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의]
충청북도 청주 지역의 극적 무대 예술.
[개설]
우리나라 근대극의 개념은 최남선(崔南善)[1890~1957]과 김재철(金在喆)[1907~1933]) 등에 의하여 정리되었다. 1902년 한국 최초의 현대식 국립 극장 협률사(協律社)와 1908년 사설 극장 원각사(圓覺社) 설치, 1910년대 동경 유학생들이 일본으로부터 국내로 들여온 신파극의 도입, 1920년 극예술협회(劇藝術協會), 본격적인 전문 극단 활동이라 할 수 있는 1922년 토월회(土月會), 1931년 극예술연구회(劇藝術硏究會) 등의 순으로 우리나라 근대극의 기원과 발전을 이해하는 것이 보통의 개념이다.
청주 지역의 연극이라고 하였을 때는 전통 놀이에 기원하여 고대부터 이어지는 극적 행위가 반드시 존재하였을 것으로 보이지만 구체적인 실체를 파악하기는 쉽지 않다. 현재는 민족극이라는 의미가 민중극, 마당극을 통합한 상위 개념으로 자리하고 있다. 민중극은 진보적 전문인 극단 활동을 근간으로 연극 놀이를 포함한 다양한 진보적 비전문인 연극을 모두 포함하는 마당극의 상위 개념이다. 마당극은 양식적인 전형을 탈춤에서 가져온 연극 행위로서 무대극과는 상대적인 장소적 표현으로 ‘민중적 형식에 민족적 내용’을 담은 연극 행위로 정의된다.
충청북도 연극의 태동은 1920년대 조명희(趙明熙)[1894~1938]의 활동과 동우회순회연극단(同友會巡廻演劇團)의 충청북도 내 순회공연, 또는 김복진(金復鎭)[1901~1940]·김기진(金基鎭)[1903~1985] 형제의 토월회 활동 및 이무영(李無影)[1908~1960]이 활동한 극예술연구회의 충청북도 내 순회공연 등으로 보기도 한다. 그러나 엄격히 구분하면 충청북도 지역 고유의 연극 활동이라고 보기는 어렵다.
[연원]
1957년 학생극에 기원을 두고 있던 김성렬·이정실·김근수·송주헌 등이 연극 협회[가칭]를 구성한 것이 연극 단체 활동으로는 최초의 활동이라고 할 수 있다. 연극 협회는 1957년 김경옥이 연출한 「주노와 공작」을 최초로 공연하고, 1959년 김영수가 극본을 쓰고 이정실이 연출한 「가족회의」가 공연되었다. 1959년 11월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全國文化團體總聯合會)이 제1회 충북예술제를 개최하였는데, 연극 협회는 1959년 11월 3일 유치진이 극본을 쓰고 이정실이 연출한 「나도 인간이 되련다」를 공연하였다. 1959년에는 충북연극협회가 본회로부터 협회 승인을 받았으나 정식 협회가 구성된 것은 1963년의 일이다. 이렇듯 청주 연극의 최초 활동 형태는 ‘연극 협회’라는 형태를 빌려 공연 활동을 한 것으로 볼 수 있으며, 이런 형태는 1970년까지 이어졌다. 1960대 말의 청주 연극을 살펴보면 최석하·최영철·민병인·임해순·박태련·조중현·송진호·김순지 등이 주축이 되었는데, 최석하·임해순·조중현 등은 서라벌예술대학 연극영화학과와 방송학과 등을 졸업한 전문인이었으며, 송진호 등은 대학 연극에 뿌리를 가지고 있었다.
[변천]
1960년대 말 청주 지역에 있는 대학에 연극반이 결성되기 시작하였다. 1968년 청주교육대학교, 1969년 충북대학교에 각기 연극반이 창립되었다. 1972년 청주대학교에 연극반이 만들어졌다. 서원대학교는 청주사범대학 시절인 1978년에 연극반이 구성되었다. 또한 1981년 청주대학교에 연극영화학과가 개설되었다. 대학 내의 연극 활동은 청주 지역의 연극 활동의 활성화에 영향을 주었다.
[극단]
청주 지역 최초의 극단은 1970년 장남수가 지역 예술인 네 명과 의기투합하여 김은수 전 한국도자기 이사의 지원을 받아 창단한 ‘시민극장’이다. 시민극장은 충청북도 최초의 극단이기도 하다. 시민극장의 결성은 다른 지역과 비교하여도 2~3년을 앞섰고, 그 덕분애 청주 지역 연극 활동의 전국적인 우위가 상당 기간 점유될 수 있었다. 1981년 시민극장은 천재 시인 이상(李箱)[1910~1937]의 이야기를 그린 「날개」[장남수 연출]라는 작품으로 전국연극경연대회에서 대통령상을 받았고, 현재까지 160여 회 이상의 정기 공연을 하고 있다.
시민극장의 창단과 활동에 이어 1984년부터는 청주 지역 내 다양한 극단이 출현하였다. 1983년 극단 무성이 창단되고, 1984년 2월 극단 상당극회와 1984년 3월 극단 청년극장 등이 창단됨으로써 시민극장으로 대표되었던 충청북도 연극이 다양한 극단을 지니는 형태로 발전하였다.
1986년에는 극단 청사가 결성되었다. 극단 새벽이 결성된 것은 1991년 2월이다. 극단 청사는 청주사범대학교[현 서원대학교] 연극 동아리에서 비롯되었으며, 극단 새벽은 충북대학교 연극 동아리에서 비롯되어 각기 특정한 대학 동문이 주축이 되어 결성되었다는 공통점을 가지고 있다.
[마당극]
1980년 5월 16일 신축 중인 청주대학교 도서관 부지에서 ‘이바지’라는 단체가 공연한 마당극 「검은산 검은물」이 공연되었다. 「검은산 검은물」은 강원도 정선 탄광 마을에서 벌어졌던 ‘동원탄좌 소요 사건[일명 사북 사건]’을 극화한 작품이다. 전국에 계엄령이 선포된 시절이라서 사회적으로 큰 반향을 일으켰으며, 충청북도 지역 문예 운동사의 중요한 사건이 되기도 하였다. 1984년 창작 연희 단체로 예술 공장 두레가 창단되었고, 1984년 민족춤패 너울이 전통 춤의 발전과 현대적 재창조, 삶의 힘과 위안이 되는 예술 문화를 목표로 창단되었다. 그 후 1988년 우리춤연구회에서 분화·발전한 극단 놀이패 열림터가 결성되었다. 극단 놀이패 열림터는 진보적 민중극, 마당극을 전문적으로 공연하는 단체이다. 이 밖에도 놀이마당 울림, 극단놀이패 열림터 등이 탄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