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41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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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師晳 |
영어공식명칭 | Yun Saseok |
이칭/별칭 | 만둔암(晩遯菴)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백주희 |
거주|이주지 | 윤사석 이주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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묘소|단소 | 윤사석 묘소 - 대전광역시 서구 가장동 |
사당|배향지 | 경모사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 |
사당|배향지 | 옥화서원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2길 50[옥화리 131] |
사당|배향지 | 죽고서원 -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 지풍로 744-10[신풍리 54-1] |
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파평 |
대표 관직|경력 | 사헌부집의 |
[정의]
조선 전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 은거한 문신.
[가계]
윤사석(尹師晳)[?~?]의 본관은 파평(坡平)이며, 호는 둔암(遯菴)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이조판서 윤곤(尹坤)이고, 할아버지는 판한성부사 윤희제(尹希齊)이다. 아버지는 참판 윤은(尹垠)이고, 어머니는 예빈시판관 이수상(李守常)의 딸 용인 이씨(龍仁 李氏)이다.
[활동 사항]
윤사석은 9형제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났다. 성종 대에 관직에 진출하여 사헌부장령 등을 거쳐 벼슬이 사헌부집의에 이르렀다. 연산군 즉위 후 거듭된 사화(史禍)로 대신들이 희생되고 정국이 혼란하자 가족과 함께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옥화리로 내려와 만경정(萬景亭)을 짓고 은거하였다. 윤사석은 자손들에게 과거 공부를 그만둘 것을 당부하는 유언을 남기고 사망하였다.
[묘소]
윤사석의 묘소는 대전광역시 서구 가장동에 있다.
[상훈과 추모]
1717년(숙종 42) 지역 유림과 후손들이 옥화리에 옥화서원(玉華書院)을 건립하여 윤사석을 배향하였으나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된 뒤 1989년에 복원되었고, 1771년(영조 47) 경상북도 예천군 지보면에 죽고서원(竹皐書院)이 건립되어 윤사석을 배향하였으나 역시 흥선대원군의 서원철폐령으로 훼철되었다가 2008년에 복원되었다. 윤사석이 건립한 만경정은 현재 옥화리에 복원되어 있고, 만경정 앞에 사당인 경모사(敬慕祠)와 유허비, 추모비가 세워져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