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18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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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 安定羅氏 三世忠孝門 |
분야 | 종교/유교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비중리 110-1 |
시대 | 조선/조선 전기 |
집필자 | 강민식 |
건립 시기/일시 | 1638년 - 나사종 충신문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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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립 시기/일시 | 1717년 - 나운걸 삼부자 효자 정려 건립 |
문화재 지정 일시 | 1984년 12월 31일 - 청주 안정라씨 삼세충효문 충청북도 기념물 제40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청주 안정라씨 삼세충효문 충청북도 기념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청주 안정라씨 삼세충효문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비중리 110-1 |
성격 | 정려 |
정면 칸수 | 1칸 |
측면 칸수 | 1칸 |
소유자 | 안정 나씨 종중 |
관리자 | 안정 나씨 종중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북도 기념물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비중리에 있는 조선 후기 안정 나씨 충효 정려.
[개설]
안정 나씨(安定 羅氏)가 세거하는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비중리에 있는 퇴수헌(退修軒) 나사종(羅嗣宗)[1440~1491]의 충절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충신문과 아들 나운걸(羅云傑)[1456~1493]과 손자 나빈(羅濱)[1473~1495], 나린(羅潾)[1475~1495] 세 부자의 효행을 기리기 위하여 세운 삼효문이다. 나사종은 1491년(성종 22) 여진족을 막다가 전사하였고, 나운걸과 나빈 형제는 나사종의 원수를 갚지 못하자 삼년상을 마치는 날 함께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 1638년(인조 16) 나사종의 충신 정려가 내려지고, 1717년(숙종 43) 나운걸 세 부자의 삼효 정려와 나사종의 증직(贈職)과 충정(忠貞) 시호가 내려졌다. 나사종은 본관이 안정(安定), 자는 광원(光遠), 호는 퇴수헌이다. 1486년(성종 17) 경흥부사로 부임하였다가 여진족 침입으로 전사하였다. 청주 안정라씨 삼세충효문은 1717년 병조판서에 추증하고 시호를 내렸다. 나운걸은 사후 호조판서에 추증되었다. 청주 안정라씨 삼세충효문은 1984년 12월 31일 충청북도 기념물 제40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북도 기념물로 변경되었다.
[위치]
청주 안정라씨 삼세충효문은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비중리 110-1에 있다.
[변천]
1491년 여진족을 막다 순절한 나사종의 충신문을 1638년 세웠고, 나사종의 원수를 갚지 못하여 자결한 아들과 손자 세 부자의 효자 정려는 1717년 세웠다. 충신문과 삼효문이 비중리 마을 입구에 있었으며, 1978년 예산을 지원받아 홍양사(鴻陽祠)를 건립하여 사역 내에서 관리하고 있다.
[형태]
충신문과 삼효문은 홍양사 권역 내에 나란히 있다. 충신문은 사방 한 칸의 팔작지붕 기와집으로 안쪽에 나사종의 충신 편액을 걸었다. 삼효문은 각 1칸의 맞배지붕으로 나운걸과 나빈, 나린 형제의 효자 편액 2매을 걸었다.
[현황]
‘경의문(景義門)’이라 편액된 삼문을 들어서면 홍양사 앞뜰에 홍양사묘정비, 안정라씨 삼세충효비가 있고, 남쪽에 모충당(慕忠堂)이 있다. 삼도에 놓인 계단을 오르면 ‘충의문(忠義門)’이라 편액된 중문이 있고, 안쪽에 ‘홍양사’라 편액된 사당이 있다. 홍양사는 청주시 향토유적으로 지정되어 관리되고 있다.
[의의와 평가]
청주 안정라씨 삼세충효문은 조선 시대 충과 효행 사례로 가치가 있으며, 정려의 원형도 온전하다. 더불어 청주에 세거하는 안정 나씨를 상징하는 유산으로 의미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