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23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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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朴崇元 扈聖功臣敎書 |
영어공식명칭 | Royal Certificate of Hoseong Meritorious Subject Issued to Bak Sung-won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문헌/문서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운천동 86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최유림 |
작성 시기/일시 | 1604년 - 「박숭원 호성공신교서」 작성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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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8년 9월 30일 - 「박숭원 호성공신교서」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6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박숭원 호성공신교서」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박숭원 호성공신교서」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
소장처 | 청주고인쇄박물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운천동 866] |
성격 | 교서 |
관련 인물 | 선조|박숭원 |
용도 | 교서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된 조선 후기 박숭원 교서.
[개설]
「박숭원 호성공신교서(朴崇元 扈聖功臣敎書)」는 조선 후기 박숭원을 호성공신으로 책훈한다는 교서이다. ‘밀천군 박숭원호성이등공신녹권(密川君 朴崇元扈聖二等功臣錄卷)’이라고도 한다. 박숭원은 본관이 밀양(密陽), 자는 상화(尙和)이다. 조부는 예조참판을 지낸 박광영(朴光榮)이며, 아버지는 군수를 지낸 박란(朴蘭)이다. 어머니는 나성령(羅城令)의 딸이다. 1564년(명종 19) 별시 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승문원(承文院) 권지정자(權知正字)가 되었고, 이후 병조좌랑을 거쳐 수찬, 교리, 동부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후에 외직으로 나가 강원도관찰사를 지내고 다시 우부승지가 되었다. 평안도관찰사, 대사헌, 충청도관찰사, 도승지 등을 역임하였다. 1592년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선조를 호종하여 보검을 하사받았고, 도승지를 거쳐 한성좌윤에 올랐다. 「박숭원 호성공신교서」는 1988년 9월 30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66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제작 발급 경위]
임진왜란 이후 전쟁의 논공행상은 1601년(선조 34) 3월 시작되어 1604년(선조 37) 10월 완결되었다. 3년 8개월 동안 공신 책훈과 관련된 제반 사항이 반복하여 논의되었고, 그 결과 선조를 서울에서 의주까지 시종하여 호종한 사람을 호성공신(扈聖功臣), 왜병을 정벌한 장수 및 원병 요청을 위하여 명나라에 왕래한 사신을 선무공신(宣武功臣), 이몽학의 난을 평정한 사람을 정난공신(靖難功臣)으로 책훈(策勳)하기로 정하였다. 당시 호성공신은 86명[1등 2명, 2등 31명, 3등 53명], 선무공신은 18명[1등 3인, 2등 5인, 3등 10인], 정난공신은 5명[1등 1명, 2등 2명, 3등 3명]이었다. 박숭원(朴崇元)[1532~1592]은 선조가 한양을 떠나 의주에서 있는 동안 종시호종(終始扈從)했다는 공을 인정받아 호성공신 2등을 받았다. 박숭원은 1592년(선조 25) 의주 피란 당시 병으로 사망하여, 교서(敎書)는 박숭원 사후 내려졌음을 알 수 있다.
[형태]
「박숭원 호성공신교서」는 생견(生絹) 바탕에 저지(楮紙)로 배접된 두루마리로 가로 259㎝, 세로 38㎝이다.
[구성/내용]
「박숭원 호성공신교서」에는 ‘교자헌대부한성부판윤증충근정량효절협책호성공신숭정대부의정부좌찬성겸판의금부사세자이사지경연춘추관성균관사밀천군박숭원서(敎資憲大夫漢城府判尹贈忠勤貞亮効節協策扈聖功臣崇政大夫議政府左贊成兼判義禁府事世子貳師知經筵春秋館成均館事密川君朴崇元書)’라는 제목이 적혀 있다. 박숭원이 임진왜란 당시 선조를 의주까지 종시호종하였던 공훈을 기록하고 있다. 이후 박숭원이 하사받은 계급과 전답 등을 기록하고 있는데, 박숭원은 관작(官爵) 2계급을 초급(超級)하고 모습을 그려 후세에 전하며, 부모와 처자도 2계급을 더 올려 주되 아들이 없을 경우 생질(甥姪)이나 여서(女壻)에게 1계급을 올려 주며, 적장자에게 녹유(祿宥)를 세습하도록 하였다. 이 밖에도 노비 9구, 전(田) 80결, 은 7량, 표리 1단, 내구마(內廐馬) 1필을 수령하도록 교시를 내리고 있다. 이후 호성공신에 임명된 86명의 인물들이 등급 별로 나열되어 있으며, 박숭원은 2등 31명 가운데 19번째에 기술되어 있다. 상하단변(上下單邊)에 사급 연월일 ‘만력 32년 10월 일(萬曆三十二年十月 日)’이 적혀 있고, 위에는 ‘시명지보(施命之寶)’가 찍혀 있다.
[의의와 평가]
현재까지 전하고 있는 호성공신교서는 박숭원 외 김응남, 김양보, 류근, 류성룡, 박동량, 심대, 이경검, 이공기, 이충원, 이헌국, 이호민, 정희번, 홍진 등의 교서가 확인되었다. 「박숭원 호성공신교서」는 보존 상태가 양호한 편으로, 의주까지 선조를 호종하였던 공신들에 대한 포상 및 임진왜란 이후의 공신들의 변화상, 공신문서 규정 등을 살필 수 있는 귀중한 사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