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182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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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 英祖 胎室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유적(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무성리 산6-1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민식 |
조성|건립 시기/일시 | 1695년 - 청주 영조 태실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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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축|증축 시기/일시 | 1729년 - 청주 영조 태실 중수 |
훼손 시기/일시 | 1928년 - 청주 영조 태실 훼손 |
이전 시기/일시 | 1982년 - 청주 영조 태실 이전 복원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12월 31일 - 청주 영조 태실 충청북도 기념물 제69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청주 영조 태실 충청북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청주 영조 태실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무성리 산6-1 |
원소재지 | 청주 영조 태실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무성리 산5 |
성격 | 태실 |
관련 인물 | 영조 |
면적 | 1,600㎡ |
소유자 | 청주시 |
관리자 | 청주시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북도 기념물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무성리에 있는 조선 영조의 태실.
[개설]
청주 영조 태실(淸州 英祖 胎室)은 조선 제21대 왕 영조의 태실이다. 1694년(숙종 20) 숙빈 최씨에게 태어나 1695년 1월 28일 태를 안치하였고, 왕위에 오른 뒤인 1729년(영조 5) 태실을 보수하였다. 태실의 보수 기록인 『영조태실석난간조배의궤(英祖胎室石欄干造排儀軌)』가 보물로 지정되었고, 세계기록유산으로 등재되었다. 1928년 크게 훼손되어 태지(胎誌)와 태항아리는 창경궁으로 옮겼다. 1984년 12월 31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69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북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건립 경위]
청주 영조 태실은 1694년 9월 13일 숙종과 숙빈 최씨 사이에서 연잉군(延仍君)이 태어나면서 1695년 1월 28일 만들어졌다. 왕자의 태실은 즉위 후 곧바로 개보수를 하는데, 영조는 즉위 5년인 1729년 10월 14일 새로 조성하였다.
[위치]
청주 영조 태실은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무성리 산6-1에 있다. 산 정상부인 무성리 산5에 있었으나, 민묘를 만들면서 훼손되어 1982년 약간 아래쪽인 산6-1로 옮겨 복원하였다.
[형태]
청주 영조 태실은 8각형 바닥돌을 깔고 중앙에 2단 네모꼴 하대석을 놓고 위에 계란 모양의 중동석(中童石)을 놓았다. 덮개돌은 없다. 바깥 난간은 8매의 장대석을 8각으로 놓고 각 모서리에 연잎을 조각한 동자주를 세우고 돌 난간으로 마무리하였다. 팔각원당형이다. 태실 앞에는 2기의 태실비가 있다. 귀부 위에 이수를 올린 태실비와 태실 뒤쪽에 아기씨 태실비가 있다. 귀부형 태실비는 앞면에 ‘주상전하태실(主上殿下胎室)’이라 쓰여 있고, 뒷면에 ‘옹정칠년시월십사일건(雍正七年十月十四日建)’이라 쓰여 있다. 아기씨 태실비는 앞면에 ‘강희삼십삼년구월십삼일인시생(康熙三十三年九月十三日寅時生) 왕자아기씨태실(王子阿只氏胎室)’이라 쓰여 있고 뒷면에 ‘강희삼십사년정월이십팔일립(康熙三十四年正月二十八日立)’이라 쓰여 있다.
[현황]
청주 영조 태실은 복원하면서 다수의 석재를 갖추지 못하였는데, 시굴 조사 과정에서 석재의 상당 부분을 되찾았다. 태실을 두고 앞뒤로 태실비 2기가 있다.
[의의와 평가]
청주 영조 태실은 조선왕조의 태실 운영과 관련된 귀중한 자료이다. 왕자 아기씨 태실비와 즉위 후 태실비가 함께 남아 있어 정확한 건립 시기를 알 수 있다. 더불어 『영조태실석난간조배의궤』가 남아 있어 보수 과정을 정확히 이해할 수 있다. 하지만 훼손 후 이전하면서 온전하게 복원하지 못하였으니 시굴 조사를 통하여 드러난 석재를 바탕으로 정밀 조사 후 다시 복원하는 방안이 마련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