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154 |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물/유물(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운천동 866]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민식 |
제작 시기/일시 | 1856년 - 정수충 초상 및 중모기 제작 |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7년 3월 31일 - 정수충 초상 및 중모기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9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정수충 초상 및 중모기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정수충 초상 및 중모기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
현 소장처 | 청주고인쇄박물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직지대로 713[운천동 866] |
원소재지 | 문절영당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덕촌삼성골길 42-8[덕촌리 1] |
성격 | 초상 |
재질 | 비단 채색 |
소유자 | 하동 정씨 종중 |
관리자 | 청주고인쇄박물관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운천동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는 조선 후기 정수충의 초상과 모사 과정을 기록한 책.
[개설]
정수충(鄭守忠)[1401~1469]은 세조의 즉위를 도와 좌익공신(佐翼功臣) 3등에 오른 인물이다. 청주에 세거하는 하동 정씨를 대표한다. 정수충은 자가 경부(敬夫), 본관은 하동(河東), 시호는 문절(文節)이다. 1450년(세종 32) 문과에 급제하여 여러 벼슬을 지내었으며 1455년 좌익공신 3등에 올랐다. 1856년 작성한 중모기(重模記)에 따르면 공신도상을 따른 초상은 1769년(영조) 금릉(金陵) 종가에서 옮겨 그렸는데, 88년이 흘러 훼손이 심하자 1856년 다시 그렸다고 한다. 정수충 초상 및 중모기(鄭守忠 肖像 및 重模記)는 1987년 3월 31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5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형태]
정수충 초상의 원본은 정수충이 1455년 좌익공신에 오른 직후에 그린 것으로 추정된다. 부드러운 선으로 윤곽을 그린 후 채색하였는데, 사모를 쓰고 흉배가 드러난 단령은 각이 지고 입체감이 드러난다. 교의의 소매 속에 손을 모으고 앉은 전신 좌상으로 얼굴은 오른쪽으로 향한 좌안팔분면이다.
[특징]
정수충 초상은 조선 전기의 공신상을 따랐으나 사모가 지나치게 높고 뒷쪽 양쪽 뿔이 수평에 가까운 점은 조선 전기와 다르다. 중모기에 경상도 삼가현 출신 이덕명(李德明)이라는 지역 화가로 하여금 초상을 다시 그리게 한 내용이 담겨 있다. 더불어 중모기에는 중모 과정과 비용을 자세히 기록하였으며, 축문도 덧붙였다. 정수충 초상은 원래 문절영당에 소장되어 있었고, 1856년 제작된 정수충 초상 및 중모기는 청주고인쇄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
[의의와 평가]
정수충 초상 및 중모기는 한 문중을 대표하는 인물의 초상을 옮겨 그리고 거듭 다시 그린 과정과 비용 등을 중모기를 통하여 자세히 알 수 있다. 또한 조선 전기의 공신상을 옮겨 그렸지만 옮겨 그린 시기의 시대적 경향도 함께 보이고 있다는 특징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