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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0799
한자 舊石器時代
영어음역 Guseokgi Sidae
영어의미역 Paleolithic Age
분야 역사/전통 시대
유형 개념 용어/개념 용어(일반)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선사/석기
집필자 이융조

[정의]

약 300만년 전부터 1만년 전까지의 시기로 인류의 발달과정을 도구제작 기술의 발달로 구분할 때 가장 이른 시기.

[개설]

구석기시대는 지질학적인 연구와 이 시기에 살았던 동·식물상의 연구를 배경으로, 각 시기마다 사용된 도구 즉, 석기를 중심으로 하여 전기·중기·후기 구석기시대로 나뉘어진다.

전기 구석기시대는 인류가 처음 연모를 사용한 때부터 약 12만 년 전의 마지막 간빙기가 시작되는 시기까지이다. 이 시대의 연모는 석기제작기술의 초보 단계에 있던 남쪽원숭사람(Australopithecus)의 무리가 찍개를 만들어 쓴 데서 비롯하여, 180만 년 전 쯤에 곧선사람(Homo erectus)이 출현하면서 좀 더 발달된 연모인 주먹도끼를 만들어 쓰게 되었다.

중기 구석기시대(약 12만년 전~3만 5천년 전)에는 슬기사람(Homo sapiens)이 나타나면서 석기 제작방법이 혁신되었다. 이 시기에는 연모의 가지 수가 더 많아지고 더욱 정교하게 만들어지는데, 주먹도끼·뚜르개·찍개·자르개·긁개·톱날·홈날·대패모양석기 등과 같은 훌륭한 연모들이 만들어진다.

후기 구석기시대(약 3만 5천년 전~1만 2천년 전)는 네안데르탈인사람들과의 생존경쟁에서 승리한 슬기슬기사람(Homo sapiens sapiens)문화로, 이들은 이전의 인류보다 지적으로나 문화적으로 수준이 훨씬 우수하여 새기개·돌날·좀돌날몸돌 등의 석기를 제작·사용하였으며, 예술을 더욱 사실적으로 표현하는 문화수준을 가지게 되었다.

[청주의 구석기 유적]

인류는 약 300만 년 전부터 연모를 사용한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이렇게 보면 인류가 살아 온 전체 역사의 거의 전부(99.9%)가 이 선사시대에 속한다.

위에도 언급했지만 구석기시대의 시대구분은 연모인 석기의 종류와 제작기술의 발달에 따라 나눈다. 이러한 시기구분에 의해 우리나라에서도 전기·중기·후기 구석기시대로 나누어 구석기시대를 연구한다.

청주지역의 경우 현재까지 발견된 전기 구석기시대의 유적은 아직까지 발견되지 않았고, 다만 중기구석기시대와 후기구석기시대에 해당되는 유적이 지표조사 및 발굴을 통해 확인되어 청주지역의 구석기시대 문화에 대한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대표적인 청주지역의 구석기 유적은 봉명동유적과 율량동유적이 있다.

봉명동 구석기 유적의 경우 2개의 문화층이 있었음이 확인되며 이러한 층위와 도구 제작수법으로 보아 중기 구석기시대(5만 년 전)에 청주 지역에 살았던 당시 사람들이 강변(무심천(無心川)-미호천(美湖川))에 있던 강자갈돌(석영-규질암)을 돌감으로 하여, 직접떼기 수법으로 석기제작을 했음이 확인된 중요한 유적이다.

율량동 유적의 경우 5개 층의 유물 출토층을 확인하였고, 그 중 문화층은 2개 층이고 나머지 3개 층은 유물포함층이다. 이 가운데 1문화층이 율량동유적의 중심 문화층으로 유적 전면에 걸쳐 확인되었다.

출토유물은 찍개·주먹대패·긁개·홈날 등의 잔손질된 석기와 망치·몸돌·격지·돌날격지 등의 유물이 발견되며 잔손질된 석기의 비율이 매우 낮고 버려지는 조각돌 종류가 가장 많은 수를 차지하는 것으로 나타난다.

이러한 사실은 이곳에서 석기 사용 보다는 석기제작 행위가 보다 활발하게 이루어졌음을 보여주는 것으로 생각된다. 유물상과 AMS연대측정 결과로 보아 중기 구석기시대 말 후기구석기 초기의 유적으로 평가된다.

이 두 유적과 함께 석소동 유적 등 몇몇의 유적이 지표조사를 통해 조사되고 유물이 수습되었다.

석회암 지대에 발달한 동굴유적으로는 청원 두루봉, 공주 마암리, 제천 점말, 단양 금굴, 구낭굴, 상시유적 등이 있으며, 이외에 한데 유적으로는 공주 석장리, 단양 수양개, 청원 샘골, 제천 창내·명오리 큰길가 유적 등이 있다.

[의의와 평가]

위의 유적들의 연구결과로 볼 때 중기구석기시대 약 50,000년 전부터 청주시역에서 사람이 살았으며 이 시기부터 다양한 도구를 제작하고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나갔던 것으로 생각된다.

문헌자료가 없는 선사시대 고고학 연구가 그렇듯이 구석기시대에 대한 연구도 유적지내에서 발굴된 유물에 많이 의존한다. 즉 유물의 분석을 통해 문화적 성격을 유추하고 결론을 내는데, 구석기 유적의 경우 가장 이른 시기에 해당되어 상대적으로 자료가 부족한 것이 현실이며 청주 지역의 구석기시대 문화 유적 또한 매우 미약한 편이나, 청주시를 둘러싼 청원군 지역에는 우리나라 5대문화권의 하나인 중원문화를 형성할 만큼 많은 유적들이 자리하고 있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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