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443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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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成丑鏞 |
영어공식명칭 | Seong Chukyong |
분야 | 역사/근현대 |
유형 | 인물/의병·독립운동가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부용외천리 |
시대 | 근대/일제 강점기 |
집필자 | 정욱재 |
출생 시기/일시 | 1923년 2월 5일 - 성축용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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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학 시기/일시 | 1939년 - 성축용 대구사범학교 심상과 입학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 성축용 대구사범학교 항일 비밀 결사 문예부 활동 |
수학 시기/일시 | 1941년 - 성축용 대구사범학교 심상과 퇴학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9월 3일 - 성축용 일제 경찰에 체포 |
활동 시기/일시 | 1941년 12월 - 성축용 기소 유예 처분으로 석방 |
추모 시기/일시 | 2005년 8월 15일 - 성축용 대통령표창 추서 |
출생지 | 성축용 출생지 -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부용외천리 |
학교|수학지 | 성축용 수학지 - 대구광역시 중구 달구벌대로 2178[대봉동 60-18] |
성격 | 독립운동가 |
성별 | 남성 |
[정의]
일제 강점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독립운동가.
[활동 사항]
성축용(成丑鏞)[1923~?]은 1923년 2월 5일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서원구 남이면 부용외천리에서 태어났다. 1939년 대구사범학교 심상과에 입학하였으며, 3학년에 재학 중이던 1941년 학내 항일 비밀 결사인 문예부에서 활동하여 퇴학 처분을 받았다.
1940년대 당시 대구사범학교 내에는 윤독회·문예부·연구회·다혁당이라는 항일 비밀 결사가 있었다. 문예부는 1940년 11월 23일 8기생 이태길(李泰吉)의 하숙집에서 8·9·10기생 총 8명이 협의하여 결성하였다. 문예부의 운영 방침은 비밀을 엄수할 것, 매주 토요일 각자 작품을 지참하고 회합하여 서로 이를 감상·비판할 것 등이었다. 문예부 회합은 1940년 11월 30일부터 1941년 3월 9일까지 약 9회에 걸쳐 토요일 밤에 진행되었는데, 성축용은 1941년 3월 22일 11기생으로서 다른 부원들과 함께 문예부의 활동을 이어 가게 되었다.
1941년 7월 중순 무렵 졸업생 정현(鄭鉉)이 수업 중 학생들에게 민족의식을 고취하는 말을 언급한 것으로 인하여 일제 경찰이 정현의 숙소를 수색한 결과 윤독회에서 간행한 『반딧불』지가 압수되었다. 또한 정현과 서신을 주고받은 문예부원 출신 노산국민학교 교사 박찬웅(朴贊雄)의 집을 급습하여 수신 즉시 소각하기로 되어 있던 동지들의 활동 보고서를 발견하였다. 이로 인하여 항일 비밀 결사에 참여하였던 교사·학생·졸업생 등이 모두 검거되었다. 성축용도 1941년 9월 3일 일제 경찰에 체포되었다.
성축용은 체포되어 조사를 받으며 고문을 당하였으나 “문예부에 가입은 하였지만 조선의 독립을 목적으로 하는 비밀 결사인 줄 몰랐고 순수한 문예 활동만 하였다”라고 진술하여 1941년 12월 말 기소 유예 처분을 받고 석방되었다.
[상훈과 추모]
대한민국 정부는 성축용의 공적을 기려 2005년 8월 15일 대통령표창을 추서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