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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871
한자 閑溪里
영어공식명칭 Hangye-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한계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한선경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충청북도 청주군 낭성면 한계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6년 6월 1일 - 충청북도 청주군 낭성면 한계리에서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면 한계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14년 7월 1일 -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면 한계리에서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한계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8.9㎢
가구수 126세대
인구[남/여] 231명[남 121명|여 100명]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한시동(閑時洞)의 한(閑) 자와 노계리(蘆溪里)의 계(溪) 자를 따서 한계리(閑溪里)라고 하였다.

[형성 및 변천]

1750~1776년[영조 대 후반]에는 청주목 산내이하면 지역으로 한시동과 원동리(院洞里)로 이루어져 있었다. 1789년(정조 22) 노계리(蘆溪里)가 새로 조성되어 1910년에는 청주군 산내이하면 지역으로 한시동, 백포동(白圃洞), 노계리, 원동으로 이루어져 있었다.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한시동, 백포동, 노계리와 원동 일부, 남일상면의 적리(赤里) 일부를 병합하여 충청북도 청주군 낭성면 한계리로 개설되었다. 1946년 6월 1일 청주읍청주부로 승격되는 동시에 청주군의 나머지 지역이 청원군으로 변경되면서 가덕면으로 편입되어 충청북도 청원군 가덕면 한계리로 개편되었다. 2014년 7월 1일 청원군과 청주시가 통합되면서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한계리가 되었다. 한계리의 행정리는 한계1리, 한계2리로 분구되어 있다.

[자연환경]

한계리선도산(先到山)에서 선두산(仙到山)백족산(白足山)으로 이어지는 능선의 서사면에 자리하고 있다. 전체 면적의 90% 정도가 험준한 산악 지대로 이루어져 있으며, 남쪽 지역 일부에만 선두산백족산 사이에 형성된 평야 지대가 있다. 남쪽에는 한계천무심천 사이에 형성된 평야 지대에 농업용수를 공급하는 한계저수지가 있다.

[현황]

2023년 7월 현재 한계리의 면적은 8.9㎢이며, 인구는 126세대, 231명[남자 121명, 여자 110명]이다. 한계리가덕면의 북부 끝에 있으며, 동쪽으로 상당구 낭성면 추정리, 서쪽으로 월오동, 남쪽으로 상야리남일면 황청리, 북쪽으로 낭성면 지산리, 이목리와 접하고 있다. 가덕면에서 가장 큰 면적을 차지하는 산촌 마을이다. 남동쪽에는 백족산이 있는데, 세조가 속리산으로 행차하다가 지나가게 된 산 중턱에 있는 백족사[본래 이름은 ‘심진암(尋眞庵)’] 샘물에 발을 씻었는데 세조의 발이 희었으므로 ‘백족산’이라 이름이 붙여졌다고 한다. 백족사에는 청주 백족사 석조여래좌상[충청북도 문화유산자료], 청주 백족사 삼층석탑[충청북도 문화유산자료]이 있다. 한계리 남쪽에는 충청북도 자치연수원, 충청북도 교통연수원이 자리하고 있다.

한계리의 자연 마을은 점말, 상뜸, 산양골, 중뜸, 원동이 한계1리, 한시울의 양달말, 음달말이 한계2리로 나뉘어 있다. 뇌겨는 점말 서쪽에 있는 마을로 노계(魯溪)라고도 한다. 뇌겨는 중뜸, 상뜸[상촌], 산양골, 점말[점촌]로 나누어진다. 중뜸은 노계의 중심 마을로 산양골 아래에 있으며 한계1리 경로당이 있다. 상뜸은 노계 북동쪽에 있는 마을로 한계천 건너편에 있다. 산양골은 노계 동쪽에 있다. 점말은 중뜸의 동쪽에 있는데, 옹기를 만들었던 곳으로 지금도 옹기 가마터가 남아 있다. 원동은 노계 남동쪽에 있는데, ‘서원이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현재는 서원은 없고 고령 신씨(高靈 申氏)의 재실이 있다.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원동리(院洞里)’로 나오는데, 청주 관문에서 동쪽으로 20리[약 7.85㎞] 떨어져 있으며, 호수는 6호이고, 남자가 14명, 여자가 12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계2리에는 한계저수지 북쪽에 한시울이 있다. 한시울은 ‘한실울’의 변화형으로 ‘큰 골짜기에 형성된 마을’이라는 뜻이며 한시동(閑詩洞)이라고도 한다. 『여지도서』에는 ‘한시동리(閑時洞里)’로 기록되어 있다. 청주 관문에서 동쪽으로 20리 떨어져 있으며, 호수는 25호이고, 남자가 37명, 여자가 30명이라고 기록되어 있다. 한시울은 다시 양달말과 음달말로 나뉘는데, 양달말은 한시울 서쪽에 있고 음달말은 한시울 동쪽에 있다. 음달말 안쪽에는 한계리 노인회관이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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