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93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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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平生 儀禮 |
이칭/별칭 | 통과의례,일생 의례 |
분야 | 생활·민속/민속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김해인 |
[정의]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서 사람들이 평생 동안 중요한 단계마다 지내는 의례.
[개설]
평생 의례는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죽을 때까지 평생 동안 출생·성년·결혼·사망 등 중요한 시기마다 겪는 크고 작은 의례이다. 인간은 일생을 살아가며 공통적으로 몇 가지 중요한 단계를 거친다. 그리고 각 단계마다 행하는 의례가 있고, 이러한 의례를 통하여 인간은 새로운 사회적 지위나 역할을 부여받는다. 인간이 일생 동안 거치는 의례라는 점에서 ‘일생 의례’, 한 단계를 거쳐 다음 단계로 넘어가며 새로운 지위로 거듭난다는 점에서 ‘통과의례’라고도 한다.
평생 의례의 종류로는 출산·임신·육아와 관련된 출생 의례, 성인으로 인정받는 의식인 관례(冠禮), 남녀가 만나 가정을 이루는 혼례, 회갑·고희 등 장수를 축하하는 의례인 수연례(壽宴禮), 죽음을 맞아 치르는 상례(喪禮), 죽은 이를 기리고자 치르는 제례(祭禮)가 있다. 이제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서 사람이 태어나서 죽음에 이르기까지 행하여지는 평생 의례에 대하여 간략하게 살펴보겠다.
[출생 의례]
출생 의례는 아이를 기원하는 기자(祈子) 의례, 임신하였을 때 행하는 행위, 출산 후 산모와 아기를 위하여 행하는 의례, 아이가 잘 자라기를 기원하는 의례 등을 포함한다.
청주 지역에서는 1980년대 이전에 시집온 부인이 아들을 낳으려고 산천의 기자바위나 산신에게 아들을 기원하는 비손을 드리기도 하였다. 임신 후에는 행동을 가려 삼가며 좋은 것, 잘생긴 것만 보고 듣고 행동하였다. 출산이 있는데 부정을 타면 “벌을 먹인다”라고 하여, 짚을 잘라서 맑은 물에 넣고 그 물을 부정 탄 사람 머리에 붓고 한 모금 마시고 나서 삼신에게 빌어 삼신의 노여움과 부정을 풀었다.
출산 후에는 ‘삼신밥’을 차리는데, 삼신밥은 미역국, 밥, 물로 차려 방 한구석에 올렸고, 백설기를 추가로 올리기도 하였다. 삼신밥은 산모가 먹는데, 1950년대에는 끼니가 여의치 않던 시절이라 미역국 대신에 호박국을 먹기도 하였다. 마당에는 왕겨로 불을 피워 아기의 태(胎)를 태우고, 재는 산의 소나무 아래에 묻거나 냇가에 버렸다. 아이를 낳고 세이레[21일] 동안 금줄을 걸어 부정을 가렸다.
아이가 태어난 지 100일이 되면 수수팥떡과 백설기로 백일 떡을 하였다. 백일 떡은 백 명이 먹으면 좋다고 하여 동네에 모두 돌린다. 수수팥떡은 아이의 살이 풀어지라는 의미로 열 살까지 하여 주었다. 돌이 되면 돌상을 차리는데, 돌상에는 돌떡을 비롯하여 연필, 공책, 실, 돈 등을 같이 놓아 아이가 집는 것으로 아이의 미래를 점친다고 믿었다.
전통적으로 출산은 집의 안방에서 이루어졌으나, 1980년대 이후로는 출산 장소가 병원으로 바뀌기 시작하여, 현재는 거의 대부분 병원에서 출산한다. 이에 따라 전통적인 임신·출산·육아와 관련된 의례나 금기는 사라져 가는 추세이다.
[관례]
관례는 아이를 성인으로 전환시키는 의례이다. 오늘날에는 성년식(成年式)이라 부른다. 전통적으로는 남자에게는 상투를 틀고 갓을 씌우는 관례를 행하고, 여자에게는 머리를 틀고 비녀를 꽂아주는 계례(筓禮)를 성년 의례로 행하였다. 그러나 개항기인 1895년(고종 32)의 단발령 등으로 남자들이 상투를 틀지 않게 되고 여자들도 쪽머리를 하지 않게 되면서 관례 역시 사라졌다. 이후 1973년에 4월 20일을 성년의날로 제정하여 성년식을 거행하다가, 1984년부터는 5월 셋째 월요일로 날짜를 변경하였다. 현재에는 성년의날에 대학이나 여러 단체에서 성년식 행사를 개최하기도 하고 개인이나 가족 단위로 성년이 되었음을 축하하기도 한다. 청주문화원에서는 수능을 마친 고등학교 3학년을 대상으로 성년례를 개최하여 오고 있다.
[혼례]
혼례는 절차와 장소의 변화를 많이 겪은 의례이다. 혼례식을 올리는 것을 ‘대례 치른다’, ‘초례청 세운다’ 등으로 달리 부르기도 하였다. 1970년대 이전에는 중매를 통한 결혼이 일반적이었다면 1980년대 이후에는 연애결혼이 일상화되기 시작하였다. 1970년대까지만 하여도 함을 사는 문화가 있었는데, 곧 함진애비가 신부 집으로 들어올 때는 “두부 사시오!”라고 외치며, 신부 집에서 돈을 건네면 판다. 함을 사고파는 의식은 상 위에 함을 놓고 절을 하고 나서, 다시 함을 내려놓고 세 번 깔고 앉았다 일어났다 한다. 신부가 있는 방으로 함을 들여보내면 손을 넣어 물건을 하나씩 꺼내고, 혼례를 치르는 동안 함 안의 물건은 체에 담아 시렁에 올려놓았다.
혼례식과 첫날밤은 주로 신부 집에서 치렀다. 혼례식에 참석한 손님에게는 주로 국수를 대접하였지만, 여의치 않으면 메밀묵을 쑤어 대접하였다. 손님은 콩나물이나 떡 등을 부조하였다. 청주 지역에서 콩나물은 잔칫집에 빠지지 않는 음식 중 하나였다.
첫날밤을 신부 집에서 치른 신랑 신부는 시댁으로 신행을 간다. 신부는 시댁 대문 앞에서 부정털이를 하는데, 바가지를 깨거나 짚불을 넘거나, 호박을 땅에 던져 깬다. 그런 후에 시댁 안방에 앉아 폐백을 드린다.
사흘 만에 신랑과 신부는 신부 집으로 근친을 가는데, 이를 자양, 자영이라고 불렀다. 이날 저녁 처가에서는 대례 때 놓았던 용떡[가래떡을 큼직한 양푼에 용 모양으로 담은 떡]을 끓여 준다. 보통 하룻밤을 자고 오는데, 집안 사정에 따라 석 달, 또는 일 년을 지내고 오는 집도 있었다.
현대에는 혼례식 장소로 결혼예식장이 일반화되어 이에 따라 신부 집 마당에 초례청을 세우고 혼례를 진행하는 문화는 사라졌다. 그 대신에 약혼, 신혼여행 등 새로운 결혼 의례가 형성되었다.
[수연례]
장수를 축하하는 의례인 수연례 중 대표적인 것은 회갑(回甲)이다. 만 60세가 되어 태어난 해의 간지(干支)가 60년 만에 다시 돌아온 것을 축하하려고 친지와 동네 주민들을 초대하여 회갑잔치를 열었다. 회갑상은 음식을 차곡차곡 높이 쌓아 올리는데, 이때 떡은 다섯 가지 이상을 마련하였다. 죽은 이의 회갑은 잔치를 하지 않고 묘소에 가서 참배하는 것으로 대신하였다. 하지만 평균 수명이 늘어난 현재에는 예전과 같은 회갑잔치는 사라지는 추세이다. 그 대신에 직계 가족들이 모여 집에서 축하하는 것으로 변화하였다. 일흔 살인 고희(古稀), 여든 살인 팔순(八旬) 등에 행하던 잔치 역시 가족들끼리 축하하는 문화로 변화하고 있다.
[상례와 제례]
전통적으로는 마을에서 초상을 치렀다. 그렇기에 동네에서 초상을 치르는 조직을 결성하여 운영하였는데, 이를 마을에 따라 연반계나 상두계라고 하였다. 초상이 발생하면 대문 앞에 저승사자에게 대접하는 사잣밥을 차리고, 상 밑에 죽은 이의 신발을 놓아 두었다. 청주 지역에서는 발인 전날 저녁 상두꾼들이 빈 상여를 메고 마을을 한 바퀴 돌았는데, 이러한 풍습을 ‘대떨이’라고 하였다. 발인 날 운구할 때는 마당으로 나가기 전에 일꾼들이 관을 어깨에 메고 방의 네 귀퉁이를 찧는 시늉을 하는데, 이를 ‘중방맥이’라고 하였다. 이어서 제일 앞에 선 사람이 마당으로 나오며 바가지를 발로 밟아 깨서 부정을 씻는다.
제사는 4대조 이하 조상에게 명절과 기일에 지낸다. 사당이 있는 경우에는 사당에 위패를 봉안하고 기제를 지낼 때에만 위패를 안채로 모시며, 설과 추석에는 사당에서 차례를 모신다. 일반 가정에서는 설과 추석에 4대조의 지방을 써서 차례를 지낸다. 설날과 추석에는 메를 대신하여 떡국과 송편을 올리기도 한다. 기제사는 4대까지 모시는 게 원칙이지만 대부분 2대까지 모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