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172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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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驛院 |
영어공식명칭 | Yeogwon |
이칭/별칭 | 역참 |
분야 | 지리/인문 지리 |
유형 |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조선/조선 전기,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박수민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에서 공문서의 전달, 관리의 왕래와 숙박, 공물 진상 등 관물 수송을 담당한 곳.
[개설]
우리나라의 역참제는 487년(소지왕 9) 3월 우역(郵驛)을 설치하여 관도(官道)를 설치한 것이 최초이다. 통일 신라 시대 이후 9주 5소경 등 지방 제도가 확립되며 중앙 관리의 지방 출장, 상인 및 여행자의 왕래가 많아짐에 따라 기능이 활발하여졌다. 고려 시대와 조선 시대로 이어지면서 더욱 체계화되었다. 역(驛)은 군사 및 교통의 요지에 설치되어 중앙 및 지방의 연락을 원활하게 하는 전달 기관이었다. 참(站)은 역과 같은 의미로 사용되다가 1597년(선조 30) 통신을 위주로 하는 파발을 두어 급한 전달을 수행하는 것을 임무로 하였다. 또한 원(院)은 전국 각 역에 둔 숙박 시설로, 공무 연락자에게 숙식 등의 편의를 제공하였다. 조선 전기에 제도적으로 발전하였으나 16세기 말부터 황폐하여져 조선 후기에는 일부만이 남아 주점 내지는 주막으로 변질되었다.
[연원]
청주 지역의 역은 율봉역(栗峰驛), 쌍수역(雙樹驛), 저산역(猪山驛) 등이 있었다. 그중 율봉역은 현재의 청주시 율량동에 있었던 역으로, 한양에서 경상도 성주에 이르는 간선에서 갈라진 죽산(竹山)-진천(鎭川)-청주[율봉역]-황간(黃澗)으로 이어지는 역도(驛道)에 해당한다. 또한 청주목 관하에 있었던 쌍수역, 저산역, 장명역[1895년 목천군[현 천안시]으로 이탈]뿐만 아니라 인근의 17개 역을 관할하였다고 한다.
1748년(영조 33)부터 1756년(영조 41) 발간된 『여지도서(輿地圖書)』에 의하면 율봉역이 상위 계층 역이고, 나머지 역들이 하위 계층 역임을 알 수 있다. 또한 『호서승람(湖西勝覽)』에 따르면 율봉역과 쌍수역은 중(中) 역이고, 저산역은 소(小) 역이었다고 한다. 쌍수역은 현재의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쌍수리에, 저산역은 현재 청주시 강내면, 남이면, 그리고 세종특별자치시 부강면의 경계에 있었다고 한다. 한편, 청주 지역에 있었던 원(院)은 율병원(栗餠院), 판교원(板橋院), 미원(米院), 작원(鵲院), 신원(薪院), 장원(場院), 정진원(情盡院), 인제원(仁濟院), 덕산원(德山院), 북원(北院), 금원(金院), 포원(蒲院), 조풍원(調風院), 장명원(長命院) 등이 있었다.
역원 의 상당수가 사설 주막으로 변질된 이후의 자료로는 1911년 발간된 『조선지지자료(朝鮮地誌資料)』가 있는데, 『조선지지자료』에는 청주 지역의 고역명(古驛命)으로 ‘율봉녁[栗峰驛]’만 명기되어 있고 이외에는 주막으로 기재되어 있다. 당시 주막의 개수는 사주면(四州面)에 13개, 낭성면(琅城面)에 12개, 미원면(米院面)에 14개, 가덕면(加德面)에 16개, 남일면(南一面)에 7개, 문의면(文義面)에 7개, 용흥면(龍興面)에 5개, 현도면(賢都面)에 10개, 강서면(江西面)에 14개, 강내면(江內面)에 14개, 강외면(江外面)에 5개, 옥산면(玉山面)에 12개, 오창면(梧倉面)에 5개, 북이면(北二面)에 18개, 북일면(北一面)에 4개 등 156개로 나타났으며, 그중 ‘쌀원[米院]’은 아예 원(院)의 이름이 지명으로 된 사례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