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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송읍 공북리 의령 남씨 집성촌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3336
한자 五松邑 拱北里 宜寧 南氏 集姓村
분야 성씨·인물/성씨·세거지
유형 지명/자연 지명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공북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임형수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전구간 오송읍 공북리 의령 남씨 집성촌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해당 지역 소재지 오송읍 공북리 의령 남씨 집성촌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공북리지도보기
성격 집성촌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오송읍 공북리에 있는 의령 남씨 직제학공파 감찰공계의 집성촌.

[개설]

공북리는 원래 유씨(柳氏)가 먼저 터전을 마련하고 살았는데, 의령 남씨(宜寧 南氏) 15세 남숙(南璹)[1633~1713]이 1680년 무렵 부인 서산 유씨가 살던 곳으로 이주하면서 남숙의 후손들이 세거하였다고 한다. 입향조 남숙은 7세 남간(南簡)을 파조로 하는 직제학공파, 다시 남숙의 큰아들 8세 남준(南俊)을 파조로 하는 감찰공계에 속한다.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공북리, 금곡리, 부곡리, 원봉리를 병합하여 공북리로 명명되었다. 원공북, 통미, 중말, 새터, 대비의 5개 마을로 구성되어 있다. 원공북은 가장 동쪽에 있으며, 원래 이름은 공북리였다. 순우리말로는 뒷절[뒷결]말이라 부르는데 마을 뒤에 절이 있어 붙은 이름이라고 한다. 공북은 뒷절을 한자로 옮기는 과정에서 ‘뒤’는 ‘북(北)’으로 훈차하고, ‘절’은 ‘사(寺)’ 대신 ‘공(拱)’으로 훈음차한 결과이다. 통미는 원공북 서쪽에 있고 본래 금곡리에 속하였던 마을이며, 통미[통(桶)+뫼]라는 뒷산 이름에서 명칭이 유래하였다. 중말은 통미 서쪽에 있고 본래 부곡리에 속하던 마을인데 병합 이후 공북리 중앙에 위치하여 붙은 이름이다. 새터는 중말 서쪽에 있고 본래 원봉리에 속하던 마을이다. 100여 년 전에 마을이 새로 조성되면서 붙은 이름이다. 대비는 새터 서쪽에 있는 마을이며, 이름의 유래는 알려지지 않았다.

[자연환경]

공북리는 북쪽이 동림산에서 뻗어 내린 산으로 막혀 마을은 주로 남향의 골짜기에 형성되었다. 마을 앞에는 동서로 길게 형성된 들판이 있고, 들판 남쪽은 역시 낮은 산으로 막혀 있다.

[현황]

의령 남씨 집성촌인 공북리는 원공북이 의령 남씨의 집성촌으로 의령 남씨가 주민의 다수를 차지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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