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446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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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憲俊 |
영어공식명칭 | Song Heonjoon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근대/개항기 |
집필자 | 정욱재 |
[정의]
개항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의병.
[활동 사항]
송헌준(宋憲俊)[1884~?]은 1884년 청주에서 태어나 이발업에 종사하였다. 1907년 11월 18일 김형백(金亨伯)의 의진에 가담하여 항일 의병 항쟁을 전개하였다.
1907년 6월 고종은 네덜란드 헤이그에서 열리는 만국평화회의에 특사를 파견하여 전 세계에 일본 제국주의자들의 야만성을 폭로하고자 하였는데, 일제는 이를 빌미로 고종을 강제로 퇴위시키고 한일신협약[정미7조약] 체결로 대한제국 군대를 해산하는 등 국권 침탈을 노골화하였다. 이에 해산 군인들까지 합세하여 항일 의병이 전국적으로 다시 거세게 일어났고, 김형백 의진도 청주 지역을 중심으로 대일 항쟁을 이어 나갔다.
송헌준은 1907년 11월 18일 오전 7시 산내이상면[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미원면 일대] 방축동에 거주하던 김문실(金文實)의 집에서 군수품으로 쓸 목면 1필을 모집하는 등 김형백 의진에서 의병 활동을 전개하다가 체포되었다. 송헌준은 1910년 7월 27일 공주지방재판소 청주지부에서 강도죄로 징역 2년 6월형을 언도받았고, 1910년 9월 22일 경성공소원에서 공소 기각으로 징역 2년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송헌준의 공적을 기려 2016년 8월 15일 건국훈장 애족장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