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1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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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淸州 申鑅浩 古家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유적/건물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인차3길 9-8[인차리 148-2]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강민식 |
건립 시기/일시 | 1881년 - 청주 신형호 고가 건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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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화재 지정 일시 | 1985년 12월 28일 - 청주 신형호 고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8호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1년 11월 19일 - 청주 신형호 고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 지정 |
특기 사항 시기/일시 | 2024년 5월 17일 - 청주 신형호 고가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변경 지정 |
현 소재지 | 청주 신형호 고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인차3길 9-8[인차리 148-2] |
성격 | 전통 가옥 |
양식 | 홑처마 팔작지붕 |
정면 칸수 | 3칸 |
측면 칸수 | 2칸 |
소유자 | 신기호 |
관리자 | 신기호 |
문화재 지정 번호 |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인차리에 있는 조선 후기 살림집.
[개설]
청주 신형호 고가(淸州 申鑅浩 古家)는 독립운동가 신형호(申鑅浩)[1902~1947]의 살림집이었다. 안채 상량문에 갑자(甲子), 혹은 갑오(甲午)라는 간지가 보이나 확실하지 않고, 1881년(고종 19) 지었다고 한다. 신형호는 본관이 고령(高靈)으로 인차리 일대에 세거하는 소안공파(昭安公派)로 나뉘는데, 신규식(申圭植)도 소안공의 후손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신응휴(申應休)[1839~1880], 할아버지는 신형우(申馨雨)[1859~1913], 아버지는 신정식(申正植)[1883~1918]이다. 신정식과 연안 이씨 사이에서 큰아들로 태어났다. 고택의 이름을 ‘청주 신형호 고가’로 한 것은 신형호가 독립 유공자로 1990년 애족장을 받고 대전현충원에 모셔진 까닭으로 보인다. 1985년 12월 28일 충청북도 유형문화재 제148호로 지정되었고 2021년 11월 19일 「문화재보호법시행령」 고시에 따라 지정 번호가 삭제되어 충청북도 유형문화재로 변경되었다. 2024년 5월 17일 국가유산청의 「국가유산기본법」 시행에 따라 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으로 바뀌었다.
[위치]
청주 신형호 고가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가덕면 인차3길 9-8[인차리 148-2]에 있다. 청주 신형호 고가는 신숙주 초상이 보관된 구봉영당에서 약 300m 정도 떨어져 있다. 가덕면 소재지에서 미원으로 향하는 지방도 제509호를 따라가다 마을로 들어가 왼쪽 골목으로 들어서면 바로 나온다. 옛 대지에는 안채를 비롯하여 별도의 필지에 2채의 가옥이 있어 원래 동쪽을 향하던 대지를 막고 있다.
[변천]
청주 신형호 고가는 1913년 토지 조사 당시 신정식의 소유로, 사후 큰아들 신형호가 승계하였다. 현재 남아 있는 안채를 비롯하여 사랑채, 곳간채, 뜰아래채, 마부채 등이 있었다고 하는데, 신정식이 의병에게 숙식을 제공하였다는 이유로 일본군이 방화하여 안채만 남았다고 전한다. 오늘날 148-1, 148-2, 148-3, 148-4, 148-5는 1913년 당시 가덕면 인차리 148 단일 필지로 안채를 비롯하여 동쪽으로 도로변에 이르기까지 하나의 대지였다.
[형태]
청주 신형호 고가 안채는 ㄱ자형으로 정면 3칸, 측면 2칸 크기의 홑처마 팔작지붕이다. 2칸 대청을 가운데 두고 오른쪽에 2칸 안방과 1칸 툇마루, 3칸의 부엌을 두었다. 왼쪽으로는 앞퇴를 둔 1칸 건넌방과 1칸 툇마루를 두었다. 남쪽으로 대문을 두고 사방에 담장을 둘렀다.
[의의와 평가]
청주 신형호 고가는 안채만 남아 있어 전체적인 배치와 형식을 알 수 없으나 상당한 규모의 양반 가옥으로 추정한다. 현재 남아 있는 안채를 통하여 청주 지역의 공간 구성을 이해할 수 있다. 또한 한말 의병과의 관련성이나 신형호의 독립운동 자취가 남아 있는 역사 현장으로서 가치가 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