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87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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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Sericultural Farming |
이칭/별칭 | 양잠,잠사,한달농사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종선 |
[정의]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서 견직물의 원료인 누에고치를 생산하는 일.
[개설]
양잠은 누에를 키워 고치를 생산하는 일이기에 ‘누에치기’ 혹은 ‘잠사(蠶事)’라 부른다. 누에치기라는 이름은 양잠의 과정이 누에를 기르는 일에 더 집중되어 있음을 엿볼 수 있는 표현이자, 양잠의 궁극적인 목적이 양질의 고치 생산임을 알 수 있는 부분이다. 또 농가에서는 ‘한달농사’라고도 하는데, 이는 누에가 알에서 깨어나 고치를 짓고 이를 수확하기까지 대개 30여 일이 채 걸리지 않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가 흔히 알고 있는 누에는 누에나방과에 속하는 누에나방의 애벌레이다. 인간의 손길 없이는 자생할 수 없는 곤충으로 ‘집누에’, ‘가잠(家蠶)’으로 불린다. 유전적으로 야생의 멧누에나방이 가까운 종으로 알려져 있으며, 가축화될 만큼 형질의 변화가 발생하였으니, 누에치기의 오랜 역사를 가늠케 한다. 우리나라에선 중국을 통하여 양잠 기술을 전래받아 약 3,000년 전부터 누에치기가 시작되었다고 보는 의견이 일반적이다. 신석기 문화를 대표하는 유물인 가락바퀴는 실을 뽑을 때 사용하던 도구인데, 한반도 신석기 시대 사람들이 당시부터 실을 뽑고 옷을 입었음을 알려 준다.
삼국 시대를 거쳐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에 이르기까지 누에치기는 국가에서 산업을 주도할 만큼 발달하였다. 특히 일제 강점기에는 누에치기를 중요한 수탈 품목으로 여긴 일제에 의하여 생산 방식에서 큰 변화가 일어났으니, 특히 청주를 중심으로 하는 충청북도에 누에치기 활성화를 위한 교육 시설과 누에치기 생산 공동 시설들이 구축되었다.
[변천]
1913년도에 잠업강습소가 청주군 사주면 사창리[현 청주시 서원구 사창동] 지역에 설치되어 잠업에 관한 전반적인 이론과 실습 교육이 이루어졌다. 이후 사창리 인근에는 잠업취체소, 양잠기술원 등이 설치되었다. 잠업강습소 출신들은 광복 이후 충청북도청 등 공직에 대거 진입하면서 충청북도 잠사업의 발전을 선두에서 이끌기도 하였다.
사창리에 설치한 잠업강습소를 1918년도에 원잠종제조소로 개편한 후 누에씨를 만들어 봄·가을 2차례에 걸쳐 누에 농가에 보급하였다. 봄에 얻은 누에씨를 가을까지 보관하는 빙고가 필요하였는데, 1920년대 지금의 청주시 상당구 교서로32번길 9[영동 71] 자리에 누에빙고를 건립하였다. 누에빙고에 필요한 얼음은 무심천에서 떠서 사용하였다. 그렇게 누에씨를 보호하다가 알맞은 시기에 누에씨를 농가에 공급하였다.
1933년 10월 충청북도의 누에농가는 원잠종제조소 자리에 잠령탑을 건립하였다. 잠령탑은 누에의 영혼을 기리는 탑이다. 과거 조선 시대에는 친잠례나 선잠례 등의 의례로 하늘에 제를 지내던 것과 달리, 잠령탑은 누에의 영혼을 기리는 것이어서 일본의 풍속에 따른 것이라고 한다. 현재 이 잠령탑은 현재 청주시 흥덕구 강내면에 있는 한국잠사박물관 야외에 세워져 있다.
1945년 광복 이후 잠사업은 정부 주도로 크게 발전하였다. 1949년을 기점으로 잠견 3개년 계획이 추진되었지만 6·25전쟁이 일어나면서 무산되었다. 6·25전쟁이 끝나고 정부는 1952년부터 1956년까지 5개년 잠견 증산 계획을 수립하여 잠업 부흥 시책을 펼쳤다. 1950년대 초, 생사(生絲)가 우리나라 총 수출액의 3~5%를 차지할 만큼 주요 수출 품목으로 부각됨에 따라 1952년도에는 한국생사수출조합의 업무가 개시되었다. 정부는 1961년도 말에 새로운 「잠업법」을 공포하였고, 1962년부터는 새로운 증산 계획을 세워 1976년까지 총 3차에 걸쳐 시행하였다.
경제 개발 계획의 일환으로 15년간 추진되었던 잠업 증산 계획은 우리나라 잠사업의 급진적인 발전을 가져왔고, 충청북도와 청주는 그러한 중심에 서 있었다. 1966년 당시 옛 청원군 지역은 도내 뽕나무 묘목 생산량의 17% 이상을 생산하며 가장 많은 생산량을 보여 주었다. 1962년부터 1976년까지 충청북도의 누에치기 농가 증가 비율은 199%였는데, 전국 평균이 128%였으니 전국에서 제일 높은 증가율을 보였다.
1968년에는 충청북도의 음성·진천 지구와 청원 지구를 양잠 특설 지구로 선정하여 청주 지역 누에치기가 크게 성행하는 계기가 되었다. 당시 영부인 육영수는 누에치기에 큰 관심을 보여 때때로 청원군의 누에치기 관련 현장을 시찰하였고, 이를 계기로 1974년 8월 13일에 ‘새마을 권잠실’을 건립하였다. 새마을 권잠실 옆으로 한국잠사박물관과 대한잠사회 잠업진흥원이 설립되어 지금까지도 국내 누에치기 문화의 중심지 역할을 다하고 있다.
국내 양잠업은 1980년대부터 사양길을 걷고 있다. 1970년 4만 8937호였던 충청북도의 누에치기 농가는 2022년 19호로 크게 줄어들었다. 청주 지역도 마찬가지로 누에치기 인구가 대폭 줄어 2020년 기준으로 누에치기 농가는 2호밖에 남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