항목 ID | GC00203411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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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자 | 申灚 |
영어공식명칭 | Shin Gyo |
이칭/별칭 | 성원(聖源),백석정(白石亭) |
분야 | 역사/전통 시대 |
유형 | 인물/문인·학자 |
지역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리 |
시대 | 조선/조선 후기 |
집필자 | 백주희 |
출생 시기/일시 | 1641년 - 신교 출생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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몰년 시기/일시 | 1703년 - 신교 사망 |
출생지 | 신교 출생지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리 |
묘소|단소 | 신교 묘소 -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추정리 |
성격 | 문신 |
성별 | 남성 |
본관 | 고령 |
대표 관직|경력 | 주부 |
[정의]
조선 후기 충청북도 청주 지역 출신의 문신.
[가계]
신교(申灚)[1641~1703]의 본관은 고령(高靈)이며, 자는 성원(聖源), 호는 백석정(白石亭)이다. 증조할아버지는 신중엄(申仲淹)이고, 할아버지는 대사간 신용(申涌)이다. 아버지는 함경도도사 신득홍(申得洪)이고, 어머니는 진주 정씨(晉州 鄭氏)이다. 동생은 신학(申㶅)·신역(申湙)이고, 아들은 신명제(申命濟)·신문제(申文濟)·신겸제(申兼濟)·신광제(申光濟)이다.
[활동 사항]
신교는 1641년(인조 19) 지금의 충청북도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관정리에서 태어났다. 1653년(효종 4) 아버지가 별세하자 가장으로서 집안을 이끌었고, 1677년(숙종 3) 고향의 지담(芷潭) 인근 바위에 백석정(白石亭)을 짓고 자신의 호로 삼았다.
신교는 동생 신학이 승지가 되고 신역이 주서가 되자 이름이 알려져 천거로 북부참봉에 제수되었고, 이후 장흥고봉사·전생서직장·동부주부 등의 관직을 역임하였다. 1699년 관직에 물러나 경기도 광주의 탄천(炭川) 가에서 지내면서 임경정(臨鏡亭)을 짓고 창작 활동을 하며 지냈다. 1701년 무렵 고향으로 돌아와 백석정을 중수하고 유유자적하다가 1703년 4월 6일에 사망하였다.
[학문과 저술]
신교의 저술로는 문집인 『백석정유고(白石亭遺稿)』가 전한다. 신교의 작품으로는 2편의 가사와 22수의 시조, 38수의 한시가 있다. 가사 문학에는 풍류와 임금에 대한 충정을 담아냈고, 시조와 한시는 여러 상황에서 작자의 감회를 다양하게 표출하였다.
[묘소]
신교의 묘소는 청주시 상당구 낭성면 추정리에 있다.