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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수란
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3460
한자 李水蘭
영어공식명칭 I Soora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미원리
시대 근대/일제 강점기
집필자 정욱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62년 6월 1일연표보기 - 이수란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19년 3월 30일 - 이수란 청주 미원리 쌀안장터 만세 시위 주도
활동 시기/일시 1919년 5월 5일 - 이수란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징역 1년 6월형 언도
몰년 시기/일시 1926년 8월 24일연표보기 - 이수란 사망
추모 시기/일시 1995년 8월 15일연표보기 - 이수란 건국훈장 애족장 추서
출생지 이수란 출생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쌍이리지도보기
활동지 이수란 활동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미원리지도보기
성격 독립운동가
성별 남성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가계]

본적은 충청북도 청주군 미원면 쌍이리[현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쌍이리]이다.

[활동 사항]

이수란(李水蘭)[1862~1926]은 1862년 6월 1일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쌍이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 전국으로 확산하자 청주 지역에서도 독립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1919년 3월 30일 오후 2시 무렵 미원면 미원리[현 청주시 상당구 미원면 미원리] 쌀안장터 사거리에서 100여 명이 태극기를 흔들며 대한 독립 만세를 외쳤고, 이수란신경구(申敬求)·신성휴(申聖休)·이용실(李容實) 등과 함께 앞장서서 시위를 이끌었다. 주변에 있던 주민과 장꾼들이 합류하여 시위 대열은 순식간에 1,000여 명으로 불어났고, 출동한 일제 경찰이 주동자 신경구를 체포하여 연행하자 시위 군중은 주재소 앞으로 이동하여 신경구의 석방을 요구하며 격렬하게 항의하였다. 일제 경찰의 위협에 돌을 던지며 맞서던 시위대가 주재조 안으로 진입하려 하자 경찰은 실탄을 발사하여 장일환(張一煥)이병선(李炳善)을 살해하였고, 곧이어 도착한 응원 병력이 시위대를 강제 해산하였다.

미원면 만세 시위는 3월 31일과 4월 1일, 4월 7일까지 이어졌으며, 이수란은 일제 경찰에게 체포되어 1919년 5월 5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1년 6월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이수란은 1926년 8월 24일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수란의 공적을 기려 1995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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