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228 |
---|---|
한자 | 大木匠 |
영어공식명칭 | Traditional Wooden Architecture |
이칭/별칭 | 도편수 |
분야 | 생활·민속/생활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최유림 |
[정의]
충청북도 청주 지역에서 전통 목조건물의 전체 건축 과정을 책임지는 목수.
[개설]
대목장 은 궁궐·사찰·군영 시설 등을 짓는 작업을 총괄하는 장인이며, 문짝·난간 등 소규모 목공 일을 맡아 하는 소목장과 구분하여 붙인 명칭이다. 대목장은 도편수(都邊手)라 부르기도 하였다. 나무를 재료로 하여 집 짓는 일에서 재목을 마름질하고 다듬는 기술 설계는 물론이고 공사의 감리까지 겸하며, 와장(瓦匠)·석장(石匠)·미장이·단청장·드잡이공 등과 힘을 합하여 집의 완성까지 모두 책임지는 목수이다.
대목장 에 관련한 옛 기록을 보면, 통일 신라의 도시 행정을 관장하는 전읍서(典邑署) 안에 목척(木尺)[목수]이 70인이라 하였으며, 고려 시대 공작·세공을 맡은 도교서(都校署)와 중상서(中尙署)에 배속되어 벼슬을 받았다고 한다. 조선 시대에는 60인의 목장(木匠)을 선공감(繕工監)에 두었고, 세종[재위 1418~1450] 때 남대문을 개축한 기록에 의하면 대목이 정5품이었다. 18세기 이후 편수(邊手)라는 칭호를 사용하기 시작하였고, 편수의 최고 책임자를 도편수라고 하였다.
오늘날에는 사찰이나 서원, 향교, 전통 한옥 등을 짓는 데에서 대목장 기술이 전수되어 오고 있다. 대목장 기술의 전승은 기문(技門)이라 하여 기술로서 가문 또는 문파가 만들어지는 것인데, 대목장은 기문에서 가장(家長)과 같은 역할을 한다.
[현황]
충청북도 충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던 대목장으로는 먼저 신재언을 들 수 있다. 신재언이 전승하던 대목장은 2011년 4월 29일 충청북도 무형문화재 제23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북도 무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북도 무형유산으로 명칭이 바뀌었다.
신재언이 사망하면서 1975년부터 신재언 대목장을 따라 목수의 일을 시작하였던 이연훈이 대목장의 제2대 기능보유자로 지정되었다. 이연훈은 청주를 중심으로 활동하면서 문화재 보수뿐만 아니라 한옥 건축에도 뛰어난 솜씨를 발휘하여, 제천 덕주사(德周寺) 요사채, 청주 복천암(福泉庵) 대웅전 신축을 비롯하여 보은향교(報恩鄕校)[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보은 회인향교(報恩 懷仁鄕校)[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옥천 옥주사마소(沃川 沃州司馬所)[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청주 동헌 등 충청북도의 주요 전통 문화재 건축 공사에 참여하고, 세종대왕이 눈병 치료를 위하여 머물렀다고 하는 초정행궁(椒井行宮)의 2020년 복원 사업에도 참여하면서 지역의 특성과 전통성을 유지하고 있다. 특히, 목조 건축에서 못을 사용하지 않고 나무를 깎아 홈을 내고 맞춰 조립하는 ‘이음’과 ‘맞춤’을 핵심으로 하여 ‘배흘림’ 기법을 통한 곡선미를 연출하고자 노력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