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406 |
---|---|
한자 | 崔天健 |
영어공식명칭 | Choe Cheongeon |
이칭/별칭 | 여이(汝以),분음(汾陰)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무 관인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주희 |
출생 시기/일시 | 1568년 - 최천건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616년 - 최천건 온양으로 유배 |
몰년 시기/일시 | 1617년 8월 1일 - 최천건 사망 |
유배|이배지 | 최천건 유배지 - 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 |
묘소|단소 | 최천건 묘소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전주 |
대표 관직 | 이조판서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문신.
[가계]
최천건(崔天健)[1568~1617]의 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여이(汝以), 호는 분음(汾陰)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최기(崔沂)이고, 할아버지는 최명필(崔命弼)이다. 아버지는 형조참의 최희(崔禧)이고, 어머니는 김선(金銑)의 딸 풍산 김씨(豐山 金氏)이다. 형은 최천윤(崔天胤)·최천후(崔天後)이고, 아들은 최노첨(崔魯詹)이다.
[활동 사항]
최천건은 1568년(선조 1)에 태어나 1588년 진사시와 알성시 문과에 급제하였다. 거산찰방을 거쳐 가주서·병조좌랑·예조좌랑·세자시강원문학·사간원헌납 등을 역임하였고, 1594년에는 동지사의 서장관으로 명나라에 다녀왔다. 1598년 도승지에 제수되었고, 나이가 어려 직에 맞지 않는다는 비판이 있었으나 선조가 합당한 재능을 지녔다고 변호하여 유임되었다.
최천건은 1601년 외직으로 나가 해주목사로 부임하였고, 이후 동지춘추관사가 되어 임진왜란 때 소실된 실록의 복원 및 중간(重刊)에 참여한 뒤 사간원대사간·형조판서·이조판서를 역임하였다. 1608년(광해군 즉위년) 정인홍(鄭仁弘)의 모함으로 삭직되었고, 1616년에는 김제남(金悌南)의 일파라 하여 온양(溫陽)[현 충청남도 아산시 읍내동]으로 귀양을 갔다가 1617년 8월 1일 유배지에서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최천건의 저술로는 문집인 『분음선생유고(汾陰先生遺稿)』 1책이 전한다.
[묘소]
최천건의 묘소는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