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4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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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林憲根 |
영어공식명칭 | Im Heongeun |
이칭/별칭 | 임정웅(林正雄)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문동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애라 |
출생 시기/일시 | 1920년 4월 25일 - 임헌근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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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2년 5월 - 임헌근 군속으로 강제 징집 |
활동 시기/일시 | 1942년 9월 14일 - 임헌근 인도네시아 자바 도착 |
활동 시기/일시 | 1944년 12월 29일 - 임헌근 항일 비밀 결사 고려독립청년당 결성 주도 |
관련 사건 시기/일시 | 1945년 1월 4일 - 암바라와 의거 거행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5월 24일 - 임헌근 군사 법정에 송치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7월 21일 - 임헌근 군사 재판에서 지이역 7년형 언도 |
활동 시기/일시 | 1945년 9월 4일 - 임헌근 석방 |
몰년 시기/일시 | 1951년 6월 28일 - 임헌근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1년 - 임헌근 건국포장 추서 |
출생지 | 임헌근 출생지 -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문동리 |
활동지 | 자바 - 인도네시아 자바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대표 경력 | 고려독립청년당 조직부장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임헌근(林憲根)[1920~1951]은 1920년 4월 25일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문동리에서 태어났다. 1942년 5월 군속으로 강제 징집되어 부산에서 2개월간 훈련을 받고 1942년 9월 14일 1,400명의 한인 청년들과 함께 인도네시아 자바의 딴중 쁘리옥(tanjon priok)항에 도착하였다 1944년 중반 연합군 포로감시원으로 근무하던 임헌근은 일제의 패방을 예견하고 한인 동료들과 함께 항일 비밀 결사 결성을 계획하였다. 임헌근은 이억관(李億觀)·김현재(金賢宰) 등과 함께 자카르타지구의 문학선(文學善), 세마랑지구의 이상문(李相汶), 암바라와지구의 손양섭(孫亮燮)·조규홍(曺奎洪) 등을 접촉하였다. 이를 계기로 1944년 12월 29일 세마랑지구 스모워노교육대에서 재훈련을 받던 한인 군속들은 교육대 취사장 뒤편에서 고려독립청년당을 결성하고 총령에 이억관을 추대하였다. 군사부장에는 김현재, 조직부장에는 임헌근, 세미랑지구 책임자에 이상문, 암바라와 지부장에 손양섭, 부지부장에 조규홍, 자카르타 지부장에 문학선, 부지부장에 백문기, 반둥 지부장에 박창원, 부지부장에 오은석 등이 선입되었다.
1945년 1월 4일 중부 자바 암바라와에서 손양섭·민영학(閔泳學)·노병한(盧炳漢)이 일본군 및 어용상인을 사살하는 ‘암바라와 의거’를 일으켰다. 이후 군속들의 저항을 두려워 한 일본군은 대규모 전속을 실시하였다. 당시 고려독립청년당은 딴중 쁘리옥 항구에 정박 중이던 수송선을 탈취하기로 모의하다가 일본군에게 발각되어 당의 전모가 드러나게 되었다. 1945년 1월 28일 총령 이억관이 체포되었고, 5월 24일 임헌근 등은 싱가포르에 압송되었다가 군사법정에 송치되었다.
임헌근은 1945년 7월 21일 자카르타의 일본군 제16군 군사 재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7년형을 언도받고 수감되었다. 이후 1945년 8월 15일 일제가 무조건 항복을 선언한 뒤 9월 4일에 석방되었다. 임헌근은 1951년 6월 28일 사망하였으며, 임정웅(林正雄)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임헌근의 공적을 기려 2011년 건국포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