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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3436
한자 朴扳文
영어공식명칭 Bak Banmo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욱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51년연표보기 - 박반문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7년 9월 - 박반문 의병 가담
활동 시기/일시 1907년 11월 15일 - 박반문 일제 순사에게 체포
몰년 시기/일시 1907년 11월 17일연표보기 - 박반문 사망
추모 시기/일시 2003년 8월 15일연표보기 - 박반문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박반문 출생지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지도보기
활동지 박반문 활동지 - 충청북도 청주시
활동지 박반문 활동지 -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성격 의병
성별 남성

[정의]

개항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박반문은 1851년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오창읍에서 태어났다. 1907년 9월부터 청주 및 목천[현 충청남도 천안시 동남구 목천읍]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5년 일제의 강압으로 을사늑약이 체결되어 대한제국의 외교권이 박탈되었으며, 이후 일제는 식민지 지배 정책을 시행하기 위한 철저한 계획을 세우기 시작하였다. 1907년 을사늑약 체결의 부당성을 전 세계에 알리려던 헤이그 특사 파견에 실패한 뒤 고종이 퇴위를 당하였고, 이어서 한일신협약[정미7조약]이 체결되어 군대가 강제 해산되는 등 일제의 국권 침탈이 끊이지 않고 계속되자 전국적으로 항일 의병 항쟁이 거세게 전개되었다.

박반문은 1907년 9월 의병에 가담하였고, 인근에 살고 있던 천성십(千聖十)·조성여(趙聖汝)·김성관(金聖寬) 등과 함께 의병들의 길안내를 하거나 군자금을 모집하였다. 박반문은 1907년 11월 15일 천성십·조성여·김성관과 함께 조치원역 출장소의 염도일(廉道一) 등 두 명의 순사에게 체포되었고, 11월 17일 호송 도중 탈출을 시도하다가 총탄에 맞아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박반문의 공적을 기려 2003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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