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447 |
---|---|
한자 | 申光均 |
영어공식명칭 | Shin Gwanggyu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욱재 |
출생 시기/일시 | 1883년 - 신광균 출생 |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2일 - 신광균 청주 읍내 시장 만세 시위 주도하여 일제 경찰에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7일 - 신광균 경성복심법원에서 징역 6월형 확정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17일 - 신광균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징역 6월형 언도 |
추모 시기/일시 | 2011년 8월 15일 - 신광균 대통령표창 추서 |
출생지 | 신광균 출생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지동동 |
활동지 | 신광균 활동지 -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강서동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신광균(申光均)[1883~?]은 1883년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흥덕구 지동동에서 태어났다. 1919년 4월 2일 청주군 강서면[현 청주시 흥덕구 강서동] 읍내 시장에서 만세 시위를 전개할 목적으로 4월 1일 지동리 송재인(宋在寅)의 집에서 송재옥(宋在玉) 등과 함께 읍내 곳곳에 붙일 만세 시위 참여 촉구 문서 약 200매를 작성하였다.
거사 당일인 4월 2일 새벽 신광균 등은 읍내 곳곳에 벽보를 붙였고, 벽보로 인하여 일본 경찰의 경계가 삼엄해지는 바람에 낮에는 만세 시위를 벌이지 못하고 밤 10시 무렵부터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며 시위를 전개하였다. 이후 일제 경찰이 출동하여 시위대를 해산하는 과정에서 많은 사람들이 체포되었고, 신광균도 송재옥과 함께 체포되었다.
신광균은 1919년 4월 17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았고, 1919년 5월 17일 경성복심법원에서 공소 기각으로 징역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신광균의 공적을 기려 2011년 8월 15일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