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62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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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金融組合 |
영어공식명칭 | Co-operative Credit Society |
분야 | 정치·경제·사회/경제·산업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조수종,김효진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일대에서 개항기와 일제 강점기에 농민·중소상공업자·서민 등을 조합원으로 삼아 금융을 제공한 신용 금융 기관.
[개설]
1905년 금융 공황 발생으로 농촌의 금융 행위는 거의 중단되었다. 정부에서는 농촌의 금융 문제를 해결하기 위하여 1906년부터 각지에 농공은행과 창고를 설립하였으나, 실효를 보지 못하였다. 이에 1907년 5월 「지방금융조합규칙」을 발령하여 지방 금융조합을 설치하였다. 지방 금융조합을 통하여 농촌 사람들에게 금융 편의를 제공하고, 농촌 사람들의 경제적 지위를 향상하기 위함이었다. 실제로 1907년 전국 각지에 17개의 지방 금융조합이 설립되어 5,616명의 조합원을 모았다. 이후 조합의 수가 급격히 증가하여 1919년 말에는 지방 조합의 수가 393개소, 조합원의 수가 20만 명이 넘었으며, 1930년대에는 조합 수가 644개소, 조합원의 수는 67만 명에 달하였다.
청주 지역 최초의 금융조합은 1907년 8월 30일 회원 320명과 자본금 1만 원으로 시작한 청주금융조합이다. 청주금융조합의 업무 구역은 청주·문의·보은·회인·진천·청안 등이었고, 주요 업무는 농업 자금 대부·창고업·종묘·농기구의 분배 및 대여 등이었다. 주요 업무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것은 농민들에게 자금을 대부하는 것이었다.
[변천]
청주금융조합의 주요 대출 방식은 부동산 담보 대출이었고, 대출 이자는 매월 납입하는 방식으로 평균 6전이었다. 당시 청주금융조합 부동산 담보 대출액의 건당 평균은 48.3원이었는데, 이는 전국 평균 34.9원에 비하여 높은 것이었다. 또한 부동산 담보 평가액 건당 113.99원도 여타 22개 조합의 담보 평가액 건당 94.75원보다 높았다. 이러한 청주금융조합의 부동산 담보 평균 대출액은 당시 규정보다 높은 것이었으나, 대출액 대비 담보의 비율은 타 지역보다 낮았다.
당시 대부분의 대출금은 농업 관련 자금으로 사용되었다. 실제로 청주금융조합 대출금의 88%가 농업 대출금이었으며, 담보물은 농공은행주권·백미·벼·소 등이었다. 청주 지역 대부분의 동산 담보 대출은 청주금융조합에서 이루어졌다. 실제로 청주 지역 전체 동산 담보 대출 31건, 1,485원 가운데 청주금융조합의 동산 담보 대출이 27건, 1,315원이었다. 청주금융조합의 농공은행주권은 1주가 5원에 거래되었는데, 담보 대출은 7건 315원이었으며, 건당 평균 45원이었다. 주권 수별로 보면, 10주가 3건으로 40원씩 120원을 대출하였고, 11주가 1건으로 45원을 대출한 것이다. 그만큼 유가증권 담보가 확실하였던 것을 의미한다. 백미의 양별로 살펴보면, 7석이 12건, 8석이 8건이었으며, 평가액 대비 대출금은 각각 78.37%, 75.19%, 78.125%였다. 이는 담보물 평가액의 8할을 대출 한도액으로 한다는 규정을 철저히 지킨 것이었다. 이를 통하여 백미 또한 유가 증권과 함께 우대 담보 품목이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한편, 청주 지방 금융조합은 연대 대출을 하기도 하였다. 실례로 강준만·장계령 등 2명이 최한구를 보증인으로 삼고, 답 4두락, 전 16두락, 초가 8칸을 담보로 하여 100원을 대출하여 농사비로 사용하였다.
청주금융조합의 설립을 계기로 충청북도 지역에는 1908~1909년 영동금융조합·충주금융조합·보은금융조합 등이 차례로 설립되었다. 청주금융조합을 비롯한 전국의 금융조합은 표면적으로 농민들의 금융 편의를 위하여 설립·운영되었다. 하지만 실질적으로는 식민지 경제 구조의 재편 과정에서 나타난 금융 공황과 신용 통화 기구의 혼란을 진정하고, 일제의 농정(農政)을 지원하기 위하여 설립된 것이었다.
[의의]
금융조합 은 협동조합이라기보다는 금융 영리 단체의 성격이 강하였으며, 조합원은 그 경제적 위치에 따라 이용 혜택과 활동이 정하여졌다. 즉, 금융조합을 통하여 이득을 보는 계층은 하층 농민이 아니라 지주를 중심으로 한 농촌의 부농과 중농층이었다. 결국 금융조합은 지주 제도를 확대하고, 농촌 계급의 분화를 촉진하는 하나의 원인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