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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사봉」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3957
한자 國師峯
영어공식명칭 Guksabong
분야 구비 전승·언어·문학/구비 전승
유형 작품/설화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화당리
시대 현대/현대
집필자 오세정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수록|간행 시기/일시 1982년 - 「국사봉」 『전설지』에 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1년 12월 31일 - 「국사봉」 『청원군 전설지』에 재수록
수록|간행 시기/일시 2006년 11월 - 「국사봉」 『청원군지』에 재수록
관련 지명 국사봉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화당리지도보기
관련 지명 한란 묘소 및 신도비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가산리 산18지도보기
채록지 신송리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신송리지도보기
채록지 화당리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화당리지도보기
성격 설화|지명 설화
주요 등장 인물 한인구|청주 한씨 시조|송기후
모티프 유형 명산|명당

[정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화당리에서 국사봉의 유래와 관련하여 전하여 내려오는 이야기.

[개설]

「국사봉」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화당리에 있는 산인 국사봉(國師峯, 國士峯)의 지명 유래담이다.

[채록/수집 상황]

「국사봉」은 1982년 충청북도에서 간행한 『전설지』에 수록되어 있다. 2001년 12월 31일 청원문화원에서 간행한 『청원군 전설지』와 2006년 11월 청원군지편찬위원회에서 간행한 『청원군지』 등에 재수록되었다.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신송리의 주민 박노태, 남일면 화당리의 주민 송영옥에게 채록한 것이다. 채록 시기는 명확하지 않다.

[내용]

일제 강점기 청원군 남일면[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의 초대 촌장인 한인구는 일제를 피하여 조선인들을 돕고자 애썼다. 일제가 공출하려고 모아 둔 쌀을 한인구가 몰래 국사봉으로 빼돌리다가 적발되었다. 일본 경찰과 한참을 싸우다가 붙잡힌 한인구는 “내 나라 내 땅에서 내가 농사를 지었는데도 나는 굶어야 하고 현해탄 건너 일본 사람들은 가만히 앉아서 배불리 먹을 이유가 어디 있느냐?”라고 당당히 반박하였다.

국사봉에는 청주 한씨(淸州 韓氏) 시조묘가 있는데, 한씨의 후손들이 벼슬길에 많이 나아갔다고 하여 한씨 시조묘가 있는 산을 ‘국사봉(國士峯)’이라고 칭하였다고 한다. 혹은 나라의 저명한 학자나 장상(將相)이 많이 배출되어 ‘국사봉(國師峯)’이라 칭하였다고도 한다. 일설에는 도학자로 이름 높았던 송기후(宋基厚)[1621~1674]가 국사봉에 은거하며 제자를 가르쳤는데, 거기에서 국가의 동량이 될 선비가 많이 배출되었다고 하여 ‘국사봉’이라 칭하였다고 한다.

「국사봉」은 지역에서 배출된 역사적 인물에 대한 자부심과 살고 있는 지역이 명당이라는 애향심이 잘 드러나는 전설이다. 이야기의 배경이 되는 국사봉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일대에 있으며, 청주 한씨 시조묘는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남일면 가산리에 있다. 청주 한씨 시조이자 고려 개국 공신인 한란(韓蘭)[853~916]의 묘와 신도비는 1987년 3월 31일 충청북도 기념물로 지정되었다.

[모티프 분석]

「국사봉」의 주요 모티프는 명산, 명당이라고 할 수 있다. 청주 한씨의 시조 혹은 송기후가 자리를 잡아 해당 지역에서 선비와 스승이 많이 배출되어 ‘국사봉’이라는 명칭을 얻게 되었다고 전한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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