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98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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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德村里 |
영어공식명칭 | Deokchon-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덕촌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전영우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덕촌리(德村里)는 큰 절이 있었으므로 ‘덕절’ 또는 ‘덕촌’이라 하였다고 한다. 또는 무학대사가 지나다가 보니 동네가 응봉산을 주산으로 좌우로 산세가 뻗어 있고 앞은 부모산이 안산으로 자리 잡은 동네로 조선의 도읍지로 정하려 하였으며, 덕과 빛이 많은 인재가 배출될 동네라 하여 덕광촌이라고 하였다는 전설이 내려온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는 서강외이면 광덕촌리(光德村里) 명칭이 기록되어 있고, 『호구총수(戶口總數)』에는 덕촌리(德村里), 덕촌(德村), 광촌리(光村里)가 확인된다.
[형성 및 변천]
덕촌리는 본래 청주군 서강외이하면의 지역으로, 1750년(영조 26)~1776년(영조 52)에 광덕촌(光德村)만 있었으나, 1789년(정조 13)에 덕촌(德村), 덕촌리(德村里), 광촌리(光村里)로 분리되었다. 헌종 대 덕촌과 광촌으로 통합되어 고종 대까지 유지되었다. 1910년 이전에 덕촌, 반곡촌(盤谷村), 보촌(洑村), 오촌(鰲村)으로 분리되어 있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덕촌과 반곡촌, 오촌, 서강내이하면의 석화리(石化里), 사인동(俟仁洞)의 각 일부를 병합하여 충청북도 청주군 옥산면 덕촌리로 개설되었다. 1946년 6월 1일 청주읍이 청주부로 승격되는 동시에 청주군의 나머지 지역이 청원군으로 변경되면서 충청북도 청원군 옥산면 덕촌리로 개편되었다. 2014년 7월 1일 청원군과 청주시가 통합되면서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덕촌리가 되었다. 덕촌리의 행정리는 덕촌1리, 덕촌2리, 덕촌3리로 분구되어 있다.
[자연환경]
덕촌리는 평야가 넓으며 북쪽과 남쪽이 모두 하천이 흐른다.
[현황]
2023년 6월 30일 현재 덕촌리의 면적은 2.82㎢이며, 인구는 251세대, 501명[남자 265명, 여자 236명]이다. 덕촌리는 옥산면의 최남단에 있으며, 동쪽으로 오산리, 서쪽으로 신촌리, 남쪽으로 흥덕구 강내면 석화리, 북쪽으로 환희리와 접하고 있다.
덕촌리의 자연 마을로는 덕촌1리는 반곡(盤谷), 광단말, 광촌(光村), 똘뚜기, 보촌(洑村), 덕촌2리는 삼성골, 서촌(西村), 위서촌, 새터[新基], 괴동(槐洞), 지월, 덕촌3리는 미평(美坪), 단일로 이루어져 있다. 덕촌리 집성으로는 하동 정씨를 들 수 있는데, 500여 년 전 정승공파 10세 손 정광업이 오산리에 낙향한 이래 후손들이 덕촌리에 세거하고 있다. 1906년 하동 정씨인 독립운동가 정순만(鄭淳萬)[1873~1911]에 의하여 덕신학교가 세워져 새터에 있었으나 사라졌다. 덕신학교는 설립 110년 만인 2016년에 복원되었다. 덕촌리에서는 정순만의 정신을 이어 3·1절 기념행사를 마을 축제로 계승, 발전시켜 이어 오고 있다. 2019년 3·1운동 및 대한민국 임시정부 수립 100주년 기념 공모 사업에 선정되어 청주시의 1호 마을 아카이브 사업으로 ‘독립운동가마을’이 조성되었다. 덕촌리는 농업과 낙농업이 발달하였다. 덕촌리 문화 유적으로는 1769년(영조 45)에 모사한 정수충 초상 및 중모기[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와 1854년(철종 5)에 세운 충주 지씨 열녀각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