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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타데이터
항목 ID GC00203453
한자 梁致先
영어공식명칭 Yang Chiseon
분야 역사/근현대
유형 인물/의병·독립운동가
지역 충청북도 청주시
시대 근대/개항기
집필자 정욱재
[상세정보]
메타데이터 상세정보
출생 시기/일시 1890년연표보기 - 양치선 출생
활동 시기/일시 1908년 3월 - 양치선 오양선 의진 가담
활동 시기/일시 1908년 8월 24일 - 양치선 보령 순사주재소 습격 가담
활동 시기/일시 1908년 10월 28일 - 양치선 공주지방재판소 형사부에서 징역 10년형 언도
추모 시기/일시 2017년 3월 1일연표보기 - 양치선 건국훈장 애국장 추서
출생지 양치선 출생지 - 충청북도 청주시
활동지 양치선 활동지 - 충청남도 보령시|부여군|청양군
성격 의병
성별 남성

[정의]

개항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양치선[1890~?]은 1890년 청주에서 태어나 농업에 종사하였다. 1908년부터 오양선(吳良善) 의진에서 항일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6월 고종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여 전 세계에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야만성을 폭로하고자 하였는데, 일제는 이를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체결로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는 등 국권 침탈을 노골화하였다. 이에 해산 군인들까지 합세하여 항일 의병이 전국적으로 다시 거세게 일어났고, 오양선 의진도 충청도 지역을 중심으로 대일 항쟁을 펼쳐 나갔다.

1908년 3월 30일 무렵 양치선은 오양선 의병장의 부대에 투입되어 수개월 동안 신홍균(申洪均)·문봉춘(文奉春)·오경춘(吳敬春) 등 부대원 약 100여 명과 함께 총기로 무장하고 충청남도 보령·부여·청양 등지에서 항일 투쟁을 전개하였다. 1908년 8월 24일 새벽에는 보령 읍내에서 부대원 80여 명과 함께 순사주재소를 습격하여 불태우기도 하였다. 양치선은 의병 항쟁을 이어 가다가 체포되어 1908년 10월 28일 공주지방재판소 형사부에서 폭동 및 방화죄로 징역 10년형을 언도받고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양치선의 공적을 기려 2017년 3월 1일 건국훈장 애국장을 추서하였다.

[참고문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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