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445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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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宋台鉉 |
영어공식명칭 | Song Taehyeon |
이칭/별칭 | 송응삼(宋應三)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욱재 |
출생 시기/일시 | 1874년 3월 10일 - 송태현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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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동 시기/일시 | 1919년 4월 1일 - 송태현 청주 우산리 만세 시위로 일제 경찰에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5월 13일 - 송태현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징역 6월형 언도 |
활동 시기/일시 | 1919년 7월 26일 - 송태현 고등법원 형사부에서 상고 기각으로 징역 6월형 확정 |
몰년 시기/일시 | 1945년 10월 5일 - 송태현 사망 |
추모 시기/일시 | 2005년 11월 17일 - 송태현 대통령표창 추서 |
출생지 | 송태현 출생지 -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우산리 |
활동지 | 송태현 활동지 - 충청북도 청주군 북일면 우산리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송태현(宋台鉉)[1874~1945]은 1874년 3월 10일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청원구 내수읍 우산리에서 태어났다. 1919년 3·1운동이 일어나자 전국으로 확산되었고, 청주에서도 만세 시위가 전개되었다.
송태현은 1919년 4월 1일 변영봉(卞榮鳳)·신석범(申錫範) 등과 함께 마을 사람들에게 독립 만세 운동에 참여할 것을 독려하였고, 밤이 되자 우산리 뒷산 꼭대기에 올라가 짚으로 만든 횃불을 밝히고 대한 독립 만세를 소리 높여 외치다가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송태현은 1919년 5월 13일 공주지방법원 청주지청에서 「보안법」 위반 혐의로 징역 6월형을 언도받았다. 이에 불복하여 항소하였으나 1919년 6월 16일 경성복심법원에서 항소가 기각되었고, 1919년 7월 26일 고등법원 형사부에서 상고 기각으로 징역 6월형이 확정되어 옥고를 치렀다. 송태현은 1945년 10월 5일 사망하였으며, 송응삼(宋應三)이라는 이름으로도 알려졌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송태현의 공적을 기려 2005년 11월 17일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