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188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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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 崔鳴吉 墓所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능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 253-3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민식 |
피장자 생년 시기/일시 | 1586년 - 최명길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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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장자 몰년 시기/일시 | 1647년 - 최명길 사망 |
조성 시기/일시 | 1647년 - 청주 최명길 묘소 조성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12월 31일 - 청주 최명길 묘소 충청북도 기념물 제68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청주 최명길 묘소 충청북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청주 최명길 묘소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 253-3 |
성격 | 능묘 |
관련 인물 | 최명길|인동 장씨|양천 허씨 |
봉분 크기/묘역 면적 | 1,600㎡ |
소유자 | 전주 최씨 종중 |
관리자 | 전주 최씨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북도 기념물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에 있는 조선 후기 문신 최명길의 묘소.
[개설]
최명길(崔鳴吉)[1586~1647]은 본관이 전주(全州), 자는 자겸(子謙), 호는 지천(遲川)·창랑(滄浪), 시호는 문충(文忠)이다. 1605년(선조 38) 생원시와 진사시에 입격하고, 증광문과에 급제하였다. 1623년 인조반정의 공으로 정사공신(靖社功臣) 1등에 책록되고 완성부원군(完城府院君)에 봉하여졌다. 정묘호란과 병자호란 때 강화와 주화를 주장하였고, 1642년 영의정에 올랐다. 뛰어난 학문적 성취를 이루었으며 새로운 문물의 수용에 대하여 관용적이었다. 문집으로 『지천집』과 『지천주차(遲川奏箚)』가 전한다. 청주 최명길 묘소(淸州 崔鳴吉 墓所)에는 최명길과 두 부인 인동 장씨와 양천 허씨의 무덤 3기의 봉분이 있고 남구만(南九萬)이 쓴 묘표와 상석, 향로석이 있으며 계체석 앞쪽으로 망주석과 문인석 한 쌍을 세웠다. 1984년 12월 31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6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북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위치]
청주 최명길 묘소는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대율리 253-3에 있다.
[변천]
최명길은 1647년 5월 17일 서울에서 사망하였고, 8월 청주 대율리로 옮겨 장사를 지냈다. 두 부인은 봉분을 달리 하여 합장하였다. 묘표와 신도비는 1702년(숙종 28) 세웠다.
[형태]
청주 최명길 묘소는 3기의 봉분이 삼각형으로 배치되었다. 뒷쪽이 최명길의 묘소로 원형 호석을 두룬 원형분이다. 앞쪽 2기의 봉분은 첫 부인 인동 장씨와 둘째 부인 양천 허씨의 무덤이다. 세 무덤 가운데에 묘표를 세우고 상석과 향로석을 두었다. 상석을 가로질러 계체석을 놓고 앞쪽에는 망주석과 문인석 한 쌍을 세웠다. 묘표는 높이 134㎝, 너비 54㎝, 두께 15㎝ 크기이다. 면적은 1,600㎡이다.
[금석문]
청주 최명길 묘소 묘표 앞면은 ‘조선상국증시문충지천최공명길지묘(朝鮮相國贈諡文忠遲川崔公鳴吉之墓)’라 하여 남구만이 썼다. 뒷면 음기는 1702년 최석정(崔錫鼎)이 짓고 최창대(崔昌大)가 써서 최석항(崔錫恒)이 세웠다. 음기는 최석정의 문집인 『명곡집(明谷集)』 권28에 실려 있다.
[현황]
청주 최명길 묘소는 신도비로부터 봉분에 이르는 넓은 공간을 묘역으로 조성하였고, 묘도(墓道)와 계단으로 연결하였다.
[의의와 평가]
청주 최명길 묘소는 손자 최석정과 함께 청주 전주 최씨의 대표적인 역사 인물 최명길의 발자취를 볼 수 있는 장소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