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969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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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어공식명칭 | Bukbawee |
이칭/별칭 | 「종암」 |
분야 |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
유형 | 작품/설화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
시대 | 현대/현대 |
집필자 | 오세정 |
수록|간행 시기/일시 | 1982년 - 「북바위」 『전설지』에 수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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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1년 12월 31일 - 「북바위」 『청원군 전설지』에 재수록 |
수록|간행 시기/일시 | 2006년 11월 - 「북바위」 『청원군지』에 재수록 |
관련 지명 | 북바위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대신리 |
관련 지명 | 구녀산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우산리 |
채록지 | 대신리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대신리 |
성격 | 설화|지명 설화|암석 설화 |
주요 등장 인물 | 백규환|촌장 |
모티프 유형 | 재난을 예고하는 신물|마을 수호 암석 |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에서 북바위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북바위」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북쪽에 있는 북바위와 종암리 지명과 관련하여 전승되는 암석 유래담이자 지명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북바위」는 1982년 충청북도에서 간행한 『전설지』에 수록되어 있다. 2001년 12월 31일 청원문화원에서 간행한 『청원군 전설지』와 2006년 11월 청원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청원군지』 등에 재수록되었다. 「북바위」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대신리의 주민 배상수에게 채록하였으며, 채록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내용]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북쪽에 깎아지른 듯한 절벽이 있었다. 농부 백규환은 바위에 금줄을 매고 치성을 올리는 것을 위안과 즐거움으로 삼았다. 임진왜란(壬辰倭亂)이 발발하여 왜적이 북상할 무렵, 백규환은 여느 때처럼 북바위에서 산제를 올리고 있었다. 그런데 난데없이 바위가 울면서 변고가 일어나 적이 몰려오니 피난하라는 소리가 하늘에서 들려왔다. 백규환은 달려가서 촌장에게 사실을 알렸으나 촌장과 마을 사람들이 백규환의 말을 곧이듣지 않았다. 수상히 여긴 촌장이 바위를 찾아가 보니 바위에서 군마의 발굽 소리와 함께 북소리가 들렸다.
촌장은 황급히 마을로 가서 사람들을 구녀산(九女山)으로 피신시켰다. 왜적이 마을을 약탈하고 갔으나 인명 피해는 전혀 없었다. 이후 마을 사람들은 정성을 다하여 산제를 올렸다. 바위에서 북 치는 소리가 들렸다고 하여서 ‘북바위‘라고 불린 것이 나중에 마을 이름이 되었다. 바로 종암리(鐘岩里)이다. 일설에는 임진왜란 당시 왜병이 마을에 침범하였는데, 마침 산을 넘어와 바위 있는 곳에 이르자 바위에서 요란한 북소리가 났다고 한다. 놀란 왜병이 조선의 술자들이 계교를 꾸민 것으로 알고 도망쳤다고 한다.
[모티프 분석]
「북바위」의 주요 모티프는 ‘마을과 사람들을 수호하는 신물’, ‘재난을 예고하는 신물’이라고 할 수 있다. 임진왜란이라는 국가적 재난 속에서 마을 사람들이 한 명도 피해가 없었던 것은 마을의 수호 신물인 북바위 때문이며, 그래서 마을의 이름도 바위 이름을 따랐다는 이야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