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457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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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李萬逢 |
영어공식명칭 | I Manbo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욱재 |
[정의]
개항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이만봉(李萬逢)[1890~?]은 1890년 청주에서 태어났다. 1907년 8월 유덕삼(柳德三) 의진에 가담하여 유덕삼 휘하 약 300여 명의 의병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충청북도 청주·보은 등지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였다.
1907년 8월 28일 이만봉은 김규한(金奎漢) 외 2명과 함께 군자금 모집을 위하여 청주군 산외면 묵방리[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묵방리] 이종익(李鍾翊)의 집에 갔으나 이종익이 출타하고 집에 없자 청주군 산동면 마구리에서 군자금을 징수하였다. 이만봉은 이 일로 체포되어 1909년 3월 8일 경성공소원에서 징역 7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이만봉의 공적을 기려 1995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