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2822 |
---|---|
한자 | 歸來里 |
영어공식명칭 | Gwirae-ri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지명/행정 지명과 마을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귀래리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박주영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에 속하는 법정리.
[명칭 유래]
귀래리(歸來里)는 고드미로도 불리었는데 ‘미’는 뫼[山]를 뜻하지만 ‘고드’의 유래는 분명하지 않다. 지역에 따라서 고드내와 직천(直川)이, 고드너미재와 직치(直峙)가, 고든골이 직동(直洞)과 함께 사용되는 예가 있어 ‘고드미’도 ‘곧은 산[直山]’이 있는 마을로 해석할 수 있다. 다른 설로는 조선 광해군 때 문신 신요(申橈)[1550~?]가 상소하여 귀양살이를 하다가 풀리어 돌아와 은거하는데, 인조반정 이후 여러 번 관직을 제수하였으나 사양하였다. 이후 ‘곧은’ 선비가 있는 곳이라 하여 고디미라 불러 왔다고 한다. 이러한 설에 따르면, 성정이 곧은 선비가 돌아와[歸來] 은거한 마을이라는 점에서 ‘귀래리’와 ‘고드미’가 사용된 것으로 추정할 수 있으나 정확한 유래는 전하지 않는다.
[형성 및 변천]
본래 청주군 산내이상면 지역으로 『여지도서(輿地圖書)』[1760년 이후]에는 귀래동리(歸來洞里)로 기록되어 있다. 『여지도서』 기록에 따르면 귀래동리는 청주 관문에서 동쪽으로 40리[약 15.71㎞] 떨어져 있으며, 호수는 12호이고 남자가 18명, 여자가 12명이었다고 전한다. 1910년 전에는 귀래리, 도암리, 삼곡리, 동림리, 문박리로 분리되어 있었으나, 1914년 행정 구역 통폐합에 따라 귀래리, 동림리, 삼곡리, 도암리, 문박리 일부를 통합하여 충청북도 청주군 낭성면 귀래리로 개설되었다. 1946년 6월 1일 청주읍이 청주부로 승격되는 동시에 청주군의 나머지 지역이 청원군으로 변경되면서 충청북도 청원군 낭성면 귀래리로 개편되었다. 2014년 7월 1일 청원군과 청주시가 통합되면서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귀래리가 되었다.
[자연환경]
귀래리는 북서에서 남동 방향으로 산지가 뻗어 있으며, 감천에 합류하는 소하천이 남동 방향으로 흘러 소하천 주위와 구릉 사이로 좁은 면적의 들이 발달하였다. 수원으로는 무죽바위방죽이 있다.
[현황]
2023년 9월 현재 귀래리의 면적은 3.05㎢이며, 인구는 53세대, 93명[남자 52명, 여자 41명]이다. 귀래리는 낭성면의 북동쪽에 있으며, 동쪽으로 미원면 내산리 및 미원리, 서쪽으로 문박리, 호정리, 남쪽으로 관정리, 북쪽으로 미원면 가양리 및 수산리와 접하고 있다.
귀래리의 자연 마을로는 동녘골[東林], 시골[三谷], 고드미 등이 있다. 고드미는 다시 큰고드미, 작은고드미로 나뉜다. 동녘골은 고드미 동쪽에 있는 마을로 1910년부터 쓰인 이름인데 동쪽에 있는 숲을 뜻한다. 시골은 고드미 동쪽에 있는 마을이며, 동녘골, 고드미, 오리골 3개의 골짜기가 합쳐진 곳이다. 귀래리의 기타 지명으로는 오리골, 사당골, 쇠죽골, 밤실고개가 있다. 밤실고개는 고디미에서 미원면 내산2리 ‘밤실’로 갈 때 넘던 고개이다.
귀래리는 1997년부터 오리 농법 벼농사를 비롯한 친환경 농사를 도입하여 녹색 농촌 체험 마을과 정보화 마을로 선정되었다. 2008년 귀래리복지회관을 신축하여 2층은 정보화 마을 교육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귀래리는 고령 신씨(高靈 申氏)의 집성촌으로 독립운동가 신채호(申采浩)[1880~1936]의 고향이기도 하다. 청주 신채호사당 및 묘소[충청북도 기념물]가 있으며, 근처에 단재신채호기념사업회에서 2003년 2월 21일 기념관을 건립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