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454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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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尹秉運 |
영어공식명칭 | Yoon Byeongwo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장동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욱재 |
출생 시기/일시 | 1927년 4월 15일 - 윤병운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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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42년 4월 - 윤병운 항일 비밀 결사 신진당 결성 주도 |
활동 시기/일시 | 1943년 1월 - 윤병운 일제 경찰에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43년 12월 18일 - 윤병운 대전지방법원에서 징역 단기 2년에 장기 4년형 언도 |
몰년 시기/일시 | 1944년 4월 11일 - 윤병운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18년 8월 15일 - 윤병운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
출생지 | 윤병운 출생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장동리 |
학교|수학지 | 윤병운 수학지 - 서울특별시 동작구 대방동길 74[대방동 375-1]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윤병운(尹秉運)[1927~1944]은 1927년 4월 15일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옥산면 장동리에서 태어나 경성[현 서울특별시]에 유학하였다. 성남중학교 2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2년 4월 학우 박원배(朴源培)·박병양(朴秉陽) 등과 함께 항일 비밀 결사 신진당(新進黨)을 결성하였고, 민족의식 고취라는 신진당 결성의 목적에 따라 한국사 교육에 힘쓰며 태극기를 제작하기도 하였다. 그 밖에도 적극적인 활동을 도모하며 1919년의 3·1운동과 같은 대규모 독립 만세 시위를 계획하였고, 당시 조선총독이던 미나미 지로[南次郞] 암살을 논의하기도 하였다.
1943년 1월 신진당의 활동이 일제 경찰에게 발각되어 윤병운은 박원배·박병양과 함께 체포되었고, 여러 차례 취조와 고문을 당하였다. 1943년 9월 15일에는 성남중학교로부터 퇴학 처분을 받았다. 윤병운은 1943년 12월 18일 대전지방법원에서 「치안유지법」 위반 혐의로 징역 단기 2년에 장기 4년형을 언도받았고, 인천소년형무소에서 복역 중이던 1944년 4월 11일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하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윤병운의 공적을 기려 2018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