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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2917
한자 文東里
영어공식명칭 Mundong-ri
분야 지리/인문 지리
유형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문동리지도보기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박상현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개설 시기/일시 1914년 - 충청북도 청주군 남이면 문동리 개설
변천 시기/일시 1946년 6월 1일 - 충청북도 청주군 남이면 문동리에서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문동리로 개편
변천 시기/일시 2014년 7월 1일 -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문동리에서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문동리로 개편
성격 법정리
면적 3.27㎢
가구수 134세대
인구[남/여] 278명[남 146명|여 132명]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1914년 행정 구역 개편 당시 문동리(文東里)라 칭하였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청주군 남이면 지역이었으며,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선죽리, 동암, 중리를 병합하여 충청북도 청주군 남이면 문동리로 개설되었다. 1946년 6월 1일 청주읍청주부로 승격되는 동시에 청주군의 나머지 지역이 청원군으로 변경되면서 충청북도 청원군 남이면 문동리로 개편되었다. 2014년 7월 1일 청원군과 청주시가 통합되면서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문동리가 되었다. 문동리는 부첫대, 용수말, 안말, 양지말이 문동1구로, 동암, 검배가 문동2구로 분구되었다.

[자연환경]

문동리국사봉(國師峰) 남서쪽의 저산성 구릉지, 봉무산(鳳舞山) 동쪽의 구릉지에 자리하고 있으며, 국사봉봉무산 사이에는 계단식 경작지가 있다. 문동리 서쪽에는 용수말방죽이 있다.

[현황]

2023년 7월 현재 문동리의 면적은 3.27㎢이고, 인구는 134세대, 278명[남자 146명, 여자 132명]이다. 문동리남이면의 동남부 끝에 있으며, 동쪽으로 남일면 화당리, 서쪽으로 척산리, 남쪽으로 문의면 등동리, 북쪽으로 남일면 가중리와 접하고 있다.

문동리는 동암(東岩), 검배[玄岩], 부첫대, 안말[扇竹], 양지말[陽地], 용수말 등의 자연 마을로 이루어져 있다. 동암은 문동리에서 으뜸이 되는 마을로 ‘동쪽에 있는 큰 바위’에서 이름이 유래되었다. 동암이라고 부르기 이전에 이천 서씨(利川 徐氏)가 많이 살아 서점이라 하였다고 한다. 검배는 문동2리 끝부분에 있는 마을로 검은 바위가 많아 ‘검배’라 하였다. 검배는 1984년 용정-화당 간 도로 신설로 인하여 남아 있는 가구가 적다. 부첫대는 양지말 북서쪽에 있는 마을로 실제 돌부처가 있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부처’와 ‘대’ 사이에 ‘ㅅ’이 개재된 어형이다. ‘대’의 어원은 분명하지 않으나 한자 대(垈) 또는 대(臺)일 것으로 추정된다. 안말은 ‘안쪽에 들어와 있는 마을’이라는 뜻이다. 양지말은 ‘양지 쪽에 자리한 마을’이라는 뜻이다. 용수말은 부첫대 남쪽에 있는 마을로 용소(龍沼)의 모음 변화형이다. ‘용소’는 ‘용이 승천한 소’, ‘용이 숨어 있는 소’, ‘용처럼 긴 소’ 등의 뜻이고 실제로 샘이 있어 용수말이 된 것이라고 한다.

문동리 주변은 저산성 구릉이 마을을 둘러싸고 있고, 척산화당로 주변과 골짜기 일부에 마을이 소규모로 형성되어 있다. 문동리의 문화유산으로 동화사(東華寺) 대웅전에 10세기 초에 제작된 청주 동화사 석조비로자나불좌상[충청북도 유형문화유산]이 있다. 문동리 중앙에는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당진영덕고속도로와 고속도로 진행 방향과 동일하게 척산화당로가 관통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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