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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0936
한자
영어음역 bi
영어의미역 monument
이칭/별칭 비갈,석비
분야 문화·교육/문화·예술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집필자 차용걸

[정의]

사적(事蹟)을 기념하기위해 세우는 돌.

[개설]

비(碑)는 보통 비석 혹은 석비라고 하는데 우리나라에는 삼국시대부터 조선시대에 이르기 까지 석비가 그 숫자를 셀 수 없을 만큼 전국 곳곳에 많이 남아있다. 석비는 묘비와 탑비·능묘비 외에도 비문의 내용이 알려주는 역사적 사료로서의 금석문의 가치나 서체가 보여주는 서예사적 가치, 그리고 석비의 양식의 변천을 통해 미술사적 가치를 함께 보여주는 귀중한 자료이다.

석비는 세워진 장소, 용도, 명칭 및 내용에 따라 다양하게 분류되지만 대체로 순수비, 기공비, 신도비, 묘비, 능비 등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일반적으로 비는 형태에 따라 비와 갈로 나누는데, 비신의 윗부분이 4각인 것을 비(碑)라 하고 위쪽을 원형으로 둥글게 다듬은 것을 갈(碣)이라고 한다. 석비는 기본적으로 비를 받치는 대좌와 비문을 새기는 비신, 비신을 덮는 개석의 세 부분으로 이루어져있다.

우리나라에는 언제부터 석비가 세워지기 시작했는지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조선 말과 대한제국시기에 송덕비, 불망비, 선정비, 추모비 등의 비를 세우는 것이 유행처럼 되어서 여러 가지 폐단을 자아내기도 하였다. 이런 종류의 비는 국가와 관계없이 지방의 아전이나 향민에 의해 세워진 것이므로 이면에 숨은 향민의 애환을 알 수 있는 좋은 자료들이다. 청주지역에도 다양한 종류의 비가 전해지고 있다.

청주에 분포되어있는 비로는 조선시대의 경우 2품 이상의 관직을 지낸 자, 또는 공신, 석유(碩儒) 등의 경우에 왕명에 의해 세우는 신도비, 2품 이하 5품관까지 지낸 경우 세우는 묘비, 지방관의 공적을 기리기 위해 세운 선정비와 전장기적비(戰場紀蹟碑) 등의 기념비와 충효비, 척화비, 유허비 등의 기타비가 산재하고 있다.

[신도비]

신도비는 대개 묘의 입구인 동남쪽에 세우며, 청주에는 4기의 신도비가 남아있다. 현재 남아있는 신도비로는 고려 후기의 문신인 곽예(郭預)[1232~1286]의 신도비가 상당구 명암동에, 조선 후기의 문신인 김우항(金宇杭) 신도비가 상당구 산성동에, 조선 중기의 문신인 박숭원(朴崇元) 신도비가 흥덕구 수의동에, 임진왜란 때 동래부사로 순직한 천곡(泉谷) 송상현(宋象賢)[1551~1592] 신도비가 흥덕구 수의동에 있다.

[묘비]

현재 청주에 있는 묘비로는 상당구 명암동연담공의 묘비와 흥덕구 석곡동박민준(朴敏俊)[1676~1744] 묘비, 흥덕구 수의동송의섭(宋毅燮)의 묘비가 있다.

[선정비]

청주에는 지방의 관아 있었던 곳이어서 특히 선정비가 많다. 대표적인 것으로 중앙공원(中央公園) 내에 있는 조선시대 청주목사를 지낸 목사 서유민(徐有民) 선정비, 목사 김효성(金孝誠) 선정비, 목사 이경여(李敬輿) 선정비와 한말의 의병장 한봉수(韓鳳洙)[1883~1972] 송공비가 있다. 상당구 산성동에는 주로 충청도 병사를 지낸 관리들의 선정비가 남아있다.

병사 이삼(李參) 마애선정비, 병사 민지열(閔祉烈) 마애선정비, 병마우후 이의장(李義長) 마애선정비, 병마우후 신태희(申泰羲) 불망비 등이 그것이다. 그리고 우암산순환로 청주대학교 부근의 일명 비선거리에 8기의 선정비가 있고, 상당구 율량동에는 조선시대 율봉도찰방을 지낸 찰방 허직(許稷) 선정비가 있다.

[기념비]

기념비(記念碑)로는 중앙공원(中央公園) 내에 있는 것으로 임진왜란 때 활약했던, 조헌(趙憲)[1544~1592] 전장기적비, 박춘무(朴春茂)[1544~1611] 전장기적비, 영규대사(靈圭大師)[?~1592] 전장기적비 등 3기의 전장기적비(戰場紀跡碑)와 상당구 산성동구룡사지 사적비(九龍寺址事蹟碑), 상당구 수동표충사 사적비(表忠祠事蹟碑), 표충사 이건사실비(表忠祠移建事實碑), 상당구 용정동신항서원 묘정비(莘巷書院 廟廷碑), 상당구 지북동 청주경씨 사적비, 상당구 탑동 민노아(閔老雅, F.S. Miller)·부례선(富禮宣) 선교사기념비, 흥덕구 비하동 박춘무 삼대창의사적비(朴春茂三代倡義事跡碑), 청주의 대표적 씨족인 청주한씨(淸州韓氏) 시조제단비가 있다.

[그밖의 비]

기타 비로 상당구 방서동의 앞뜰인 용개뜰에 있는 한란유기비(韓蘭遺基碑)와 농수원인 용지를 기념하여 세운 용지기념비(龍池記念碑), 무농정 유허비(務農亭遺墟碑), 북문로의 청원군청 내에 율곡(栗谷) 이이(李珥)[1536~1584]가 청주목사를 떠날 때 소나무를 심은 사실을 기념하는 이이 수식송비(李珥手植松碑)가 있다.

용암동보살사에는 1683년 보살사를 크게 중수하면서 세운 중수비가 있으며, 상당구 지북동청주경씨 표산비(標山碑), 운천동의 산직말에서 발견된 현존 최고의 사적비인 운천동 신라 사적비(新羅事蹟碑) 등이 있다.

충효비로는 흥덕구 비하동박홍원(朴弘遠)[1606~?]선생 충효비(朴弘遠先生忠孝碑), 상당구 월오동밀양박씨(密陽朴氏) 5효비 및 천비(阡碑), 상당구 운동동양수척(楊水尺) 효자비(孝子碑), 흥덕구 서촌동 동촌마을의 평산신씨 충렬비가 있다.

[참고문헌]
[수정이력]
콘텐츠 수정이력
수정일 제목 내용
2013.03.12 [선정비] 인명 수정 <변경 전> 신태의(申泰義) <변경 후> 신태희(申泰羲)
이용자 의견
관** 디지털청주문화대전을 이용해 주셔서 감사합니다. 위 내용 중 "신태의"는 [청주읍지]를 근거로 하고 있습니다만, 올려주신 내용에 대한 확인 후 수정 여부를 결정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2012.07.31
박** 병마우후 신태의는 신태희가 맞는 것 같습니다.
비석의 한자의 판독이 필요하오며 제가 찍은 사진 (블로그 : 청암의 뜨락)은
의 의자가 아니라 베풀 희자로 판단되오니 확인 바람니다.
2012.07.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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