문의현에서는 가뭄이 오면 현의 남쪽 도곡진(道谷津) 아래에 있는 용연(龍淵)에서 용신에게 기우제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당시 민간에서도 해마다 정월에 무사안녕와 풍어, 자손의 번영을 비는 용신제를 지냈다고 한다. ‘문의 용신제’는 일제 강점기에 중단되어 복원되지 않다가, 옛 청원군이 청주시에 통합되기 전인 1993년부터 청원문화제 행사의 하나로 문의문화재단지에서 재연된 바 있다. 이때 절차는 『국조오례의(國朝五禮儀)』에서 “주와 현에서 명산대천에 제사 지내는 의식[祭州縣名山大川儀]”에 준거하여 군수가 헌관이 되어 유교식으로 지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