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470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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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張星伊 |
영어공식명칭 | Jang Seongi |
이칭/별칭 | 장성이(張成伊)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한애라 |
출생 시기/일시 | 1896년 7월 21일 - 장성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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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일 - 장성이 북이면 만세 시위 주도 |
몰년 시기/일시 | 1938년 2월 3일 - 장성이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8년 - 장성이 대통령표창 추서 |
출생지 | 장성이 출생지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신기리 |
활동지 | 장성이 활동지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강점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장성이(張星伊)[1896~1938]의 본관은 인동(仁同)이며, 아버지는 장천석(張千錫)이다. 장성이(張成伊)로도 알려졌다.
[활동 사항]
장성이는 1896년 7월 21일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북이면 신기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서울에서 3·1운동이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하자 이시우는 북이면사무소에서 같이 서기로 근무하고 있던 김호상(金浩相)·김정환(金貞煥)·이시우(李始雨)와 함께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다.
1919년 4월 1일 오후 8시 당시 북이면사무소가 있던 신기리 주민들이 중심이 되어 북이면 신대리 앞산에서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고, 장성이 등은 10시 무렵까지 김호상의 주도로 대한 독립 만세를 외치다가 일제 경찰에 검거되어 청주경찰서로 연행되었다. 장성이는 김호상·김정환·이시우와 함께 재판에 넘겨졌으며, 1919년 5월 13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태(苔) 90도형을 언도받았다. 장성이는 1938년 2월 3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장성이의 공적을 기려 2008년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